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걸어도 다리가 ‘저릿’ ‘묵직’…문제는 혈관

김태훈 기자 2026. 6. 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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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말초혈관질환
말초혈관질환으로 다리로 가는 하지 동맥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일정 거리를 보행한 뒤 통증이 심해졌다가 휴식을 취하면 호전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첫걸음을 뗄 때는 괜찮다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종아리나 허벅지가 아파 자주 쉬게 된다면 문제는 ‘말초혈관’ 때문일 수 있다. 다리가 저리고 조이면서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에 근육통이나 허리 디스크 등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다리로 가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힐 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산소와 영양분을 보내는 혈관이 막히는 탓에 통증에만 그치지 않고 발이 시리거나 상처가 잘 낫지 않는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궤양·괴사로 이어져 절단 위험까지 커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말초혈관질환은 심장과 뇌를 제외한 팔과 다리 등 말초혈관에 문제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심장에서 나간 피가 온몸의 말단부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좁아지고 막힌 혈관 때문에 혈류가 줄어들면서 여러 증상을 일으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이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24년 기준 24만8000여명에 달했으며, 환자 10명 중 7명이 60대 이상이어서 고령층이 주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문제가 생기는 곳은 다리로 가는 동맥이다. 말초혈관질환 중 대표적 유형인 하지동맥폐색증은 대부분 동맥경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발생한다. 혈관 벽 안쪽에 콜레스테롤과 염증세포가 쌓여 혈관이 점차 좁아지고 심한 경우 완전히 막힐 수 있다.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을 수 있지만 병이 진행되면 일정 거리를 걸을 때 종아리나 허벅지, 엉덩이에 묵직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생긴다.

통증이 생겼다가도 쉬거나 가만히 있으면 나아지는 ‘간헐적 파행’은 이 질환의 특징이다. 이는 좁아진 혈관 탓에 활동 중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다가 활동을 멈추면 상태가 호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허리 디스크 같은 근골격계 질환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허리 디스크는 허리부터 엉덩이를 거쳐 다리로 뻗치는 저림이나 방사통이 자세에 따라 정도를 달리하는 반면, 하지동맥폐색증은 통증이 활동 및 휴식 여부에 따라 분명하게 달라져 차이를 보인다.

혈관 벽 콜레스테롤 쌓이며 증상
발 시리고 심하면 궤양·괴사까지
심근경색·뇌졸중 위험도 2~3배
초기엔 운동·약물치료로도 호전
증상 심할 땐 혈관 넓혀주는 수술

조성신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걷다가 멈췄을 때 1~2분 안에 통증이 사라진다면 근육이나 관절 문제보다 혈관 문제를 의심해야 한다”며 “단순히 다리가 아픈 질환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상처가 낫지 않거나 조직 괴사, 심한 경우 절단까지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리 혈관의 이상은 전신 건강의 적신호이기도 하다. 다리 쪽 말초혈관뿐 아니라 심장이나 뇌의 혈관에도 동맥경화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말초혈관질환 환자는 일반 인구 대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발생 위험이 2~3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증상이 발견되면 가급적 빨리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가장 기본적인 검사로 양팔과 양 발목 혈압을 비교해 ‘발목상완지수(ABI)’를 측정하는데, 누운 상태에서 10분 이내에 간단하게 끝나는 장점이 있다. ABI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증상이 뚜렷하면 하지 혈관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혈관조영술 등 정밀검사를 실시해 혈관이 막힌 부위와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박용만 명지병원 외과 교수는 “ABI 검사는 혈압을 재는 정도로 부담 없이 시행할 수 있어 평소 다리가 차거나 일정 거리 이상 걷기 어렵다면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이 좋다”며 “조기에 발견할수록 약물·운동 치료만으로도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초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는 흡연,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흡연은 혈관을 직접 손상시키고 동맥경화를 빠르게 악화시키므로 치료를 받더라도 금연하지 못하면 재발 가능성이 커진다. 당뇨병 역시 동맥경화를 촉진해 다리 혈관을 좁아지게 할 수 있으며, 말초신경 손상 등 합병증이 발생하기 쉬워 발의 상처나 염증을 늦게 발견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당뇨병 환자는 발의 작은 상처도 궤양과 감염으로 악화하기 쉬운데 혈류 문제까지 얽히면 더욱 빠르게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발 상태를 자주 확인해 상처나 물집, 피부색 변화가 있으면 바로바로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박 교수는 “다리 통증을 단순히 노화나 척추 문제로 치부해 치료 적기를 놓치는 환자가 많은데, 흡연력이 있거나 당뇨병·고혈압이 있으면서 일정 거리를 걸을 때마다 다리가 당기고 아프다면 즉시 혈관 상태를 체크하고 전문의 상담을 통해 치료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료는 병의 정도, 환자의 전신 상태, 병변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증상이 가벼운 초기에는 금연과 운동, 혈당·혈압·콜레스테롤 조절을 하면서 항혈소판제 등 약물치료를 받는 것으로도 비교적 쉽게 호전이 가능하다. 운동할 때는 통증을 느낄 정도의 보행을 반복해야 해서 다소 고통스러울 수는 있으나, 이를 통해 좁아진 혈관 주변 곁가지 혈관이 많이 형성되도록 유도해 부족한 혈류를 보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다 증상이 심해져 혈류가 많이 감소한 경우에는 혈관을 직접 넓혀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풍선확장술, 금속 그물망을 삽입해 혈관을 유지하는 스텐트 삽입술, 혈관 안의 동맥경화 찌꺼기를 제거하는 죽종절제술 등 치료법이 있다. 혈관이 막힌 병변 부위가 길거나 복잡한 경우에는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약물 방출 풍선 등 혈관 내 치료 기법도 발전해 환자 상태에 맞는 다양한 치료들이 도입되고 있다.

질환이 어느 정도 진행돼 발가락이 검게 변하거나 상처가 오래 지속되는 증상을 겪는 환자 중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도 무조건 절단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혈류를 회복시켜 조직을 살릴 수 있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에 섣불리 치료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조 교수는 “절단을 피하려면 걷다가 다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 혹은 발 상처가 잘 낫지 않을 때 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며 “발가락 색이 변했거나 상처가 오래 지속되더라도 늦었다고 단정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혈관외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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