[르포]도면 읽는 로봇·1500도 쇳물 앞 AI…M.AX, 韓 제조 지형 바꾸다

12일 오전 10시 울산 HD현대중공업 선각공장. 귀를 찌르는 기계음과 사방으로 불꽃이 튀는 거대한 선박 블록 작업장에 사람의 모습은 단 한 명뿐이었다. 대신 도면을 스스로 읽고 쉴 새 없이 불꽃을 뿜어내는 레일형 협동로봇 6대가 기존 숙련공 7명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의 개입 없이 로봇 스스로 용접선을 찾아 움직이는 이곳은 조선업의 고질적 인력난을 산업통상부의 M.AX(제조 인공지능 전환) 프로젝트가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조선업은 자동차와 달리 주문에 따라 선박을 만들기 때문에 제품 규격이 그때 그때 다르다. 그만큼 자동화가 까다로운 분야로도 꼽힌다. 하지만 AI 비전과 디지털 트윈을 결합한 자율제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숙련공 7명이 주간 500톤 물량을 처리했지만, 이제는 신입사원 1명이 로봇 여러 대를 제어하며 최대 1000톤까지 용접을 소화한다. 생산성이 단숨에 두 배로 뛴 셈이다.
선박 블록 이송용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 역시 6명이 하던 작업을 자동화해 인력 효율을 극대화했다. 값비싼 유럽산 대신 3분의 1 가격인 국산 시스템을 적용해 비용 경쟁력도 잡았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이 시스템을 영세한 중소 협력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화할 계획이다.
M.AX가 안착한 곳은 울산 조선소뿐이 아니다. 1500도에 달하는 붉은 쇳물이 뿜어내는 숨 막히는 열기로 가득한 포항 포스코의 1제선공장 2고로 앞에서도 4족 보행 로봇 한 대가 홀로 고온의 설비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사람이 직접하기에는 두꺼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도 쉽지 않은 현장이지만, 하루 12번의 자동 순찰 미션을 부여받은 로봇은 거침이 없었다.
이 현장에서 포스코는 '스마트 고로'를 도입했다. 품질 불량률은 종전 13.3%에서 4.9%로 63%가량 대폭 줄였고, 연간 생산량도 8만5000톤 늘어났다. 용암과 같은 쇳물을 직접 샘플링하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컨베이어 벨트 이상 소음을 감지해 불량 롤러를 자동으로 교체하는 시스템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현장 테스트를 거쳐 실전 투입을 앞두고 있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함께 고위험 작업을 대체하는 자율 로봇 기술도 실증 중이다. 철강 공정은 작은 설비 이상이 대형 화재나 공정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지보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포항 영일만산단 에코프로비엠 1캠퍼스에선 도자기를 굽듯 700~800도의 뜨거운 소성로가 돌아가는 고온·분진의 공간 속 자율이동로봇(AMR)이 900개 설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있었다. 2030년 완전 무인화 '다크 팩토리'를 조준한 승부수다.
이차전지 양극재 공정은 수많은 엔지니어의 시행착오와 암묵지(노하우)가 집약된 분야다. 에코프로비엠은 배터리 전극소재 공정에 AI 기반의 이상분석 시스템을 접목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실시간 품질 예측이다. 3만개 이상의 데이터셋 전처리를 거쳐 개발된 AI 품질예측 모델은 무려 99.62%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또 투입되는 리튬의 순도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측정해 오차율을 ±0.1% 수준으로 묶으며 양산 라인에 100% 적용을 완료했다. 송호준 에코프로비엠 대표는 “한국 과학자 1명이 한 달간 할 일을 중국은 10명이 며칠 만에 해내는 융단폭격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책이자 솔루션은 AI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기업의 이 같은 위기의식에 공감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용필 산업부 대변인은 “우리 산업계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꺼내든 핵심 카드가 바로 M.AX”라며 “AI 자율제조가 개별 기업의 혁신을 넘어 대한민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어떻게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안영국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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