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어담는 변호사…수천만원 ‘학폭 비즈니스’의 민낯[생존게임이 된 학폭③]

김용재 2026. 6. 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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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게임이 된 학폭③-변호사의 시선
[기획 의도]
학교폭력 엄벌주의가 교실을 비정한 ‘생존 게임’으로 밀어 넣었다. 사소한 다툼도 무조건 학폭위로 던져지면서 심의는 폭증했지만 정작 ‘학교폭력 아님’ 처분만 쏟아지며 교실의 자정 기능은 마비됐다. 입시 감점을 피하려는 어른들의 소송 대리전 속에서 아이들은 사과와 화해 대신 약점을 수집했다. 피해자 보호라는 본질을 잃고 사법화의 늪에 빠진 학폭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학부모·변호사·교사·학생 4개의 엇갈린 시각으로 입체적으로 해부해보고자 한다.
학교폭력 분쟁은 교육적 해결의 영역을 벗어나 거대한 법률 시장이 됐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관련 이미지. [챗GPT를 통해 제작]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어머니, 우실 시간 없습니다. 아이 휴대전화부터 가져오세요.”

서초동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 A씨는 학폭 상담실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당했다며 울면서 찾아온 학부모에게 최우선으로 시키는 일은 반성문 작성도 피해학생에 대한 사과도 아니다. 아이의 카카오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록을 뒤지는 일이다.

“상대방이 우리 아이를 학폭으로 신고했다면 우리도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전에 욕설을 한 적은 없는지, 단체대화방에서 험한 말을 한 적은 없는지, 장난으로 신체 접촉을 한 적은 없는지 전부 확인합니다.”

학교폭력 분쟁은 교육적 해결의 영역을 벗어나 거대한 법률 시장이 됐다. 교육계에서는 이를 두고 생활기록부를 둘러싼 학부모와 변호사들의 모습을 보며 이른바 ‘학폭 비즈니스’가 팽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2학년 박준영(가명)군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군은 동급생 5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기를 찌르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다. 부모가 학교폭력 신고에 나서자 가해학생 측은 “박군도 문제 행동을 했다”며 일제히 맞신고를 제기했다.

형사처벌 대상도 아닌 초등학생을 상대로 형사 고소까지 진행됐다. 결국 아이들은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고 학폭위에서는 가해학생 5명 가운데 4명이 혐의없음 판단을 받았다.

고교 유형별 학폭 심의 건수 증감률
‘입시’ 얽히자 학폭에 ‘변호사’ 찾는 학부모들

초등학생 사건조차 맞신고와 법률 대응으로 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폭 신고가 더 이상 학교 안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자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고·국제고 내에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년 16건·6건이었던 학폭위 심의 건수는 2025년 34건·13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와 입시를 위해 지갑을 연다. 학폭 사건을 주로 맡아서 진행한다는 변호사 B씨는 “학부모들이 거액의 수임료를 감수하는 이유는 결국 생활기록부 때문”이라며 “대입에서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변호사 비용을 일종의 입시 보험료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폭 기록이 있는 지원자들의 불합격 사례가 속출하면서 학부모들의 공포심은 커졌다. 대치동에 거주하며 고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며 학폭 관련 소송을 겪은 김모(44)씨는 “1000만원, 2000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학폭 기록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시에 직결되는 학폭 관련 수임료는 적지 않다. 학폭 사건을 다수 맡고 있는 변호사에 따르면 학폭위 관련 의견서 작성에는 200만원가량, 상담·동행에는 500만원가량이 필요하다. 학폭위 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까지 진행할 경우 비용은 수천만원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지금은 신고가 들어오는 순간 맞신고·소송 검토하는 분위기”

변호사 업계는 비전문적인 학폭위 시스템 안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인 방어권 행사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소년사건을 맡았던 정의종 변호사는 “언론에서는 변호사들이 가해학생의 면피를 위해 맞신고를 부추기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현실에는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단체대화방에서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장난이 일부만 캡처돼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법원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폭위 처분에 한계를 느끼고 법정으로 향해 징계 수위가 조정되는 경우도 있다. 학폭위 판단에 불복하는 학부모들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향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가해학생 측이 제기한 학교폭력 조치 취소 소송 148건 가운데 24건은 일부 인용돼 처분이 취소되거나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이지수 변호사는 “예전에는 사과와 중재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고가 들어오는 순간 맞신고와 소송부터 검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학생들의 관계 회복보다 생활기록부 방어가 우선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학교폭력 제도의 본래 취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제도가 학생 보호와 선도 보다는 점차 법률 분쟁의 장이 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담임교사나 상담실보다 먼저 변호사를 찾고 사과와 화해보다 증거 수집과 소송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2026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실 안 갈등이 서초동 법률시장으로 옮겨간 사이, 정작 학생들의 관계 회복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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