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만원짜리 치매 신약, 피 한방울로 골든타임 찾는다[헬시타임]
혈액 인산화타우 단백질 수치로 뇌 속 병리 단계 예측
고가의 PET 검사 없이 신약 치료 적합 환자 선별 가능

간단한 혈액검사로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단계를 파악하고, 신약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이른바 ‘치료 황금기(Therapeutic Window)’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조한나 신경과 교수와 김한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신경과 교수, 미국 세인트루이스 C2N 다이어그노스틱스(Diagnostics) 공동 연구팀이 혈액 내 ‘인산화 타우217(p-tau217)’ 단백질 수치가 뇌 속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축적 단계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임을 규명했다고 12일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이는 동시에 타우 단백질이 신경세포 안에서 엉키면서 신경세포의 손상과 사멸이 진행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기억력 감퇴와 주의력, 언어 능력 등 인지기능 저하가 서서히 진행된다. 기존 치매 치료는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쳤다. 최근에는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자체를 제거해 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늦추는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연간 수천만 원의 투여 비용이 드는 신약조차 병이 진행할수록 효과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한계가 있었다. 인지기능이 이미 심하게 저하된 경우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임상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유효한 치료 시기 예측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연구팀은 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여있지만 타우 병리가 아직 초기~중등도 단계인 상태를 치료 황금기로 보고, 혈액 속 바이오마커(생체지표)로 이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기억장애 클리닉에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와 혈액검사를 모두 받은 환자 237명을 선정한 다음, PET 영상을 분석해 알츠하이머 연구 표준 병기 체계인 ‘아밀로이드 침착 단계’와 ‘타우 엉킴 단계’로 나눴다. 이후 혈액 바이오마커 수치가 이러한 PET 기반 병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평가했다. 국내에서 두 검사를 동시에 대규모로 수행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에는 인지기능이 정상인 경우부터 경도인지장애(MCI), 치매로 진단된 경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례자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혈액 속 인산화 타우(p-tau217) 수치는 뇌 속 아밀로이드 침착 단계와 타우 엉킴 단계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다. 초기 아밀로이드 축적과 중등도 이상의 타우 축적을 확인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곡선하면적(AUC) 수치는 각각 0.96과 0.92로 집계됐다. AUC 수치는 1에 가까울수록 판별 성능이 높다는 의미다. 이는 고가의 PET 검사를 시행하는 대신 혈액 검사만으로도 환자의 뇌 속 병리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확률 기반 모델링을 통해 치매 신약의 치료 효과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p-tau217 범위를 제시했다. 혈액 내 p-tau217 수치가 약 1.895~5.077pg/mL 범위에 속하는 경우 뇌 속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돼 있지만 타우 병리는 아직 초기·중등도 단계로 볼 수 있으며, 신약 투여 시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의 뇌 속 병리 단계를 PET 수준의 정밀도로 파악하고, 치료를 시작할 최적의 시기를 판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며 “혈액 내 p-tau217 수치를 1차 스크리닝으로 활용하고 치료 황금기 범위에 드는 환자만 PET으로 확인하는 전략을 세우면 진료와 검사 효율을 높이고 환자 부담은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분야 국제학술지인 ‘알츠하이머 및 치매’ 최신호에 실렸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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