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오레오·에스파 하이볼…전세계 뚫은 'K-세계관' [K컬처인사이드]
글로벌 팬덤 공략 가속…한류 소비액 1조 3000억원 넘겨

포토카드나 응원봉 등 전통적인 기획 상품(MD) 영역에 머물렀던 K팝 마케팅이 유통·식품업계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식음료 기업들은 단순히 인기 아티스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차원을 넘어 아티스트의 고유한 세계관과 지식재산권(IP)을 제품 기획 단계부터 깊숙이 이식하는 'IP 내재화'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이는 팬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소장 가치 중심의 패키징 비즈니스로 진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키움증권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4사(하이브·SM·JYP·YG)의 합산 굿즈 매출은 지난해 약 1조 1000억원을 기록하며 '1조원 시대'를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팬덤 경제는 실질적인 내수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K팝 IP가 결합된 식품과 유통 상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글로벌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이 한류 관련 분야에 지출한 금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방탄소년단(BTS)이 복귀 신호탄을 쐈던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1조원 벽을 깨뜨린 데 이어 한 달 만에 최고 기록을 다시 갈아치운 것이다. 특히 쇼핑과 패션, 한식 업종에서의 소비 약진이 두드러졌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빅데이터 플랫폼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외국인 방한객의 '글로벌 한류 소비액'은 1조 3287억원으로 전월(1조 917억원)보다 21.7% 늘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54.6%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한류 소비액은 외국인의 국내 카드 결제 내역 중 숙박, 교통 등 일반 관광 항목을 제외하고 문화체험, 쇼핑, 공연 관람, 패션, 음식 등 문화적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업종만 따로 추출해 낸 지표를 뜻한다.
해당 소비액은 지난해 8월 7504억원을 시작으로 매달 몸집을 불리며 같은 해 11월 962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연초 비수기를 지나며 올해 2월에 6450억원 수준까지 내려앉았으나 K팝 대형 아티스트들의 활동 재개와 함께 가파른 반등세를 보였다. 특히 BTS가 정규 5집 '아리랑'을 발표하고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복귀 공연을 열었던 지난 3월에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고, 경기 고양시에서 이들의 월드투어 막이 올랐던 4월에도 다시 한번 최대치를 경신하며 저력을 증명했다.
4월 한 달간 업종별 지출 비중을 살펴보면 쇼핑이 38.4%를 차지해 가장 압도적이었으며 뷰티웰니스(22.0%), 패션(14.0%), 라이프스타일푸드(12.2%), 한식(10.2%), 나이트컬처(1.6%) 순이었다. 방한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을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키워드 언급량에서는 '공연관람'이 4만여건으로 1위에 올랐다. 아울러 '덕질'(1만 3000여건), '댄스 배우기'(5500여건), '하이브·SM·JYP 등 기획사 사옥 방문'(4900여건), '드라마·영화 촬영지 탐방'(4800여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집객 효과와 타깃 확장성을 노리는 유통업계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글로벌 식품기업 몬델리즈 인터내셔널과 국내 판매를 총괄하는 동서식품은 오는 6월 BTS와 협업한 한정판 스낵 '오레오 흑설탕 호떡맛'을 전 세계 80개국 이상의 시장에 전격 출시할 전망이다. 과거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와의 협업 제품이 미국 등 4개국에만 제한적으로 유통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전역을 동시 공략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와 유통망 면에서 매우 이례적인 대형 기획으로 평가받는다.
제품의 기획 방향은 철저한 '한국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의 전통 길거리 간식인 호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초콜릿 쿠키 사이에 흑설탕과 계피 향이 감도는 크림을 배합했으며 제품 패키지 디자인에는 한국 전통시장의 정취를 시각적으로 담아냈다. 제품 개발 과정에는 BTS 멤버들이 직접 참여했으며 쿠키 표면에는 멤버들의 실명과 공식 응원봉인 '아미밤' 형태를 포함한 13가지의 다채로운 독자적 문양이 각인되어 소장 가치를 극대화했다. BTS 측은 "어릴 적부터 즐겨 찾던 오레오가 첫 글로벌 협업 스낵 브랜드가 되어 뜻깊다"며 "고향의 맛을 전 세계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걸그룹 '에스파'와 손잡고 정규 2집 앨범 'LEMONADE'의 콘셉트를 투영한 '에스파 레모네이드 하이볼'을 선보였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산 레몬 농축액에 생레몬 슬라이스를 직접 첨가해 신보의 강렬한 비주얼을 탄산감으로 재해석했다. 제품 외관은 멤버별 특징을 반영한 4종의 패키지로 구성됐으며, 컵의 색상이 레몬색으로 변하는 변온잔을 포함한 기획세트를 한정 수량으로 제작해 현장 판매에 나서며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했다.


삼양식품 역시 매운맛 특화 브랜드 맵(MEP)의 글로벌 앰배서더인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앨범 스토리텔링을 마케팅에 접목했다. 브랜드가 지닌 매운맛의 '킥'이 아티스트의 뱀파이어 본능을 일깨운다는 가상의 서사를 활용해 젠지 세대의 자발적인 숏폼 공유를 유도했다. 롯데웰푸드의 빼빼로는 '스트레이 키즈'를 전면에 내세워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매출 신장률 전년 대비 약 36%를 달성하는 등 폭발적인 화제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K팝 IP 내재화' 전략을 단순한 스타 마케팅의 진화를 넘어 글로벌 팬덤 경제와 국내 내수 산업이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아티스트의 인지도에 기대어 단기 매출을 올리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의 전략은 아티스트의 서사와 제품의 정체성을 결합해 소장 가치를 극대화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전역에 퍼져 있는 견고한 팬덤이 제품 기획 단계부터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집객 효과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 아티스트의 컴백과 월드투어 시점에 맞춰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쇼핑, 식음료, 문화체험 지출이 가파르게 동반 상승하는 인과관계가 빅데이터로도 증명된 만큼, K팝 IP 내재화 전략은 향후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한 유통가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굳어질 전망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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