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다시 열리면 끝? 유가, 어디로 향하나 [페트로-일렉트로]
미국∙이란 전쟁 간 종전 합의가 급 물살을 탄 것으로 보여집니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국제유가 향방일 것 같은데요. 유가 급등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에서 물가 비상이 걸린 상황이기 때문이죠. 종전이 현실화하면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변할까요?

현재 미국과 이란은 이른바 ‘이슬라마바드 선언’이라 불리는 종전 양해각서(MOU) 안에 대해 서명식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집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이란이 30일 이내에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는 대가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란 동결 자산을 해제하고, 이란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면제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또 종전 이후 60일 동안 이란 핵 프로그램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미국과 이란이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합의서에 서명이 이뤄지는 순간까지 이 조건들이 그대로 살아 있을지, 아니면 수정이 가해질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이 중동산 에너지 공급의 전면 복구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선 수백 척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여전히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여 이들이 호르무즈해협을 한번에 지나려면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즉 일정 기간 동안 통행 혼잡이 예상된다는 것이죠. 에너지 공급이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페르시안만에 갇힌 유조선들이 해협을 먼저 빠져나온 다음 에너지를 실을 선박들이 순차적으로 해협에 진입해야 ‘질서 있는’ 해협 재개방이 이뤄질 것 같은데요. 블룸버그통신의 에너지 전문 칼럼니스트인 하비에르 블라스는 “두 작업은 동시에 벌어질 것”이라며 “이런 시도는 과거 어느 때도 없었다. 매뉴얼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해협 재개방 과정에서 극심한 혼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산 측면의 문제도 주목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 동안 중동 산유국들이 호르무즈해협 통제 영향으로 설비 가동을 제한해왔는데, 이를 원상 복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일례로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는 호르무즈해협이 재개방되면 6~8주 안에 원유 생산량의 약 70%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요. 나머지 30%까지 복구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약 한 달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무엇보다 종전 이후에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밖에 공급 통제로 세계 석유 재고가 가파르게 감소한 점은 앞으로 유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떠받치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 2월 개전 이후 5월까지 세계 석유 재고가 2억 5000만 배럴 감소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각국 정부와 정유사들이 비축유를 다시 채우려 할 경우 추가 수요가 발생해 유가 하락 폭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프랑스 대형 해운사인 CMA CGM의 로돌프 사데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프랑스 의회에서 “앞으로 몇 주 안에 평화적 해결책이 마련된다고 해도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는데요.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은 상당 기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배럴 당 평균 69달러였던 브렌트유가 올해 평균 86달러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가에 상방 압력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데요. 역시 연재를 통해 몇 차례 전해드렸듯, 전쟁 직전만 하더라도 국제 원유 시장이 우려했던 것은 공급 과잉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원유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브라질, 캐나다 등 비(非)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주도하는 증산이 공급 과잉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이죠. 미·이란 전쟁으로 지난 60년 이상 OPEC 핵심 멤버였던 아랍에미리트(UAE)가 OPEC를 탈퇴하는 돌발 사태 또한 공급 측면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UAE가 OPEC를 탈퇴한 배경에는 그동안 이어져온 생산 쿼터에 대한 불만이 있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공급 조절 전략에 반발해 이탈한 UAE가 원유 생산량을 빠르게 늘릴 수 있고, OPEC이 유가 방어에서 시장점유율 회복으로 초점을 옮긴다면 공급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습니다. <관련 연재 기사: ‘페트로 엑시트’ 산유국의 석유 카르텔 탈퇴가 준 신호>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세에 접어든 것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올 5월 중국의 하루 평균 원유 수입량은 780만 배럴로 최근 수년 동안 유지해온 하루 평균 원유 수입량 1100만 배럴과 비교하면 300만 배럴 이상 적은 것인데요. 전기차 확대, 석유를 연료 대신 석유화학 원료로 사용 확대 등 중국의 에너지 소비 구조가 변화하는 것을 근본적인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종전 이후 유가 전망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결국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국제유가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고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수송 병목과 생산 복구 지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반대로 전쟁 직전 시장에 퍼져 있던 공급 과잉 우려가 얼마나 빠르게 다시 영향력을 회복할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가는 공급 정상화의 속도와 지정학적 변수, 글로벌 수요 변화가 교차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자 구독, 또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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