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해든이 없도록"… '아동학대 예방법' 직접 만든 3040 엄빠들
여수 생후 4개월 영아 살해 사건에 분노한
젊은 엄마·아빠 400명, 오픈 채팅방 모여
"고통 속에 떠난 해든이, 하늘선 자유롭길"
'가해 친모 엄벌 촉구' 탄원서 10만 건 제출
"24개월 이하 영유아 검진 의무화" 골자로
'해든이법'도 마련… 국회에 입법 촉구 계획

3월 26일 오후 전남 순천시 왕지동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중법정. 이른바 '해든이 사건'의 결심 공판이 열린 이곳을 빽빽히 채운 방청객과 법원 직원 등 50여 명의 시선은 구형을 앞둔 정아름 검사에게 쏠렸다. 새어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는 게 역력해 보였던 정 검사는 간신히 입을 뗐다. 그러나 목소리는 단호했다. 피고인 2명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구형에 앞서 정 검사가 했던 말을 옮기면 이렇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봤지만, 이처럼 가슴 아픈 범죄는 없었습니다. 철제 검시대에 누워 있는 아기의 표정이 홈캠(에서 본 표정)보다 편안해 보였습니다."
'해든이 사건' 수사와 공소 유지를 맡았던 정아름 검사
방청석에 앉아 있던 김이진(35)씨의 가슴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김씨는 "사망 당시 해든이의 나이(생후 4개월)와 비슷한 둘째 아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특히 더 아팠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정 검사의 말을 곱씹던 그는 이내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도 어느 가정에서 학대당하고 있을지 모를, 또 다른 '해든이'가 더 이상은 고통받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이른 새벽부터 광주에서 순천으로 달려가 지켜봤던 그날 재판은 김씨가 '프리 해든스' 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된 동기로 작용했다. 김씨를 비롯한 프리 해든스 운영진 3명과의 전화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소 독특한 이름을 지닌 이 온라인 시민 모임이 어떻게 꾸려졌고,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되짚어 봤다.

엄마의 학대 끝… 욕조서 눈 감은 해든이
해든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22일 전남 여수시에서 발생했다. 30대 여성 A씨는 물을 틀어 둔 욕조에 생후 133일이었던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 숨지도록 했다. 자택에 설치돼 있던 홈캠 영상에는 A씨가 아이 머리를 침대에 내려치고, 몸통 부위를 마구 때리는 모습도 다수 담겨 있었다. 학대는 같은 해 8월부터 두 달 간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는 짧디 짧은 생애의 절반가량을 엄마의 모진 폭력에 시달리다가 눈을 감은 셈이다. A씨는 아동학대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친부 B씨도 아동복지법상 아동 방임 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여수 영아 살해 사건'으로 불리던 이 참극은 올해 2월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피해 아동에게 '해든이'라는 가명을 붙인 뒤부터 '해든이 사건'으로 명명됐다. 프리 해든스도 그 직후, '고통 속에 떠난 해든이가 하늘나라에선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 시작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었다. 걷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의 아기가 친엄마의 학대로 숨을 거뒀다는, 믿기 힘든 얘기에 충격을 받은 시청자 400여 명이 자연스레 채팅방으로 모여든 것이다. 대부분 3040세대 엄마 또는 아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분노는 온라인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다. 채팅방 운영진 10명은 '해든이 부모가 마땅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인들로부터 '엄벌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고, 해든이 사건 재판이 열리는 순천지원 앞 '1인 시위' 참여자를 모집했다. 사건 내용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도 별도로 만들어 전말을 알렸다.
운영진 중 한 명인 김이진씨는 '탄원서 수집'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만만치 않은 국제 배송비 탓에 탄원서를 내기 힘든 재외국민들 몫을 전담했다. 김씨는 "각 국가와 도시의 유명한 한인 커뮤니티를 수소문해 '탄원서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며 "탄원서가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재판부에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프리 해든스가 모은 탄원서는 서면으로만 약 8,000건. 구글 폼 등 온라인으로 받은 탄원서는 무려 10만 건에 달한다.

가해자 1심 무기징역… '활동 끝' 아니다
탄원서 효과였을까.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합의1부(부장 김용규)는 4월 23일 해든이의 친모 A씨와 친부 B씨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B씨 형량은 검찰 구형(징역 10년)의 절반 정도에 그쳤으나, 주범인 A씨에겐 구형량과 동일한 형벌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는 A씨 변명을 감경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사유를 들더라도 엄마만을 의지하고 있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생후 4개월의 피해 아동이 희생됐어야 할 이유는 없다"며 배척했다. 통상 구형량보다는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하지만 프리 해든스의 활동이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이제 고작 1심이 끝났을 뿐이다. 피고인들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시작됐기도 했거니와, '제2의 해든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진짜 목표는 아직 남아 있다. 가칭 '해든이법' 탄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된 이유다.
다만 평범한 부모이자 직장인들이 직접 법안을 만든다는 게 현실적으로 쉬울 리는 없었다.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회원이 대다수인 터라, 회의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결국 프리 해든스 운영진은 각자의 '육퇴(육아 퇴근)'를 마친 뒤인 밤 10시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만나기로 결정했다. 자녀를 돌보거나 일을 하는 낮 시간 동안 떠올린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남겨 놓고, 이를 안건으로 상정해 온라인상 토론을 벌이는 식이었다.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맨땅 헤딩'으로 만든 법안… "어설퍼도 소중"
서울 강서구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김다솔(36)씨는 운영진 중에서도 특히 해든이법에 '진심'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온종일 고민을 거듭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서 낯설기만 한 법 조문을 일일이 찾아 읽었다. 그간의 아동학대 사건들을 다룬 언론 보도, 정부의 아동 정책 관련 통계도 닥치는 대로 스크랩했다. 금융권에 종사해 '셈'이 밝은 남편, 정확도 향상 등을 위해 유료 모델을 구독 중인 생성형 AI(인공지능) '제미나이' 등도 든든한 조력자다. 김씨는 웃으며 말했다. "신랑 표현에 의하면 저희(프리 해든스)는 완전히 '근본이 없는 조직'이라 이렇다 할 인맥도 없었어요. 각자 노비처럼 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직은 '안(案)'에 불과해도, 해든이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골자는 '24개월 이하 영유아 검진 의무화'다.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 총 8회에 걸쳐 할 수 있는 현행 영유아 검진 제도와 관련, 24개월 이전에 받는 4회분에는 강제성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2018~2020년 3년간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수검률(54.8%)이 건강보험 가입 아동의 평균치(78.1%)보다 훨씬 낮다는 통계(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착안했다.
해든이법의 초점은 아동 학대의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에 맞춰져 있다. 김다솔씨는 "처음엔 열정이 너무 불타오른 나머지, '2주에 한 번씩 모든 아이가 병원에 가도록 하자'고 주장했었다"며 "(그 방안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비현실적'이라는 신랑의 말에 여러 번 수정을 거쳐 도출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가 보면 '어설프다'고 할 수 있겠으나, (프리 해든스 운영진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결과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PTSD 시달려도… "어른의 도리 해야죠"
물론 예상 밖의 후유증도 겪었다. 해든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생생히 담긴 영상을 보고, A씨의 잔혹한 범행 수법이 적시된 판결문을 읽느라 얻게 된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였다. 김이진씨는 "내 아이를 바라보는데 계속 해든이 얼굴이 겹쳐 보였다"며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죄책감에 눈물 흘린 적도 여러 번"이라고 토로했다. 두 살배기 늦둥이의 아빠이자 '프리 해든스 방장'인 송화정(41)씨도 비슷한 증상에 시달렸다. 며칠 전에는 정신건강의확과를 내원해 상담까지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진 않을 생각이다. 프리 해든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지 해든이의 안식만이 아니라, '모든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송씨는 프리 해든스가 우연한 계기로 꾸려진 모임인 만큼, 제 역할을 다했을 즈음엔 자연스럽게 흩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왕 해든이를 알게 됐으니까,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는 게 어른으로서의 도리이지 않겠나"라며 의지를 다졌다. 프리 해든스는 22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회 구성이 완료되는 대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 해든이법 입법화를 정식 요청할 계획이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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