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안에 입장 안 내면 끝”…영국 정치 삼킨 스마트폰
“뉴스 10분 내 반응 못하면 뒤처져
유권자·로비단체 요구 실시간 노출”
설득 사라지고 비공개 메신저로 논의

브렉시트 이후 10년 동안 총리만 6명이 바뀐 영국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정치 혼란을 일으킨 주범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왓츠앱 단체방은 의회 못지않은 권력 공간이 됐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정치’가 영국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고 진단한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정치인들은 최근 스마트폰에 대한 피로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노동당 좌파 진영의 대표 인물인 클라이브 루이스 의원은 “휴대전화를 정말 싫어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도 집중력 저하와 끊임없는 업무 압박을 호소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치인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밤늦게까지 이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의회 토론 중에도 상당수 의원들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흔하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 정치를 ‘24시간 실시간 반응 체제’로 바꿔놓았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하루나 며칠에 걸쳐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BBC 속보가 나온 지 몇 분 안에 반응하지 않으면 뒤쳐진 인물로 취급된다. 한 야당 의원은 “뉴스가 뜬 뒤 10분 안에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이미 어제의 뉴스가 된다”고 말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실에서 전략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를 지낸 제임스 라이언스는 “정치인들이 유권자와 로비단체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노출되면서 장기적 국가 과제를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당시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를 이끌었던 스티브 베이커 전 의원은 “왓츠앱이 모든 것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단체 대화방과 브로드캐스트 메시지를 활용해 의원들을 결집시켰고, 언론에도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베이커 전 의원은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동조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많은 의원들이 정책 문서를 직접 검토하기보다 자신이 보내는 메시지를 신뢰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 정당 내 전통적 통제 장치도 약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원내총무들이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당론을 관리했지만, 이제는 상당수 논의가 비공개 메신저에서 이뤄지면서 당 지도부가 내부 움직임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루이스 의원은 “대면 설득과 인간관계의 기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이 정치 불안정을 더욱 키울 가능성을 경고한다. 영국에서는 이미 2023년 키어 스타머 당시 노동당 대표의 가짜 음성 파일이 SNS를 통해 확산됐고, 2024년에는 사디크 칸 런던시장의 허위 음성 녹음이 논란이 됐다.
라이언스는 “이제는 눈으로 본 증거조차 믿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며 AI 기반 딥페이크 기술의 위협을 우려했다. 베이커 전 의원도 “스마트폰 시대가 기관총과 폭격기의 시대라면 AI가 정치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핵무기 시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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