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기업, 프랑스 선거까지 개입…‘친팔’ 후보 떨구려 ‘성범죄자 누명’

이스라엘의 기업이 3월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친팔레스타인’ 후보를 낙선시키려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 회사는 지난해 뉴욕 시장 선거 등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정부는 추가 조사로 배후를 잡을 계획이다.
프랑스 총리실 산하 허위정보조사기구인 ‘비지눔’은 11일(현지시각)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로크 솔리스’(Rokh Solis)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보 작전을 탐지했다”며 “이스라엘 행위자들의 개입을 보여주는 여러 기술적 지표를 확인했다. 특히 ‘블랙코어’(Blackcore)라는 이스라엘 기업이 연관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비지눔은 지난 3월12일부터 프랑스 지방선거를 겨냥한 “외국발 디지털 개입”을 감지하고 실태를 추적해왔다.
조사 결과 블랙코어는 3월 초께부터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후보들을 겨냥해 정보 왜곡 작전을 폈다. 마르세유에 출마한 후보 세바스티앵 들로귀는 ‘소피’라는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가짜뉴스에 시달렸다. 갑자기 생긴 엑스(X)·페이스북·블로그 계정들이 글을 퍼날랐고 골목에는 벽보가 붙었다. 벽보의 큐알(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소피의 블로그로 연결됐다.
이어 ‘카미유 모로’라는 인물은 지역 기자들에게 소피를 취재해보라는 제보 이메일을 뿌렸다. 기자를 사칭한 ‘클레망스 로랑’이란 인물은 왓츠앱 메신저로 들로귀 후보에게 해명 요구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모두 블랙코어가 만들어낸 유령 인물들이었다.
툴루즈 후보 프랑수아 피크말의 경우 아동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썼다. 급조한 페이스북 계정이 챗지피티(GPT)로 쓴 허위 기사를 퍼뜨렸고, 그가 자기 누드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팔아 가자지구 주민들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피크말의 누드사진까지 올렸다.
루베에 출마한 다비드 기로는 마약 사범으로 몰렸다. 그가 텔레그램으로 마약 3그램을 주문하는 것처럼 꾸민 갈무리 화면이 돌아다녔다. 이외에도 블랙코어는 ‘대안 2026’이라는 가짜 선거 캠페인 누리집을 만들어 ‘무슬림 시민들에게 샤리아(이슬람교 율법) 도입 찬성 후보들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목록에 오른 후보들은 모두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소속이었다. 보고서는 이를 “무슬림 공동체를 앞세워 프랑스 내 공론장을 양극화(편가르기)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피해 후보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적극 규탄해온 인물들이었다. 들로귀 후보는 2024년 5월 하원 대정부 질문 때 국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꺼내 흔든 바 있다. 선거 결과 기로만 시장에 당선됐고 들로귀는 중도 사퇴, 피크말은 2차(결선) 투표에서 중도우파연합 후보에 약 7%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피크말은 선거가 왜곡됐다며 행정법원에 선거 결과 무효로 해달라고 청구한 상태다.
비지눔은 블랙코어가 프랑스뿐 아니라 지난해 뉴욕 시장 선거에도 비슷한 식으로 개입한 정황을 잡았다. 이 선거에서 뉴욕의 첫 무슬림 시장인 조란 맘다니가 당선된 바 있다. 마르크앙투안 브리앙 비지눔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작전 방식은 앙골라, 토고, 스코틀랜드, 미국 선거 등 다른 국가, 지역에서도 외국발 디지털 개입에 쓰였다”고 밝혔다. 맘다니 시장이 표적이 됐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블랙코어는 프랑스 당국 조사가 시작된 뒤 홍보용 누리집을 닫은 상태다. 프랑스 매체 리베라시옹과 이스라엘 매체 하아레츠의 공동 취재에 따르면, 이 회사는 폐쇄 전 누리집에서 스스로를 “현대 정보전 시대를 위해 설계된 영향력(공작), 사이버 기술 전문 엘리트 기업”이라고 내세웠다. 특히 소셜미디어에 1600개의 아바타(가짜 계정)을 만들어 월 최대 100만건의 게시물을 만들며, 틱톡 트렌드 순위와 인스타그램 설문조사를 조작하는 식의 ‘정치 캠페인 모델’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정 후보를 띄우는 “긍정적 내러티브”와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대항 내러티브”가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누가 이번 공작을 지시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블랙코어는 이스라엘에 법인 등기가 되지 않은 유령 기업이다. 전에 있던 누리집 주소도 지난해 8월 아이슬란드 도메인 기관을 통해 익명으로 등록됐다. 회사 책임자 등을 찾아내 추궁하기 어렵다.
다만 블랙코어가 쓰는 여론 조작 도구의 소스 코드에서 이스라엘 회사 ‘갈락티코스 에이아이(AI)’의 흔적이 나왔다. 이 도구의 개발자가 갈락티코스로 명시된 것이다. 갈락티코스는 2022년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설립된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이스라엘군 사이버첩보 부대 출신 인사 등이 대주주다. 대주주들은 리베라시옹과 하아레츠에 블랙코어와의 연계를 부인하거나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선거 개입의 배후까지 캐내겠다는 입장이다. 비지눔은 “(블랙코어의) 작전은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정보 접근·판단을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의 근본적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배후 운영자들의 성격을 더욱 구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이스라엘 정부에 블랙코어의 작전에 대한 입장도 요구하겠다고 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잠실 메운 “부정선거 재선거”…성조기 흔들며 ‘윤어게인’ 구호도
- 이란 외교장관 “미국과 종전 협상 타결, 어느 때보다 가까워져”
- [단독] 선관위원장 오후 3시 출근, 5시30분 퇴근도…‘이틀에 한 번꼴’ 일했다
- 합수본, ‘투표지 부족 사태’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 출국금지
- 체코 선수 유니폼에 박힌 태극기, 혹시 보셨나요? [아하 월드컵]
- ‘더 큰 첨벙’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 별세…향년 88
- “네타냐후, 트럼프 ‘종전 임박’ 발표에 당황”…사전 정보 못 받은 듯
- ‘평양 무인기’ 윤석열, 징역 30년 항소…“마땅한 선고, 무관용 보여줘야”
- 월드컵 뒤집어놓은 “추어탕 이유식” 오현규…부모님 휴업공지 화제
- 멸종 뒤 다시 살아난 최초의 동물…피레네 아이벡스 ‘7분간의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