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쪽이었냐” 집회 참석 영상에 12년 친구 잃어…SNS 덮친 ‘정치 손절’

공혜린 기자 2026. 6. 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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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부실투표 논란 후폭풍...언팔·차단 '정치 손절' 경험담 잇따라
SNS서 확산하는 ‘갈등의 늪’…“사람보다 정치성향이 먼저?”
전문가 “정치적 양극화가 개인 정체성 지배...관용 부족이 원인”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로 제작한 일러스트. 경기일보 AI 이미지


“집회 참석 영상을 올렸다가 12년 지기 친구와 손절했어요”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선거관리위원회 대응 논란이 정치권 공방을 넘어 시민들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3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친구와 지인 사이에서 언팔로우, 차단, 관계 단절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정치 손절’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와 연락을 끊거나 정치적 의견을 밝힌 사람을 차단했다는 게시물이 업로드 되는 모습이다.

수원에 거주하는 이정혁(가명·26)씨는 최근 선관위 대응을 비판하는 내용의 숏폼 영상을 SNS 스토리에 공유했다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했다.

이씨는 “영상 내용에 공감해 올린 것이었는데 일부 지인들이 제작자가 특정 성향의 인플루언서라는 이유만으로 ‘너 ○○○지지자였냐’, ‘나는 그쪽 사람은 믿고거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며 “관련 메시지가 계속 오면서 결국 스토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선관위 대응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 것 뿐인데 어느 진영 사람으로 규정되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며 “정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사안에 대한 의견을 말한 건데 사람 자체보다 정치 성향으로 평가받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용인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가영(가명·28)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최근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박씨는 “민주주의 가치와 시민 참여의 의미를 생각하며 현장을 찾은 것이었는데 일부 친구들로부터 ‘너 그쪽이었냐’, ‘생각보다 우리와 안 맞는 것 같다’ 등의 말을 들었다”며 “수차례 설명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언성이 높아졌고 왜 내가 해명해야 하는 입장이 돼야 하는지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적인 대화가 반복되면서 결국 12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와 관계를 정리하게 됐다”며 “정치적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사람보다 정치 성향이 먼저 보이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씁쓸했다”고 덧붙였다.

박씨의 사례처럼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간관계가 흔들리는 경험은 SNS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스레드와 인스타그램 등에는 ‘이번 기회에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선관위 관련 스토리를 올렸다가 손절당할 것 같다', ‘6년 사귄 여자친구와 정리했다’는 글들이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 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대한 평가와 낙인찍기 현상은 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집회 참가자들에게 음료와 간식 등 지원 물품을 전달하거나 관련 활동을 공유한 인플루언서들의 게시물에는 비판과 지지가 동시에 쏟아졌다.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팔로워가 대거 이탈했다는 경험담과 시위에 참여해 물품 지원을 받은 시민들의 감사 등 반응이 줄을 이루는 모습이다.

이처럼 정치적 행동이나 의사 표현이 곧 특정 진영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는 분위기 속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한 참가자가 수개표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올림픽 집회에 참여한 김성아씨(가명·34)는 “예전에는 정치 이야기를 해도 의견 차이 정도로 넘어갔는데 지금은 상대를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 같다”며 “집회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도 정치 성향에 대한 오해를 받게 될까 봐 쌍둥이 아이들에게 각각 빨강색, 파랑색 옷을 입혀서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집회에 참여한 것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시위대’로의 역할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함이 아닌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최근 나타나는 ‘정치 손절’ 현상이 단순히 정치적 의견 충돌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신과 관용 부족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회 분위기와 낮아진 관용 수준이 인간관계 단절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 정치적 입장이 단순 의견이 아닌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는 인간관계 등 비정치적 영역의 갈등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연인·오랜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정치적 견해 차이가 더 큰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관용의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준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도 “최근 정치적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상대를 비도덕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인식이 형성되면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거리를 두거나 단절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이나 오랜 친구처럼 친밀도가 높은 관계일수록 정치적 견해 차이가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사람들은 상대 집단의 생각을 실제보다 과장해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과 진솔한 대화가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혜린 기자 heygong00@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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