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안 산다는데요?"…삼성 발칵 뒤집은 소문의 실체 [인더스토리]

홍민성/김대영 2026. 6. 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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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직전 사내 떠돈 '고객사 이탈설'
'다운턴 시절' 정서가 만든 '갑을 착시'?
사진=뉴스1


"애플에서도 연락 왔다고 합니다."

지난달 중순 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삼성전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순식간에 회사를 강타했다. 총파업 돌입 가능성이 거론되며 노사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엔비디아와 퀄컴에 이어 애플까지 파업 기간에 생산된 메모리 물량은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것. 글쓴이는 "파업 리스크로 시간을 끌수록 영업손해만 커진다"고 적었다.

더 구체적인 글도 돌았다. 엔비디아가 파업 기간 팹(반도체 생산공장)에서 진행된 물량을 사지 않기로 했고, 품질 검증 부서조차 해당 물량을 보증하지 못한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공정 이력을 깐깐하게 따지는 엔비디아의 방식까지 거론되면서 글은 제법 그럴듯하게 읽혔다.

사진=삼성전자 블라인드 캡처

"골라서 받겠다? 말이 안 된다"

당시 삼성전자 측은 소문의 진위를 묻는 기자에게 "지라시"라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메모리를 사기 위해 거대 기업들이 소위 '줄을 선' 상태에서 물량을 골라 받겠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실제 지라시가 돌기 보름 전인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정반대 상황을 공개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업계 내 공급 확대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수요 대비 공급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재고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고,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은 이미 완판된 상태라고도 했다. 올해 HBM 공급 물량을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늘려 잡았는데도 모두 팔린 상황이라는 게 회사 설명이었다.

김 부사장은 "공급 부족을 우려한 고객들로부터 내년 수요가 미리 접수되고 있다"며 "이들 수요만으로도 내년 수요 대비 공급 격차가 올해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이 3~5년 단위 장기공급계약(LTA)을 요청해 일부는 계약을 마쳤다는 설명도 내놨다. 업계에서는 이런 LTA가 단순 물량 약속을 넘어 선급금과 최소 매출 보장까지 끼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객사들이 파업 기간 물량을 거부하기는커녕, 돈을 먼저 걸고 몇 년치 물량을 미리 잡으려 줄을 서고 있던 셈이다.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 57조23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6.1%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메모리사업부 매출은 74조8000억원으로 직전 분기의 2배 수준이 됐다. D램 평균판매가격은 한 분기 만에 90%가량 뛰었다. 없어서 못 파는 시장에서 '파업 물량 보이콧'이 일어나려면 고객사에 물량을 고를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남아 있지 않은 시장이었다는 평가다.

'다운턴'의 기억이 만든 소문

근거 없는 얘기가 임직원들 사이에서 그럴듯하게 읽힌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메모리 업계는 수요가 꺾이면 가격이 반토막 나고, 고객사 주문이 줄면 감산과 적자로 내몰리는 시장이었다. 2022년 다운턴을 겪으며 몸에 밴 '고객사가 갑'이라는 감각에서 보면 고객사가 물량을 거부했다는 시나리오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붐 이후 시장 구도가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객사가 공급사를 고르던 시대에서, 공급사가 한정된 물량을 어느 고객에게 나눠줄지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장은 이미 한참 전에 넘어갔는데, 일부 구성원들은 아직 다운턴 때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물론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차질과 고객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노사 모두 안고 있던 부담이었다. 그 불안 심리에 엔비디아, 애플 같은 민감한 고객사 이름이 얹히면서 소문이 부풀려졌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달 20일 총파업 예고 시한을 1시간30분가량 앞두고 잠정 합의에 서명했고, 합의안은 같은 달 27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

'인더스토리(industry+story)'는 격변하는 산업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안에서(in the story) 의미와 재미를 쏙쏙 골라 풀어냅니다. 테크부터 제조업까지, 일견 딱딱하고 나와 관계 없는 얘기 같지만 실은 흥미진진하고 우리 삶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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