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전세난 부른다…멸실의 역습 [취재후]
멸실의 가격 상승 효과, 준공의 하락 효과보다 컸다
"멸실로 전월세난 심화할 것, 정비사업 속도 조절해야"

6·3 지방선거로 서울의 신속한 정비사업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선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부동산 표심의 승리'라고 선거 결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중앙 정부 모두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속도전을 예고한 셈이다.
그런데 주택 공급이 늘면, 정말 서울 아파트 가격이 안정될까? 이런 기대는 절반만 맞다. 빈 땅에 주택을 새로 짓는 신규 택지 개발은 순수하게 주택 공급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춘다. 반면, 주거지에서 이뤄지는 정비사업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기존 집을 철거하는 멸실로 인해, 주택 재고는 감소하고 이주수요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모두 가격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9년 치 서울 아파트 전세가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은 주거 안정을 가져올 거라는 기대와 어긋났다. 분명 새집이 더 많이 공급됐는데, 멸실로 인해 서울 전체의 아파트 전세 가격은 상승했다. 전월세난을 고려해 정비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2천 세대 이상 대규모 멸실, 준공 효과 없앴다
최진 한양대 박사(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와 진창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 주택시장에서 멸실 물량과 준공 물량이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에 미친 영향을 패널 회귀모형 등으로 분석했다. 연구 대상인 2015년부터 2023년까지 9년간 서울의 멸실 주택은 27만 8,106호였고, 공급 주택은 61만 176호였다. 이 기간 25개 자치구의 월별 멸실 주택 수는 평균 102호였고, 월별 준공 주택 수는 평균 222호였다.
분석 결과, 서울 주택 시장에서 멸실의 충격은 준공의 공급 효과보다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자치구에서 세대수 대비 멸실 주택 비율이 1% 증가하면 3개월 뒤 아파트 전세가격이 0.1% 상승했다. 반대로 준공 주택 비율이 1% 늘면 1개월 시차를 두고 아파트 전세가격이 0.07% 감소했다.
특히, 2천 세대 이상 대규모 멸실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소규모 정비사업보다 전세가격 상승 폭이 5배 이상 상승했다. 멸실로 인해 임차인은 물론 집주인까지 임차 시장의 수요자가 되고, 준공 시점까지 수년간 임차 시장에 머물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 결과 멸실이 발생한 지역의 전세가격은 준공된 이후에도 예전 수준으로 하락하지 않았다.

나아가 한 지역의 전세가격 상승은 그와 인접한 지치구의 전세가격 상승을 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멸실에 따른 임대 시장의 불안이 국지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내용의 논문 '주택 공급이 전세가격 변동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및 공간적 파급 분석'은 지난해 12월 학술지 주택도시금융연구에 실렸다.
이 같은 결과는 대규모 멸실이 예상되는 시점에 사전적인 공급 조절과 전세시장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공급과 멸실 물량을 사전에 파악해, 정비사업 승인 시기를 조정하거나 멸실량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가격 급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관 기사] [더 보다] 재개발과 전세난 - 공급과 멸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79963%27
■ 2031년까지 서울 멸실량 급증…"정비사업 속도 조절해야"
최근 서울 전월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예정된 대규모 정비사업은 전월세난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시가 최재란 서울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속통합기획으로 2031년까지 예상 멸실 주택량은 22만 1천 호에 이른다. 준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2031년까지는 멸실량이 준공량보다 많다. 이 때문에 서울 주택 재고는 2031년 최고 12만 6천 호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을 위한 정비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멸실의 충격을 고려해 정비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진창하 교수는 "최근 공급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정비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이주 수요를 담아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이주대책을 먼저 고민하고 나서 공급 최종안을 정하는 순서로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정비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되면 전월세난은 물론이고 원자잿값 폭등, 건설 폐기물 처리 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도권 전월세 대란을 피하려면 매해 신규 공급되는 물량 이상으로 멸실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비사업을 위한 이주대책으로 이주비 대출이나 임대주택 공급 등이 거론되지만,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진 교수는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비 대출을 확대하면 결국 가격 상승으로 임차 시장의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임대 주택 공급은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지역에 국한돼 대규모 정비 사업과 관련해 적절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최경호 소장은 "임대주택 공급은 지속적으로 필요하지만, 당장 이주대책으로 삼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공공 임대주택의 재건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멸실을 거치면서 이주 수요를 추가로 발생시킨다. 매입 임대 주택의 공급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주택지가 늘면서 시장에서 물량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최 소장은 임대주택이 공급되더라도 집주인에게는 이주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집주인인 이주민은 집이 철거됐더라도 법적으로 유주택자라서 임대주택 입주가 불가능하다"면서 "정비사업 이주민이 한시적으로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수도권 전월세난 대응에 서울시-국토부 협력 필요"
수도권 전월세난에 대응하려면 근본적으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협력해 광역적으로 수급 체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소장은 "공공이 빈 땅에 주택을 공급하는 경우에는 멸실 효과 없이 공급만 순증한다. 이렇게 준공되면 그 주변의 민간 정비사업이 착공하는 식으로 국토부와 서울시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접한 지역끼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점을 고려해, 지자체 단위가 아닌 권역별로 정비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진창하 교수는 경기도에 예정된 3기 신도시 공급과 서울의 정비사업 이주대책을 연계해 고민해 볼만하다고 언급했다. 3기 신도시는 서울과 광역 교통망으로 연결되고 약 20만 호에 이르는 주택이 공급될 예정이다. 3기 신도시의 분양 시기와 서울 정비사업을 권역별로 묶어서 순차적으로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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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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