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조기 퇴근일의 반전···LG 불펜데이, 상대에겐 ‘불편 데이’

시즌 전 구단에서 써놨던 시나리오와 비교하자면 스토리 기본 줄기는 물론 등장 인물도 배역도 달라져 있다. 국내파 1선발로 기대한 손주영은 부상으로 이탈한 마무리 유영찬을 대신해 뒷문지기로 뛰고 있고, 외인 1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치리노스가 부진으로 떠난 자리에는 외인 불펜투수가 들어와 있다. 개막 이후로는 사이드암 우강훈이 깜짝 등장해 필승조 1번 주자로 활약하더니 1군서는 불펜 A조도 불펜 B조도 아니었던 김진수가 최근 건실함을 바탕으로 마당쇠처럼 바쁘게 마운드를 오르내리고 있다. 또 마무리 대체 1순위였던 장현식은 롱맨으로 잠재력을 뿜어내고 있다. 장현식은 선발로도 등판을 예고했다.
구성이 달라져 있을지언정, 이야기 전개는 순조롭다.
올시즌 LG 마운드는 극적 요소가 더해진 가운데 색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다. 외인 선발 1명과 손주영이 빠진 선발진만 보자면 오르내림이 이어지며 아직 변동성이 커 보이지만 불펜 뎁스로는 확실히 부피감을 내보이고 있다.

사실 ‘불펜데이’는 국제 조난 신호 ‘메이데이’처럼 선발 로테이션 펑크와 함께 마운드 운용 비상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승산을 더 높게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LG의 ‘불펜데이’는 조금 다르다. 상대에는 ‘불펜 데이’가 아닌 ‘불편 데이’가 되고 있다.
사실, 대체선발이 등판하는 날이면 LG는 대체로 고전했다. 그런 날이면 개막 이후 7연패를 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잠실 SSG전에서 선발 김윤식이 2.1이닝 동안 1실점한 뒤 장현식이 4.1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팀 승리를 이끈 시점을 전후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LG는 지난 13일 잠실 롯데전 또한 불펜의 힘으로 5-3으로 승리했다. 오프너로 등판한 김진수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데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함덕주가 1이닝 2안타(1홈런) 2실점으로 흔들렸지만 이후 6이닝 동안 김진성(2이닝 무실점)-약셀 리오스(2이닝 무실점)-김영우(0.1이닝 1실점)-손주영(1.2이닝 무실점)이 계투전을 벌이며 1점만을 내줬다. 4회부터 9회까지 롯데 타선은 LG 불펜진을 상대로 3안타를 뽑는 데 그칠 만큼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주 가세한 리오스는 최고 구속 161㎞를 찍는 등 2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불펜 높이를 바꿔놓고 있다.

최근 LG 벤치는 1군 투수 엔트리를 15명까지 늘려놨다. 대부분 팀이 투수 엔트리를 14명으로 유지하고 있고, 그중 KT는 투수 엔트리가 13명인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구성이다. 계산이 서는 선발진 5명을 갖추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지만 각양각색의 경기 흐름에 따라 투입할 만한 자원은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올해 LG는 불펜 주요 보직에 변화가 많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뎁스를 기반으로 한 ‘다다익선’ 전략으로 승수를 쌓아가고 있다. LG가13일 현재 시즌 64경기에서 40승(24패)을 거둔 가운데 승리한 40경기에서 불펜진은 156.2이닝이나 던졌다. 64경기에서 38승(1무25패)를 기록한 KT가 승리한 경기에서 2번째로 많은 불펜 이닝(127.2이닝)을 쌓아가고 있지만, LG와는 차이가 크다.

LG가 승리한 날에는 경기당 평균 불펜투수들이 4이닝 가까이 책임진 셈이다. 승리한 40경기에서 불펜진의 평균자책은 2.36으로 돋보였던 데다 WHIP 1.08로 안정적이기도 했다. LG는 또 팀 홀드수가 51개로 압도적이다. 리그 평균(34개)보다 간격이 컸다. 사실은 ‘불펜이 좋았다’는 것보다는 ‘불펜 바빴다’는 것에 가까운 해석도 따르지만, 어느 쪽이든 팀 승리에 불펜 기여도는 높았다.
불펜데이를 하려면, 벤치도 선수도 바쁘다. 상대팀에는 기회라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LG의 불펜데이는 달라지고 있다. 지난 13일 롯데전을 보자면 타자들에겐 수준급 투수들을 매타석 새로 만나야 하는 ‘불편한 날’이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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