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면허’에 막힌 자율주행택시…모빌리티 덮친 ‘제2의 타다’ 공포
사업 시작도 전에 24조원 진입장벽…소비자만 혁신에서 소외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확실히 10년 후에는 모든 주행의 90%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10년 안에 사람이 자기 차를 직접 모는 것은 꽤 드문 일이 될 것이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5월18일 국제 스마트 모빌리티 서밋)
자율주행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이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구글 웨이모, 테슬라, 엔비디아, 우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가장 열을 올리는 격전지는 단연 '자율주행택시' 영역이다. 웨이모는 미국 주요 도시에서 주당 50만 건이 넘는 유료 운행을 달성하며 막대한 주행 데이터를 선점 중이고, 테슬라는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이 적용된 로보택시 시범운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 역시 자율주행 자회사 포티투닷과 모셔널을 통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웨이모에 아이오닉5 기반 로보택시 수만 대를 공급하며 시장 선점을 향한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여객운송 제도는 '택시 면허' 체계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 주도의 '자율주행택시 사회적 협의체'에서 렌터카 업계가 사실상 배제되며 모빌리티 업계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혁신 모빌리티 서비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타다 사태'의 악몽이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다.

렌터카 업계, 자율주행 협의체에서 또 배제돼
갈등의 도화선은 5월27일 국토교통부 산하 자율주행택시 사회적 협의체에서 진행된 투표였다.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렌터카연합회)의 정식 구성원 참여 안건이 7대 5로 부결된 것이다. 이에 렌터카연합회는 6월1일 입장문을 내고 "'자율주행택시 사회적 협의체'에서 렌터카 업계의 공식 참여 안건이 택시 관계자들의 조직적 방해로 부결된 사실에 강력히 항의한다"며 "대한민국 모빌리티 혁신을 가로막는 택시 면허 중심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1월 자율주행 시대에 걸맞은 운송 사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해당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카카오모빌리티, 우버, 자율주행산업협회, 교통안전공단 등 총 12개 단체 및 개인으로 구성됐으나, 이 중 법인·개인택시연합회와 양대 택시노조 등 택시 관련 단체가 4곳에 달해 출범 초기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발언권만 있는 옵서버 자격으로 협의체에 배석 중이던 렌터카연합회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식 참여를 꾸준히 요청해온 상태였다.
렌터카 업계가 정식 참여를 요구하는 명분은 명확하다. 완전자율주행(레벨4 이상) 시대가 열리면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와 '차량을 빌려 타는 렌터카'의 물리적 경계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인차량 상용화 이후 승객이 앱으로 차량을 호출해 목적지까지 이동할 경우 해당 서비스를 택시, 렌터카, 카셰어링 중 무엇으로 규정할지 모호해진다. 따라서 렌터카 업계 역시 제도 설계 초기 단계부터 반드시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갈등의 핵심은 결국 '면허'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다. 협의체 내 택시 업계는 자율주행택시 사업 역시 기존 택시 면허를 사들여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전국 택시 면허 수는 약 24만6000대 수준이다. 서울 개인택시 면허 시세가 1억원을 훌쩍 넘고 일부 지방은 2억원을 호가하는 점을 감안해 대당 1억원으로만 단순 계산해도, 전체 면허를 확보하는 데 최소 24조원의 막대한 자본이 소요된다. 이는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지난해 전체 연구개발 비용(26조3347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택시 사업자는 관제센터, 충전·정비 인프라 투자 등 제반 비용을 투입하기도 전에 면허를 사들이는 데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높은 진입장벽을 세워놓고 사실상 자율주행택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렌터카연합회 측도 "기술의 진보가 산업 간 장벽을 허물고 있는데 정부와 협의체는 과거의 낡은 '면허' 틀에 갇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며 "협의체가 렌터카 업계를 배제한 채 결론을 내리는 것은 타다 금지법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정 면허 소지자에게만 미래 자율주행 운송 시장을 독점시키는 것은 소비자 편익 침해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모빌리티 업계 전반에 번진 가장 큰 공포는 이번 갈등이 '제2 타다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8년 첫선을 보인 타다 베이직(11인승 승합차 호출 서비스)은 승차 거부 없는 서비스로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어냈으나,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이 2020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모빌리티 혁신에 제동이 걸렸다.

"밥그릇을 염두에 둔 반대, 시기상조"
이후 2023년 6월 대법원이 타다 서비스에 대해 "적법한 렌터카 서비스"라며 무죄를 확정했지만 기업은 이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뒤였다. 과거 우버, 타다 등 혁신 서비스들이 번번이 택시 업계의 기득권 반발에 부닥쳐 좌초했던 뼈아픈 역사가 미래 핵심 산업인 자율주행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될 조짐을 보이는 셈이다.
신기술과 기존 산업 간 충돌 문제가 다시 불거지며,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청년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타다 사태를 언급하며 "결국 이해관계 조정을 잘못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생계 수단을 위협받는 사람들 입장에선 보면 대안이 없으니까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기득권의 지위와 충돌하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힘이 센 기득권 중심으로 가다 보면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극단적으로 '양자택일(all or nothing)'로 싸우지 말고, 택시 사업자들에게 일정한 지분을 주거나 동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역시 현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차과 교수는 "아직 자율주행택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택시 업계가 벌써 밥그릇을 염두에 두고 반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꼬집었다. 문 교수는 "한국 소비자들이 로보택시를 원활히 접하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결국 한국 소비자만 첨단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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