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 부족'이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은 [사실은]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후폭풍이 거셉니다. 투표 관리 부실 등 여러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분석에서는 그 중에서도 '투표용지 부족이 실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선자와 낙선자의 표 차이는 크지 않은데, 용지 부족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더 많았다고 판단된다면, 법적 다툼의 소지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볼 만한 경우가 있을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부 집계한 <투표용지 추가 송부 투표소 등 현황> 자료를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투표 중단 시간, 얼마나?
다만, 용지가 부족했다는 것 만으로 바로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족한 용지가 중간중간 추가로 송부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투표지 부족으로 실질적인 투표권을 침해받았는지 여부입니다.
일단, 선관위는 잠시라도 투표가 중단됐다가 대기가 발생한 투표소를 모두 26곳으로 분석했습니다.

SBS 사실은 팀은 문제가 된 26개 투표소에서 어떤 선거가 진행됐는지 재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사태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잠실7동 제2투표소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의원(송파구 제4선거구), 송파구청장과 송파구의원(송파구 마선거구), 여기에 서울시의원과 송파구의원 비례대표와 교육감을 뽑는 투표가 있었습니다.
투표소가 아니라 개별 선거 기준으로, 투표지 부족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식입니다. 그리고 해당 선거의 투표 중단 시간을 다 합했습니다. 가령, 어떤 선거구의 A투표소에서 10분이 중단되고, B 투표소에서 20분, C 투표소에서 30분이 중단됐다면, 이 선거구의 투표 중단 시간 합계는 60분입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예상대로 서울, 그중에서도 송파구 지역의 투표 중단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송파구 사례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가령, 송파구의원을 뽑는 '송파구 가선거구'를 보겠습니다. 이 선거구에서 3명의 당선인이 나왔는데, 3위 당선인과 4위 낙선인의 표 차이는 102표였습니다.
송파구 가선거구는 풍납1동과 풍납2동, 잠실4동과 잠실6동 등 4개 행정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족했던 투표용지는 698장으로 집계됐습니다.
당선인과 낙선인의 차이가 102표였고 투표지가 698장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해서, 곧바로 투표지 부족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투표지 부족분은, 원래 준비했던 투표지와 최종 투표 수 차이를 비교해 산출 한 것으로, 투표 과정에서 추가로 공급된 투표지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용지 부족으로 투표 절차가 중단됐다면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아집니다. 선관위 자료를 보면 이 지역 19개 투표소 가운데 3곳에서 투표가 중단됐고, 중단 시간을 합산하면 최소 74분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 보니까, "투표지 부족 등이 선거 결과 등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현재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독일은 '권리 침해'를 어떻게 계산했을까
① 투표지가 없어서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가.
② 오후 6시 출구조사 발표 이후 투표하게 된 유권자는 얼마나 되는가.
③ 긴 대기줄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가.
일단,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때문에 투표 자체를 최종적으로 하지 못한 유권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연장 투표를 통해서라도 대부분 투표를 마쳤다는 겁니다.
쟁점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로 옮겨 갑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를 판단할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관련 기준이나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볼까 합니다.

지난 2021년 9월 독일 베를린 지방선거 사례는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당시 독일 선거 당국은 유권자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해졌고, 다른 선거구의 투표지가 잘못 배부되는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투표지 부족으로 운영이 중단된 일부 투표소는 법정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겼습니다. 부족한 투표지를 복사해 사용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재선거를 결정한 베를린 헌법재판소 판결문은 155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우리 지방선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베를린 사례는 한국과 비교해도 규모가 상당히 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선거구역 전체에 걸쳐 1,090개의 투표소에서 오후 6시 이후에도 계속된 투표 절차는, …… 독일 기본법 제28조 제1항 제2문 및 베를린 헌법 제2조, 그리고 베를린 선거법 제7조 제1항과 결합하여 보장되는 자유선거 원칙에 위반된다.
Die nach 18 Uhr andauernde Wahlhandlung in 1.090 Wahllokalen im gesamten Wahlgebiet …… verstößt jedenfalls dann gegen den Grundsatz der freien Wahl aus Art. 2 VvB, Art. 28 Abs. 1 Satz 2 GG i. V. m. § 7 Abs. 1 LWG …….
- 베를린 헌법재판소 VerfGH 154/21 판결, 2022년 11월 16일
이제 그 규모를 따져볼 차례입니다.
베를린 헌법재판소는 앞서 말씀 드린 세 가지 쟁점, 즉, 투표지가 없어서 투표를 아예 못한 유권자, 오후 6시 이후에 투표한 유권자, 대기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유권자를 구분해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투표지가 부족해 투표하지 못한 표는 5,456장으로 집계됐습니다. 다른 지역구에 잘못 배부된 투표지는 4,002장, 부족한 투지를 불법 복제해 사용한 사례는 최소 약 3,000장으로 추산했습니다.
위와 같은 물리적인 오류는 계산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이미 집계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표 중단이나 연장 투표로 영향을 받은 유권자 수는 별도의 추산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재판부는 개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수학 계산식을 통해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 수(potentiell betroffene Personen)'를 추정했습니다.
원리는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투표가 지연된 총 시간을 유권자 한 명이 투표하는 드는 평균 시간(5분)으로 나눈 뒤, 투표소 안에 있는 기표소의 평균 개수를 곱하는 방식입니다. 원래 독일은 유권자 한 명이 투표하는 시간을 3분으로 계산했었는데, 당시는 코로나 때문에 투표 절차가 좀 더 까다로워서 5분으로 올려서 잡았다고 합니다. 투표소 안의 기표수 평균 개수는 법적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은 평균 2.36개였는데, 그 이후는 좀 늘어서 평균 2.54개로, 따로 계산했다고 썼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기존에 확인된 물리적 오류 표는 약 12,000표 수준이었지만, 베를린 헌법재판소는 위 숫자까지 다 더해서, 기본권 침해 영향을 받은 투표가 20,724표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투표를 안 하고 돌아간 유권자의 경우는 어떻게 했을까요.
독일 헌법재판소도 이걸 계산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수치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nicht exakt feststellen)하다"고 판단해 제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규모가 나왔으니, 이제 그 영향력을 따져볼 차례입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20,724표가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했습니다.
분석 결과, 147석의 의석 중 88석 이상(약 60%)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결론 냈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재검표나 부분적인 재투표로는 민주적 정당성을 회복할 수 없다면서, 전면 재선거(Wiederholungswahl)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결했던 겁니다.

참고로 미국 사례 하나 더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투표지 부족 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진 적이 있습니다.
2022년 텍사스주 해리스 카운티의 제189지방법원 판사 선거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 부족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당선인과 낙선인 차이가 2,743표였는데, 낙선인은 용지 부족으로 선거 결과가 영향을 받았다며 재선거를 요구했습니다.
미국 법원은 원고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문제가 된 표를 최대 2,779표로 추산했습니다. 두 후보 간 표 차이보다 많은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재선거를 기각했습니다.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 2,779표가 선거의 진정한 결과를 의심하게 하거나 결과를 뒤집을 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선거 관리 하자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 반면, 미국은 그 하자가 실제 선거 결과를 뒤집었거나 결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들었는지 보다 엄격하게 따졌습니다. 결국 선거 무효 여부는 단순히 부족한 투표지 수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선거의 안정성과 참정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반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투표지 부족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할 국내 기준은 아직 없습니다.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는, 어처구니없는 선관위의 선거 관리 실패가 유권자의 기본권 보장과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끼칠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유권자가 침해 당한 권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선거에 미친 영향은 또 어느 정도인가, 선관위에 대한 강한 문책과 함께 이제 그 기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 : 김효진, 인턴 : 박근호)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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