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 들고 다니는 나, 좀 대단하네”…핑크 플로이드가 건드린 ‘지적 허영’, 우리도 모르게 소비하는 ‘사회적 기호들’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김주리 2026. 6. 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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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1973년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 발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3위…빌보드 차트 996주 이상 머물며 약 4500만장 팔려나가
현학적이고 난해한 음악, 실험적 사운드…‘듣기 어려운 음반’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샤넬 공식 홈페이지/캐피틀 레코드]

이상한 베스트셀러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스릴러’(Thriller) - 6700만장, 이글스(Eagles) 베스트 앨범(Their Greatest Hits 1971-1975) 5100만장, 휘트니 휴스턴(Whiney Houston) 4500만장…

전 세계에 익히 알려진 이름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 직설적인 감성을 표현한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 수려하고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동시에 대중이 짧은 시간 안에 홀리듯 빨려들어갈 수 있는 매혹적인 이들 음악은 당연히 잘 팔렸다. 작품 자체 또한 여느 평론가가 들어도 손색이 없었다.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는, 훌륭한 음반들이다.

그런데 목록들 사이에 이질적인 음반 하나가 슬그머니 끼어 있다. ‘음악 좀 듣는다’하는 사람들에게도 난이도 높은,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정규 8집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 전세계 판매량은 4500만장 이상 추정, 빌보드 차트에 996주 이상 머물며 신기록을 써낸 ‘심오한 음반’이 전 세계 역대 음반 판매량 순위 속 무려 TOP 3에 안착해 있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속 곡들은 대중이 곧바로 따라 부를만한 후렴도 없다. 핑크 플로이드는 ‘스타성’이 있는 뮤지션도 아니었고, 대중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사랑·이별 등의)를 전달하는 음악을 하는 밴드와도 거리가 멀었다. 심장 박동 소리로 시작해 시계 소리, 현금등록기 소리, 숨소리와 웃음, 죽음과 시간, 돈과 광기, 소외와 불안을 노래하는 ‘난해한 음악’.

그런데 이 음반이 팔렸다. 그것도 엄청나게.

어째서?

And if the dam breaks open many years too soon
And if there is no room upon the hill
And if your head explodes with dark forebodings too
I‘ll see you on the dark side of the moon
(만약 댐이 너무 일찍 무너진다면
언덕 위 공간이 사라진다면
너의 머릿속이 어두운 예감으로 가득해 폭발해버린다면
달의 뒷면에서 다시 만나자)
- 핑크 플로이드, ‘브레인 데미지’ 中 -
[게티이미지/Photo by Adam Ritchie]

1970년대 초반, 영국과 미국.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대학과 지식을 우선시하는 청년문화는 이전보다 훨씬 넓은 장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전후 세대가 성장했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중반 고등교육기관 학부 등록자가 가파르게 증가했고, 영국 역시 1960년대 이후 고등교육 확대의 흐름 안에 놓여 있었다. 대학은 단지 직업을 준비하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를 배우고, 취향을 만들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무대에 가까웠다.

대중음악을 체험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었다. 히트곡 한 곡을 소비하는 대신 LP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듣는 일이 하나의 ‘우아한 감상법’으로 자리잡았다.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록은 록이 단순한 청춘의 소음이 아니라 복잡한 사유와 실험을 담을 수 있다는 야심을 구체화시켰다. 좋은 오디오로, 수준 높게 여겨지는 음반을 듣고, 앨범 커버를 분석하고, 가사와 콘셉트를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자세’가 됐다.

이런 시대 속 핑크 플로이드는 꽤나 적합한 모델이었다.

쉽게 소비되지 않는 난해함, 앨범 전체로 완성되는 길고 긴 서사 구조, 철학적인 주제, 단순한 유행가와 구별되는 묵직한 분위기. 이들의 음악은 1970년대의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이 욕망하던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핑크 플로이드를 듣는 행위는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그 음악을 듣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일에 가까웠다.

핑크 플로이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1970년대 대중음악의 가장 흥미로운 기호가 됐다.

The sun is the same in a relative way
But you‘re older
Shorter of breath
And one day closer to death
(태양은 늘 같은 모습으로 그 곳에 있지
하지만 너는 늙어가
숨이 점점 가빠지고
죽음에 한 걸음씩 가까워져가네)
- 핑크 플로이드, ‘타임’ 中 -
[게티이미지뱅크]

샤넬백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대중의 취향을 순수한 개인의 선택으로만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서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예술을 감상한다고 믿지만, 그 취향은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훈련되고 학습되며, 때로는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언어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대표적 사상 중 하나인 ‘구별짓기’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취향은 단순히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는 동시에 “나는 이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것과 어울리는 세계에 속한다”는 신호가 된다. 취향은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이다.

이같은 구별짓기 심리는 ‘고급 취향’이라는 상징 안에서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난해한 예술을 이해하는 능력, 특정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보는 감각, 대중적인 유행과 자신을 구별하는 취향은 일종의 문화자본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실제 그 대상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만이 아니다. 그 대상을 알아보고, 선택하고, 즐기는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신호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명품백을 소비하는 심리와도 연결된다.

‘부의 상징’인 대표적인 명품 ‘샤넬백’을 떠올려보자. 중고차 한 대 값을 호가하는 샤넬백의 가격은 단순히 가죽의 질이나 수납력, 내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샤넬백이 샤넬백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그 이상의 층위에 있다. 더블 C 로고, 퀄팅 패턴, 브랜드의 역사, 희소성, 빈번한 가격 상승,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이 그것을 알아본다는 인식. 샤넬백은 단순히 ‘질 좋은 가방’이 아닌, 사회적으로 읽히는 기호다.

내가 샤넬백을 드는 순간, 이 비싸고 우아한 가방은 물건 이상의 메시지를 만든다. “나는 이 브랜드의 가치를 알고 있다”, “나는 이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나는 이 기호가 통용되는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명품 소비는 종종 실용의 영역을 넘어선다. 물건을 수납하는 가방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핑크 플로이드 역시 다른 방식으로 이와 유사한 자리에 놓였다.

샤넬백이 눈에 보이는 기호라면, 핑크 플로이드는 귀로 들리는 기호였다. 1970년대의 청년문화 안에서 핑크 플로이드를 듣는 일은 “나는 이런 음악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어떤 감각과 지적 태도를 가진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핑크 플로이드의 난해함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차원에서 약점이 아니라 자원이 된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없고, 한 번의 감상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앨범 전체를 반복해서 듣고, 분석하고, 사유해야 비로소 의미가 보이는 음악. 바로 이 ‘어려움’이 핑크 플로이드를 특별한 취향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즉시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는 태도, 혹은 적어도 이해하고 있다고 보이는 태도. 이 모든 것은 대중적 유행과 자신을 구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핑크 플로이드는 단순히 ‘많이 팔린 록 밴드’라고만 보기에는 말끔히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대중적으로 성공했지만, 동시에 대중적인 것과 자신을 구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이면서 “나는 흔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감각을 제공한 ‘이상한 상품’. 이 모순이 핑크 플로이드의 문화적 위치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너무 대중적이어서 누구나 이름을 알지만, 충분히 난해해서 아무나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음악. 많이 팔렸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음악. 그 애매한 위치가 이들을 1970년대 문화자본의 가장 매혹적인 상징 중 하나로 작용했다.

And everything under the sun is in tune
But the sun is eclipsed by the moon
I‘ll tell you one thing, Jerry
Me old mucker
It’s not all dark, is it?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하지만 달이 태양을 가리고 있네
한 가지 말해줄게, 오랜 친구여
모든 게 전부 어둡기만 한 건 아니라네)
- 핑크 플로이드, ‘이클립스’ 中 -
[게티이미지/Photo by Photo by Koh Hasebe]

핑크 플로이드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실제로 사회적 기호가 될 만큼 충분히 치밀했다는 점이다.

어려운 음악은 많다. 틈을 노리고 난해한 ‘척’하는 음악도 많고, 설명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운 음악도 넘쳐난다. 그러나 모든 난해함이 문화자본이 되지는 않는다. 빈 껍데기 위에 세워진 허세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핑크플로이드가 오랜 시간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소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음악이 실제로 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밀도와 감각적 설득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속 주요 주제로 등장하는 죽음과 시간, 돈, 광기, 소외 같은 단어를 단순히 나열한다고 해서 심오하고 수준 높은 음악이 될 수는 없다. 이 앨범의 특별함과 특출남은 그 추상적인 주제들을 실제 소리의 경험으로 바꿔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수록곡 ‘타임’(Time)의 도입부에 시계 소리를 배치해 시간이라는 관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방식과 아이디어는 듣는 이의 감각을 섬뜩할 정도로 밀어올린다. ‘돈’이라는 주제 역시 수록곡 ‘머니’(Money)를 통해 현금 등록기와 동전 소리를 통해 먼저 리듬을 체감시켜, 개념을 지지부진하게 나열하는 대신 곧바로 그 감각이 듣는 이의 귀를 통과하게 만든다.

이같은 곡 배치 감각은 동시대의 다른 록 밴드들과 구별된다.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록 신에는 연주력을 과시하고, 복잡한 구성과 긴 러닝타임으로 록의 예술성을 증명하려는 밴드들이 많았다. 핑크 플로이드 역시 그 흐름 안에 있었지만, 이들은 난해한 개념을 연주 기술의 과시로 밀어붙이는 대신, 오히려 단순한 코드 진행과 느린 템포, 반복되는 사운드, 여백, 정교한 음향 효과를 통해 음악 전체를 하나의 공간처럼 만들었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지금까지도 ‘위대한 앨범’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 구조적 완성도에 있다. 앨범은 한 곡 한 곡이 따로 흩어져 있는 모음집처럼 들리지 않는다. ‘내게 말을 걸어줘’(Speak to Me)의 심장 박동은 앨범의 문을 열고, ‘숨’(Breathe)은 인간이 세상에 던져지는 감각을 만든다. ‘하늘 위에 펼쳐진 위대한 공연’(The Great Gig in the Sky)은 언어 이전의 죽음과 공포를 비명처럼 펼쳐내며, ‘브레인 데미지’(Brain Damage)와 ‘이클립스’(Eclipse)는 광기와 인간 존재의 어두운 귀결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과장된 설명 없이 음악 자체 안에서 작동한다. 인간이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정서적 압박을 감각화하는 능력, 듣는 이는 마치 한 인간의 의식 안쪽을 걸어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감각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핑크 플로이드의 ‘난해함’은 단순한 불친절함과는 다르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지만,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이 앨범 전체를 감싸며, 모든 의미가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지만 감각은 분명하게 새겨진다. 누구나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빠져들 수 있는 음악. 그것이 이들의 가장 강력한 성취였다.

물론 이 해석 욕망은 앞서 말한 문화자본의 욕망과 맞물렸다. 누군가에게 핑크 플로이드는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는 표시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시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안으로 다시 돌아가 확인할 만한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난해한 척하는 현학적 음반이 아닌, 난해한 세계를 놀라울 만큼 정교한 감각으로 번역한 음반이었다.

심오하지만 감각적으로 아름답다. 이 균형이야말로 핑크 플로이드가 단순한 ‘지적 허영의 상징’을 넘어 대중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다.

We‘re just two lost souls swimming in a fishbowl, year after year
Runnin’ over the same old ground, what have we found?
The same old fears, wish you were here
(우린 그저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길 잃은 두 영혼일 뿐이야
익숙한 땅을 밟으며, 우리는 무엇을 찾았을까
오래된 두려움, 네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랄 뿐)
- 핑크 플로이드, ‘내 곁에 있기를’(Wish You Were Here) 中 -
[게티이미지/Photo by Michael Ochs Archives]

취향은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사회성을 동반한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자신이 어떤 세계에 속하고 싶은 사람인지도 함께 말한다. 누군가는 샤넬백으로 자신의 감각과 위치를 드러내고, 누군가는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자신이 대중적 취향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취향은 감상의 언어인 동시에 구별의 언어다.

다만 모든 구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비어 있는 기호는 쉽게 낡고, 설명만 거창한 취향은 길게 버티지 못한다. 핑크 플로이드가 지금까지도 거론되는 이유는 그 이름이 단지 ‘어려운 음악’의 상징이어서가 아니다. 그 어려움 속 깊은 곳에, 실제로 다시 들어와 느끼고 경험하고 확인하고 싶은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이상한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너무 많이 팔려서 대중적이지만, 너무 쉽게 설명되지 않아 여전히 난해한 앨범. 누군가에게는 허영의 장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사유의 입구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압도적인 소리의 경험이었다.

취향은 때로 우리를 구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은 그 구별의 욕망을 넘어 결국 그 안에 머물게 한다. 핑크 플로이드가 대중음악사에 남긴 진짜 힘은 거기에 있다.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 감상자마저 어느 순간 정말로 그 음악 안에 머물게 하는 힘.

핑크 플로이드는 과시의 언어로 소비됐지만, 끝내 깊은 감상의 대상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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