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월드컵 현장 관찰기 ⑤] '싸커 월드컵'이 시작됐다… 104경기 중 78경기가 미국에서

조남기 기자 2026. 6. 13. 15: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일레븐> 로스앤젤레스(미국)-양정훈 칼럼니스트

 

'Go Team USA.'

 

댈러스에서 출발한 아메리카 에어라인 항공편이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는 기장의 안내방송 끄트머리에는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가 실렸다. 유니폼, 머플러, 국기, 가면 등 응원 태세를 갖추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미국 팬들은 유쾌한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다소 고조된 목소리 안에 '사커'란 단어가 담길 확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었다. 이처럼 이번 월드컵 104경기 가운데 78경기를 품는 대회 본진의 첫인상엔 축구가 뚜렷하게 묻어났다.

 

1994년 패서디나의 로즈볼 스타디움으로부터 로스앤젤레스의 월드컵 무대 자격을 넘겨받은 2026년 잉글우드의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은 2020년에 개장한 최신식 경기장이다. 진입로 계단에 고저의 편차를 두고, 상업시설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며, 콘크리트 구획 안에 불규칙하게 자란 식물 그대로를 방치(?)하는 등 미국식의, 그리고 캘리포니아식이 아닐까 하는 자유분방함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축구장의 이미지가 정체성의 우위를 다투는 전장에서 콘텐츠를 뽑아내는 잠재적 보관함으로 변해가고 있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대회 기간 '소파이(So-Fi)'란 상업적 이름을 잠시 벗는 이곳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은 미래지향의 첨단 중의 첨단을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 천장에 매달린 이음새가 보이지는 않는 초대형 곡면 스크린은 마치 우주선이 수직으로 착지하려는 감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건물 자체만으로, 살짝만 퍼 올려도 많은 흥미로운 것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올 것 같은 '대박 콘텐츠 탄생'의 영감을 강하게 부여한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흰 바탕에 빨간 물결을 겹겹으로 치는 문양의 자국 팀 유니폼을 차려입은 7만여 가득한 홈 팬들의 즐거운 박수는 수시로 터져 나왔다.

 

이곳에 담긴 월드컵의 첫 번째 콘텐츠는 다름 아닌 2026 북중미 대회 미국 개막식이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캐나다의 토론토에 이은 마지막 오프닝 행사에 어떤 내용들이 담기게 될지, 또 제1경기의 의례 이상의 무언가의 의미를 표출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막상 열어보니 상당히 심플한 전개로 나아갔는데, 오히려 예상 밖이었기에 강렬한 임팩트로 다가왔다. 미국 영토가 그려진 널찍한 통천이 그라운드의 중앙부를 덮었고,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월드컵이 솟아나는 장면이 연출됐다. 혹, 미국의 대지에서 월드컵 트로피란 꽃이 피어나는 감각을 전달하려는 의도이지 않았을까? 축구를 그저 엔터테인먼트로 치부하는 게 아니냐는 미국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한 주최 측의 복안이었다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피치를 크게 가로지른 붉은색 알파벳 'LA'는 절대 과하지 않게 더해진 알찬 포인트였다.

 

이런 관점을 지니면, 경기장 전광판에 현장의 축구 레전드들이 잡히는 빈도보다 톰 크루즈, 패리스 힐튼 등의 유명인들의 얼굴이 비치는 빈도가 확연히 높았던 사실을 이곳이 할리우드를 품은 로스앤젤레스라서, 곧 개최 도시의 특성이 반영돼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는 방향이 합당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최근엔 지역 가릴 것 없이 대형 축구 대회의 식전, 식중 이벤트에 대한민국의 문화, 특히 K팝이 전면으로 나서는 기획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카타르 개막식의 BTS 정국을 필두로, 2026년엔 멕시코 개막식의 이재에 이어 미국 개막식엔 블랙핑크의 리사가 스테이지를 장식했다. 7월 19일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의 결승전 하프타임 공연엔 BTS 완전체 출연이 예고돼 있다.

 

현지의 대회 주관 방송사 폭스(FOX)는 킥오프 3시간 전부터 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생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패널로 나선 미국 축구의 레전드 알렉시 랄라스는 "제가 참가했던 32년 전 홈 대회와 비교하면 거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어요. 다만 단 한 가지, 'Fun(재미, 즐거움)'이라는 요소만큼은 여전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라며 다시 월드컵을 안방에서 맞이한 소회를 밝혔다.

 

함께 출연한 티에리 앙리가 "승리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 모두가 'Fun'이죠"라며 랄라스의 의견을 구체화했다. 그러자 옆자리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일한 의견임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축구 영웅들의 상징적 대화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북중미 월드컵의 출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유럽 본고장의 승부 정신과 미국의 호방한 낭만이 부드럽게 융화한 '진중한 재미'의 토대 위에 39일간 멋진 열전들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는 한껏 치솟았다. 미국과 파라과이의 로스앤젤레스 대결을 필두로 '싸커 월드컵'은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일레븐

ⓒ(주)베스트일레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