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사투리를 숨기지 않았을 때

윤유경 기자 2026. 6. 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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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걸그룹 '리센느' 열품…사투리 콘텐츠, 갸루 콘셉트로 주목
'지방' 전형적 이미지 있으나… '숨겨야 하는 존재'였던 사투리 끌어올려
마이너하다고 여겨진 존재 모여 '마이너하다고 열등한 건 아니야' 증명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영상 갈무리.

“선크림 와 바르노? 바다 사람인데 난” “마 봐주라 한번, 처음이다 아이가!” 대놓고 사투리로 방송하는 걸그룹 '리센느'(RESCENE)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각각 경남 거제, 경북 경주가 고향인 멤버가 만나 '하루 종일 사투리만 쓰겠다'는 규칙 아래 서울 곳곳을 누빈다. 서울에서도 '힙한' 동네로 꼽히는 성수에서 팬들을 만나면 “마 이거 (사진) 찍어 드릴게예 언니야-”라고 화답한다.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먼저 “사투리!”라고 외치면서 이들을 반긴다.

불씨는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탄생시킨 “거제 야호-!” 밈이었다. 미나미는 거제 출신 멤버 원이의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에 등장해 일본의 서브컬쳐 '갸루' 콘셉트로 채널을 급성장시켰다. 짙은 화장과 핑크 계열의 화려한 갸루 옷차림을 한 미나미는 “너 이러고 거제 가잖아? 거제 시민들한테 혼나 진짜”라는 원이의 말에 “거제 야호-!”를 외쳤다. 단순하고도 활기차면서 묘하게 맥 빠지는 이 한마디는 유튜브를 타고 급속도로 번졌다. 데뷔 3년차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리센느가 유행의 흐름에 올라탄 순간이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80만 명이고, 670만 조회수를 넘긴 영상도 있다. 노래 '러브어택'은 역주행하며 음원 차트 10위 안에 들어갔다. 거제시청은 기세를 이어받아 리센느를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영상 갈무리.

하지만 그 밑에는 묵묵히 쌓아온 시간이 있다. 소속 가수가 본인들뿐인 신생 소속사에서 데뷔한 원이는 개인 채널을 열기 전부터 여러 유튜브 영상에 출연하며 그룹을 알렸다. 거제 출신임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적극 내세웠다. 예능 촬영차 거제를 찾고, 카메라 앞에서도 사투리를 썼다. 구수한 사투리에 “거제 야호-!”가 맞물리면서 리센느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경주 출신 멤버 제나까지 합류하면서 경남과 경북 사투리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사투리는 서울에서 으레 숨겨야 하는 존재다. '서울에 오면 서울말을 써야지'가 불문율처럼 통하는 나라에서, '지방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애써왔다. 반대로 '지방 출신'인 것이 알려지면 첫 만남부터 사투리를 써보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애써 서울말을 써도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으면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다. “사투리를 쓰고도 민망해서 많이 숨기게 된다”는 원이의 말에도 그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해놓은 나라에서 이들이 겪는 서러움은 필연적이다.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영상 갈무리.

숨겨야 하는 것은 결국 잊혀진다. 조선소가 들어서며 외지인 비율이 높아진 거제도 예외가 아니다. 외지인 중심의 경제 구조에 인프라가 부족해 고향을 떠나는 지역민도 있고, 대학교가 거제대학교 하나뿐인 이 지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청년들도 많다. 인구 구성이 외지인 중심으로 바뀌다보니 사투리를 포함해 거제의 지역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거제의 풀뿌리 지역신문 거제신문이 2023년부터 매주 사투리로 쓴 기사를 싣는 이유도 '사라져가는 문화를 살려내자'는 의지다. 리센느의 콘텐츠는 그런 사투리를 메인 컨셉으로 잡으며 '거제'와 '사투리' 모두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물론 리센느 영상 속 '지방'의 모습은 다소 전형적이다. 원이와 미나미가 함께 거제에 가자 '덕연이 딸'이라며 공짜로 치킨을 내어주는 동네 사장님, 사람 없는 드넓은 바다에서 평화롭게 물장구를 치는 모습, 버스에서 스스럼 없이 어르신에게 말을 거는 원이.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골의 향수'를 건드리는 이 장면들은 도시 사람들이 '지방'을 보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사투리를 쓰는 장면마다 깔리는 '전원일기' 배경음악도 그 전형성을 강화한다.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영상 갈무리.

그럼에도 리센느의 열풍은 '마이너'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들을 끌어올려 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다. 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 기획사 아이돌,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사투리, 서울의 변두리 취급받는 '지방', 마이너한 갸루 문화가 합쳐져서 '마이너하다고 열등한 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해냈다. 영상을 연출한 윤성원 PD의 시선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멤버들의 캐릭터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대신, 본연의 정체성을 살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낸다.

'다시 태어나도 거제에서 태어날 거냐'는 PD의 물음에 원이는 “어렸을 때는 여기가 너무 시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무시도 많이 당하고 답답했는데, 서울 살다 보니 '좋은 데 살았구나'고 느낀다”고 답한다. 이에 윤 PD는 직전 원이와 미나미가 열창했던 노래 '아모르 파티'의 뜻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임을 알려준다. 그러자 원이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이대로 살아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리센느가 끌어올린 '마이너함'은 이미 메이저가 됐다. 변두리로 여겨져 온 이들의 서사가 사람들의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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