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서 ‘폭염’으로 ‘더블 펀치’…올 장마철도 위험! [장마가 온다]③

지난해 장마는 이례적이었습니다. 제주와 남부지방에선 장마가 일찌감치 끝났습니다. 기상청은 제주도는 역대 가장 이른 6월 26일, 남부지방은 두 번째로 이른 7월 1일에 장마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장마 기간 역시 보름 남짓에 불과해 관측 이후 두 번째로 짧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7월 중순, 하늘이 뚫린 듯한 호우가 쏟아졌습니다. 7월 17일 경남 산청(단성면)에 기록된 강수량은 시간당 101mm. 지리산 자락이라는 지형적인 효과가 더해지면서 16일부터 20일까지 누적 강수량은 800mm에 육박했습니다. 1년에 내릴 비의 절반 이상이 닷새 동안 집중된 셈입니다. 결국 산이 무너지고 강이 범람해 10명 넘게 사망하는 큰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장마가 종료된 뒤라도 언제든지 강력한 폭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였습니다.
■ 닷새간의 폭우…원인은 '꽉 막힌 기압계'
당시 폭우를 몰고 온 건 북서쪽에서 찬 공기를 몰고 내려온 상층 기압골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한 비구름이 오래 머물며 피해가 커진 배경에는 중위도 상공의 '정체된 기압계'가 있었습니다.

당시 5km 상공 기압계를 보면 그린란드 부근 북대서양부터 동아시아, 일본 동쪽 해상에 걸쳐 붉은색으로 표시된 고기압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지구 순환 원격상관'(Circumglobal Teleconnection, CGT)으로 불리는 현상으로 북반구 중위도 상공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대기의 정체된 파동을 뜻합니다.
특히 한반도 부근을 보면 동쪽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버티고 있던 탓에 파란색으로 보이는 기압골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장시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처럼 전 지구적인 대기 정체 국면일 때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 폭염이 장기화하고 저기압성 구간에선 극한 호우가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 '폭우'에서 곧장 '폭염'으로…'수해 주민들 이중고'
막대한 호우 피해가 발생하자 복구 작업도 속도를 냈습니다. 7월 하순, 비구름이 물러가자마자 중장비가 투입돼 무너진 흙더미에서 잔해물을 치우고 침수된 시설을 복구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덮친 건 폭우만이 아니었습니다.

곧장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찾아온 겁니다. 밤낮없이 이어진 복구 작업 속에 이번엔 온열질환자가 속출했습니다. 폭우가 남긴 높은 습도까지 더해지며 체감온도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수해 지역 주민들은 폭우에 폭염까지 겹치는 이중고에 시달렸습니다.
강력한 무더위를 불러온 건 뜨거운 고기압이었습니다. 무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뒤덮은 데다 상층으론 중국 내륙에 중심을 둔 뜨거운 티베트 고기압까지 확장해 마치 열돔처럼 열기가 쌓였습니다. 극한 호우에서 극한 폭염으로 국면이 급전환된 셈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여름 전국 평균기온을 시간 순서로 나타낸 아래 그래프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평년 수준을 웃도는 기온 상승 국면(빨간색) 이후 폭우가 쏟아지며 잠시 기온 하강기(파란색)가 찾아오고, 이후 다시 폭염기로 접어드는 현상이 반복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한 수준의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며 날씨가 거세게 출렁이는 현상, 기후학자들은 이를 '더블 스윙' 또는 '더블 펀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 강력한 '더블 펀치'…밀려드는 '복합 재해'
이처럼 서로 다른 극한 현상이 동시에 또는 연이어 발생하는 현상을 '복합 재해(Compound Hazard)'라고 합니다. 하나의 재난에 그치지 않고 더블 펀치, 나아가 트리플 펀치로 이어질 경우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겠죠. 폭우에 이은 폭염, 가뭄과 태풍 피해처럼 최근 우리가 목격한 재난은 마치 한꺼번에 밀려드는 듯한 양상을 보입니다.

김형준 카이스트 AI미래학과 교수(기후환경에너지연구소장)는 이러한 배경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열대 해상에서 발달하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인 북태평양 고기압은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변수입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과 수축에 따라 장마와 폭염, 폭우, 심지어 태풍의 경로까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김형준 / 카이스트 AI미래학과 교수(기후환경에너지연구소장)
북태평양 고기압은 수증기를 몰고 오는 거대한 펌프 역할을 해요. 시계 방향 순환을 따라 동중국해 등 우리나라 남쪽에서 수증기를 퍼 올려 호우가 쏟아지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죠. 특히 서쪽에서 저기압이 다가오면 서로 다른 성질의 공기가 충돌하며 전선성 강우가 쏟아지는데, 최근 이러한 호우의 강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거(1958년∼1982년)와 비교해 최근(1991∼2015년) 동아시아에서 전선을 따라 내리는 비, ' 전선성 호우' 강도는 17%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김형준 교수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로 뜨거워진 바다에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화되고 수증기 유입이 늘어난 것을 원인으로 설명했습니다. 장마 기간에 발생하는 상위 1% 이상의 극한 호우 역시 인간 영향으로 5배 이상 잦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습니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폭우만 급증하는 게 아니라 폭우에서 폭염을 오가는 극단적인 스윙 현상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과 수축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매년 움직임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이 최근 동서 방향이 아닌 '남북' 방향으로 확장하고 수축하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고 김형준 교수는 전했습니다.
그 결과 폭염과 폭우를 빠르게 오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면 가장자리를 따라 수증기가 몰려와 폭우 가능성을 높이고, 반대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면 강한 폭염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 기상청, "올여름도 폭염·폭우"…'엘니뇨'도 가세
당장 이달 시작되는 장마철부터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미 여름 내내 평년보다 강력한 무더위가 예고됐고, 특히 장마철인 6월 하순부터 7월까지 평년 강수량을 대체로 웃돌 거로 예측됐습니다. 지난해만큼이나 무더위에 뒤이어 찾아오는 폭우에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장마철을 지나 8월엔 예년 수준의 비가 오겠지만 기습 호우와 태풍의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태풍 소식이 잠잠했는데 올여름은 평년 수준인 2~3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상청은 내다봤습니다.

올여름 엘니뇨 국면으로 향해가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최신 분석을 보면 5월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이 급격하게 치솟았습니다. 위 그림은 해수면 아래 수심 100m 안팎에서 보라색으로 표시된, 평년보다 '7도'나 높은 고수온이 관측된 모습입니다.
이대로라면 이번 엘니뇨는 2014-15년 슈퍼엘니뇨를 뛰어넘어 역대 가장 강한 엘니뇨로 불리는 1997-98년과 맞먹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는 NOAA 역시 올해 하반기에 엘니뇨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매우 강'(슈퍼)한 수준으로 발달할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 "변동성 심한 날씨"…올여름도 '더블 펀치' 오나
적도 중·동태평양이 평소보다 달아오르는 엘니뇨 현상이 찾아오면 전 지구적인 대기와 해양의 순환이 뒤바뀌며 재해가 급증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름철에는 뚜렷한 영향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엘니뇨로 접어드는 여름에 남부지방의 기온이 낮아지고 비가 많이 오는 정도의 경향성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날씨 예측에는 열대 태평양뿐 아니라 인도양과 북대서양의 고수온 현상, 북극의 해빙과 식생 변화, 눈덮임 등 다양한 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예상욱 교수는 특히 북쪽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상욱 /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최근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 동시베리아의 온난화로 눈이 사라지고 초목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돼 우리나라로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밀려 내려오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2020년대 들어 잦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낮에는 햇볕이 강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이유도 북쪽 한기의 남하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엘니뇨 시기에 필리핀 동쪽 바다에 고기압성 순환이 강해지며 남서풍을 따라 많은 수증기가 공급될 수 있습니다. 지구 전체로 봐도 적도 태평양 동쪽에 집중된 뜨거운 열기가 퍼져나가며 수증기량을 늘리는 역할을 합니다.
전문가들은 저기압이 통과하거나 북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밀려오는 등 트리거만 있으면 폭우의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예상욱 교수는 또 논문을 통해 2000년 이후 전 지구적으로 폭염 이후 가뭄이 뒤따르는 복합 재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폭우가 선행하고 폭염이 뒤따르는 경우가 우세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경우 폭우가 끌어올린 습도 탓에 견디기 어려운 습한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여름도 지난해처럼 '더블 펀치'를 맞는 것 같은 극심한 복합 재해가 찾아올 거라고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후변화 속에 뜨거운 바다와 북극, 엘니뇨라는 변수까지 더해진 이번 여름은 어느 해보다 날씨 변동성이 심할 거라는 전망은 일치합니다.
이제 곧 장마철로 접어드는 6월 하순입니다. 철저한 사전 대비와 점검만이 재해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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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실 기자 (weez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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