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 소송 이겨도 위자료 1500만원? [세상에 이런 법이]
혼인과 관련된 사건이 주는 스트레스가 꽤 심한 편이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건별로 업무 처리에서 오는 고통의 강도가 다르다. 최근 마무리된, 상간자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소송도 그러했다.
대학 입학 후 만난 첫사랑과 8년 연애한 끝에 결혼했다. 결혼 2년째 의뢰인은 배우자를 닮은 예쁜 아기를 얻기 위해 운동을 하고, 즐기던 술을 끊고, 매일 밤 기도했다. 그 사이 배우자는 부정한 관계를 즐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의뢰인은 여느 때처럼 퇴근한 배우자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배우자가 잠시 샤워를 하러 간 사이 상간자가 배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의뢰인이 청구한 위자료 금액은 3300만원이었다. 민사소송 사건에서 청구하는 금액이 3000만원 이하인 경우 ‘소액사건’으로 분류되어 판사가 판결문에 판단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승·패소의 상세한 이유를 알 수 없다. 항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감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소송이 민사소액재판부의 사건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3000만원보다 1원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청구 금액으로 정한다. 상간 사건에서 소가 3100만원 혹은 3000만100원 사건이 생기는 이유는 그러하다.
상간자가 보내온 답변서의 내용은 참으로 황당했다. 부정행위의 증거가 너무 명백해서였는지 상간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어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이를 고려해 위자료 청구 금액을 최소한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했다. 정신과 진료 기록지가 증거자료로 첨부된 서면을 받아든 당사자는 내게 헛웃음을 지으며 우울증이 부정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3000만원 다 인정 안 되면 어떡하죠?”
법원은 바보가 아니다. 상간자의 우울증 변명은 일종의 ‘클리셰’다. 그런 항변은 상간자 피고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정행위 기간에 즐겁게 살아온 그의 일상과 당시의 행복한 기분이 인스타그램에 낱낱이 드러나 있고, 설사 우울증이라고 해도 부정행위의 적절한 방패막이는 될 수 없다. 나는 의뢰인을 안심시켰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의뢰인의 대답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것 때문에 위자료 금액 깎이는 거 아니에요? 3000만원 다 인정 안 되면 어떡하죠?”
애초 3000만원은 인정될 수 없는 금액이다. 의뢰인과 내가 이번 재판에서 기대하는 결과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상간자인 피고가 아니라 의뢰인의 기대감과 싸워야 하는 중압감을 느꼈다. 바로 그때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의뢰인의 순진한 기대감이야말로 변호사에게 가장 큰 부담감이다. 상간 소송에서의 위자료 금액은 법으로 정해져 있진 않으나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금액인 만큼 법원이 정신적 고통의 크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고착화되어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20억원 위자료가 인정되긴 했지만 그야말로 남의 집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이혼 사건, 상간 소송에서 내려진 위자료 금액은 1억원은커녕 5000만원의 벽도 넘기 힘들었다. 여전히 1000만~3000만원 이내의 범위에서 결정된다.
의뢰인의 결혼 기간은 만 2년이 안 되었고, 부정행위 기간 역시 수개월이었다. 나는 1500만원을 초과하는 위자료를 기대하지 말라고 의뢰인에게 설명했다. “그럼 제 고통이 고작 1500만원짜리인가요?” 돈으로 따질 고통이 아닐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몇 배를 뛰는 사이에도 위자료 금액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으로 달라지지 못했다. 정신적 고통이 치유되고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의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가 입은 고통을 치유할 만큼의 민사상 책임이 간통죄 폐지 이전보다는 무거워져야 타당한 것이 아닐까.
의뢰인에게 1500만원 이상은 기대하지 말라고 모질게 이야기했던 그날,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인지 늦은 밤까지 복통이 이어졌다. 법원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조금 더 공감과 인정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이겨도 속상한 소송이다.
권혜진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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