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한웅큼 더 주는 채소가게, 거기 어딥니까?… 1g에 달린 1만근의 신뢰
법률따라 2년마다 계량기 정기검사 의무
수원시, 주민센터 돌며 순회… 상인들 발길
표준 분동 사용 오차범위내 ‘합격 스티커’
실제보다 적게 표기도 “어쩐지 많더라” 웃음
시 “공정한 상거래 질서 확립… 협조 감사”

“2003년식 4등급 효성(제조사명), 접시식 저울, 앞유리 파손…. 사용중지입니다.”
검사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23년째 청과물 가게를 지켜온 접시지시 저울 하나가 이날 폐기 대상으로 분류됐다. 접시지시 저울은 바늘이 가리키는 눈금을 그대로 읽는 아날로그 방식이라, 앞유리가 깨지면 바늘이 외부에 노출돼 손으로 건드리는 등 무게가 왜곡될 수 있다. 상인은 아쉬운 눈으로 한 번 더 쳐다본 뒤 빨간 불합격 스티커가 붙은 저울을 들고 돌아갔다.
지난 12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전시장 건물 지하 1층에 마련된 임시 검사장에서는 상거래용 저울 정기검사가 한창이었다. ‘계량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10t 미만 상거래용 비자동저울을 대상으로 2년마다 계량기 정기검사를 실시한다. 정기검사를 받지 않은 저울을 쓰면 2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수원시는 지난 8일부터 동주민센터를 돌며 순회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아침부터 임시 검사장에는 저울을 든 상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 사람씩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검사원의 손끝에서 분동(저울의 정확도를 재는 데 쓰이는 표준 무게추)이 오르내리고 대부분은 합격 스티커가 부착됐다. 이따금 “사용중지입니다”라는 말이 나오면 저울을 들고 온 상인의 눈이 잠시 커지기도 했다.


상인들에게 저울 눈금은 하루 매출이 결정되고 손님과의 신뢰가 쌓이는 기준점이다. 무거운 저울을 직접 들고 검사장을 찾아오는 수고가 번거로워 보일 수 있지만, 이 눈금 하나가 맞아야 비로소 공정한 거래가 시작된다.
중국식품점을 운영하는 양근영(60)씨는 묵직한 전자저울 세 대를 수레에 싣고 왔다. 그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1근이 500g으로 통한다. 포장 단위를 맞추고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런 차이를 늘 신경 쓴다”고 강조했다.
35년째 수원역 인근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진태(70)씨는 오토바이에 전자저울을 싣고 검사장을 찾았다. 검사원이 저울 명패를 확인하고 5㎏, 10㎏짜리 분동을 각각 올리는 동안 김씨는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렸다. 그는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니라 익숙하다. 시장 인근에서 진행되니 멀리 갈 필요가 없어 번거롭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잠시 후 합격 통보를 받은 김씨는 저울을 다시 챙겨 들고 가게로 돌아갔다.
이날 검사장에서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한 상인은 가게에서 쓰던 저울이 실제보다 한 눈금 적게 표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동안 손님들에게 채소 한 움큼씩을 더 얹어 준 셈이다. 사용 중지 대상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계량을 위해 수리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어쩐지 같은 만원어치를 사도 우리 집이 양이 더 많은 것 같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검사는 한국시험교정기술원에서 인증받은 표준 분동을 올려 오차 범위를 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합격 기준은 저울마다 다른데, 예컨대 2g 단위 저울에 15kg 분동을 올렸을 때 14.996~15.004kg 사이면 정상 범위로 본다. 검사를 진행한 김동현 카스저울스토어 대표는 “시장에서 쓰는 저울은 보통 2g, 5g 단위라 오차 범위가 넉넉하지만, 약국이나 귀금속점처럼 0.01g 단위를 다루는 업종은 훨씬 작은 분동으로 더 엄격하게 검사한다”고 설명했다.
분동을 올렸다 내리는 등의 짧은 검사였지만, 이날 확인받은 저울 눈금은 앞으로 2년간 판매자와 소비자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수원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공정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와 판매자 간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며 “더운 날씨에도 현장을 지키는 검사 인력과 바쁜 와중에도 참여해 주신 상인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정기검사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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