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 밀리고 트럼프에 치인 월드컵…46조 경제 효과 기대 무색

김하늬 미국 통신원 2026. 6.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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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휩쓰는 NBA 닉스 열풍…트럼프도 결승전 경기 ‘직관’
비싼 티켓값·이민단속국 단속 우려에 월드컵 열기는 시들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참가국은 48개국, 경기 수는 104경기.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은 전체 경기의 75%인 78경기를 개최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사실상 미국 월드컵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리고 있음에도 미국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다. 과거 개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국적 축제 분위기는 아직 제한적이다. 독일이나 브라질, 프랑스처럼 개최국 전체가 월드컵에 빠져들었던 상황은 아직까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결승전이 열리는 뉴욕만 봐도 그렇다. 요즘 뉴욕을 달구는 것은 축구가 아니라 농구다. 27년 만에 미국 프로농구(NBA) 파이널에 진출한 뉴욕 닉스 열풍이 도시를 휩쓸고 있다. 맨해튼 거리 곳곳은 닉스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로 가득하다. 스포츠 바와 전광판도 월드컵보다 NBA 파이널 이야기로 넘쳐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이널 경기를 보기 위해 매디슨스퀘어가든을 찾은 날에는 맨해튼 미드타운 일대가 사실상 비상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비밀경호국이 투입됐고 도로와 보행로가 통제됐다. 공항 수준의 검색대가 설치됐으며 일부 대형 응원 행사까지 취소됐다. 실제 뉴욕 주요 언론과 스포츠 채널의 헤드라인 상당수는 월드컵보다 닉스의 우승 가능성과 트럼프의 경기 관람에 집중됐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위치한 캔자스시티 스타디움. 캔자스시티는 2026 북중미 월드컵 개최도시 중 하나다. ⓒEPA 연합

개최도시 호텔 80% 예약률…전망치 밑돌아

반면 월드컵 공식 상품 매장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 이벤트 한복판에 있는 도시라기보다는 NBA 챔피언을 기다리는 농구 도시의 모습에 가깝다. 물론 미국 전체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개최도시들은 팬 존(zone)과 야외 응원 공간을 조성하며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시애틀은 바다 위에 대형 바지선을 띄웠고, 뉴욕시는 5개 자치구에 공공 시청 공간을 마련했다. 마이애미는 해안가 공원을 축구 축제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외신들은 하나같이 "분위기가 예상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는 '돈'이 지목됐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유동 가격제)'을 도입했다. 이에 일부 경기는 유치 당시 제시했던 가격의 수십 배 수준까지 티켓 가격이 치솟았다. 일부 미국 대표팀 경기 티켓은 수천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재판매 시장에서는 개막전 티켓 가격이 100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다. FIFA가 2018년 북미 3국의 공동 유치 당시 약속했던 합리적인 가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바가지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결승전이 열리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과 맨해튼 펜스테이션을 연결하는 특별열차 왕복 요금이 평소의 몇 배 이상으로 인상되면서 주민 반발이 터져 나왔다. 비싼 티켓값에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더해지면서 "월드컵 보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캔자스시티·필라델피아·보스턴 등 일부 개최도시에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식당 영수증에 18~20%의 자동 팁 또는 서비스 요금을 일괄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이 미국식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역대 가장 비싼 월드컵이 더 비싸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FIFA는 월드컵이 약 305억 달러(약 46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해외 관광객 유입이 예상보다 적기 때문이다. 호텔 업계는 비자 문제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실제 다수의 호텔 관계자들은 국제 관광객 감소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답했다. 시장조사업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월드컵 개최도시들이 관광·숙박업 중심으로 일부 경제 성장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올해 미국 전체 고용과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코스타의 호텔 시장 분석 책임자인 얀 프라이탁은 "국제 관광객 부족은 전체 경제 효과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호텔 업계도 기대했던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호텔숙박협회 조사에 따르면 개최도시 호텔의 약 80%의 예약률이 전망치를 밑돌고 있다고 답했다. 캔자스시티에서는 10곳 중 9곳이 평년 여름보다 예약이 저조하다고 응답했으며 다른 도시들 사정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부 호텔 관계자들은 이번 월드컵을 두고 "논 이벤트(non-event)"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제심판도 입국 거부…커지는 비자 리스크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은 월드컵의 또 다른 그림자가 되고 있다. 유효한 비자를 소지한 국제심판마저 입국이 거부되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최근 인권단체들은 월드컵이 공포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이터는 "ICE(이민세관단속국)의 단속 강화와 입국 제한 정책이 팬과 노동자, 이민자 공동체를 위축시키고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상징적 사건도 발생했다. 소말리아 출신 국제심판 오마르 압둘카디르 아르탄은 유효한 미국 비자를 갖고 있었음에도 입국이 거부됐다. 그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소말리아 출신 심판이 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대회 참가가 무산됐다. 이란 대표팀 역시 당초 미국에 설치하려던 베이스캠프 계획을 접고 멕시코로 옮겼다. 가디언은 "월드컵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축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열리는 행사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경기장 주변 ICE 배치 가능성에 반대하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그러나 FIFA와 MLS(Major League Soccer)는 이런 우려를 단기적 진통으로 보고 있다. 북중미축구연맹 회장인 빅터 몬탈리아니는 "이번 월드컵의 진짜 유산은 경제 효과가 아니라 북미 축구의 문화혁명"이라고 주장했다. MLS가 언젠가 세계 2위 리그는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경쟁하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MLS의 돈 가버 커미셔너는 월드컵을 "6주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현관문"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MLS는 2018년 월드컵 유치 이후 7개 구단을 추가했고 전용구장 9개를 건설했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다. 가디언 인터뷰에 응한 영국 출신 축구팬 덩컨 터커는 "축구는 원래 공동체와 포용, 열정의 스포츠"라며 "지금의 월드컵은 평범한 팬들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캐나다 인권활동가 메리 캐프런 역시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티켓 가격 때문에 경기장을 찾을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월드컵은 누구를 위한 축제가 될까. 티켓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이벤트가 될 것인지, 아니면 FIFA가 말하는 '세계인의 축제'가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월드컵이 미국 사회의 물가, 이민, 불평등, 그리고 스포츠 상업화라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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