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행복분자’ 아난다마이드, 어떻게 균형과 평온을 조율하나

유영현 2026. 6.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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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56. 대마
왼쪽부터 대마초(AgriLife Learn), THC와 아난다마이드 구조의 유사점(outcoca blogspot), 라파엘 메초울람(위키피디아), 러너스 하이와 아난다마이드 책 표지(강성석). 사진=유영현 제공

은퇴 교수님이 책 간행 소식을 알려주셨다. 책은 독자가 주문하면 인쇄하는 'POD'(Print on demand) 방식으로 간행되었다. 요즘 이런 간행이 흔해졌다. 책을 미리 프린트하여 저장하여 두지 않는다.

음반 시장은 더 오래전부터 비슷한 변화가 왔다. 과거처럼 음반을 만들어 미리 저장해 두고 판매하지 않고 사용자 요구에 따라 서버에서 음원 데이터를 내려받는 방식(Down-streaming on demand)의 판매가 일반화되었다.

우리 몸에도 '온디맨드'(on demand) 물질들이 있다. 이들은 미리 생산하여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들과 작용 방식이 다르다.


몸 안의 'on demand' 조절자일산화질소·프로스타글란딘·아난다마이드

일산화질소(NO)는 혈관 확장이 필요할 때 즉석에서 생산되어 주변으로 퍼진다. 저장도, 운반도 되지 않는다. 염증이나 통증 매개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난다마이드'도 미리 만들어 두지 않는다. 신경이 흥분되는 즉시 합성이 시작되고 일을 시작한다. 특이한 이름의 아난다마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마와 관계있는 물질이다.

대마(Cannabis Sativa L.)는 삼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삼은 우리말이며 한자어는 마(麻). 대마는 인류 역사 속에서 약이 되기도 하였고, 종교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따라서 대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존재이다. 흔히 아편과 혼동되지만, 아편의 원료 양귀비(Papaver somniferum)와는 다른 식물이다.

수천 년 전, 고대 중국의 약초 기록과 인도의 전통 의학 문헌에는 이미 대마의 진통 효과와 진정 작용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유목민의 천막 안에서도, 고대 왕궁의 약방에서도, 이 식물은 인간의 통증과 불안을 덜어주는 동반자였다.

그러나 이 오래된 식물이 과학의 무대로 올라온 것은 불과 반세기 남짓 전의 일이다. 1960년대 이스라엘의 젊은 화학자 라파엘 메초울람은 사람의 정신과 몸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대마초 속 효능 물질을 찾아 나섰다. 메초울람과 동료들은 수많은 추출과 분리 과정을 거쳐 마침내 대마의 주된 정신 활성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etrahydrocannabinol, THC)의 구조를 밝혀냈다.

대마 연구가 열어젖힌 몸속 조절 장치

이때 대마에서 나온 물질이라는 '칸나비노이드'(cannabinoid)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알고 보니 이 발견은 단순히 한 식물의 성분을 알아낸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뇌와 몸이 화학 신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게 된다.

우선 과학자들은 THC가 몸에서 작용하는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떤 열쇠가 있다면,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였다. 그렇게 발견된 것이 수용체 CB1과 CB2이다. CB1은 주로 뇌 신경계에, CB2는 면역세포와 말초 조직에 풍부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뒤따랐다. CB1과 CB2는 원래 우리 몸이 만드는 물질에 반응하는 수용체인데 이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대마 물질과 구조가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자물쇠'가 말해준 내 몸의 숨은 시스템

사회에서 마약처럼 여기는 대마의 효능 물질과 비슷한 물질이 우리 몸에서 늘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몸에는 대마와 같은 작용을 하는 물질, 이에 반응하는 수용체, 그리고 이를 조절하는 효소도 있다는 개념이 세워졌다. 이를 '내인성 칸나비노이드 시스템'(Endogenous cannabinoid system, ECS)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이 개념은 20세기 말 의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대마 연구는 어느새 인체의 숨겨진 생리 조절 시스템을 밝히는 연구로 변모해 있었다.

이 시스템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선 다음 단계로 대마 수용체에 결합하는 열쇠인 '리간드'(ligand)의 정체가 밝혀져야 했다. 1992년 메초울람 연구팀은 THC와 유사하게 작용하는 지질 분자를 분리해 냈다.

그들은 이 물질에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난다'(ananda)는 산스크리트어로 깊은 행복과 환희를 뜻한다. 여기에 화학 구조를 나타내는 '아마이드'(amide)를 붙여 만들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언어를 과학자들이 차용한 이유는 단순히 낭만적인 감성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한 기쁨을 넘어 최고의 행복, 환희를 의미하는 단어 아난다라는 단어가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아난다마이드는 '행복분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난다마이드, 필요할 때 만들어지는 '행복분자'

ECS는 다음 세 요소로 구성된다. 신호를 보내는 아난다마이드 같은 엔도칸나비노이드, 그 신호를 받는 수용체(receptor), 그리고 신호를 만들고 없애는 효소. 우리 몸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조율 장치와 같이 활동한다.

ECS의 핵심 역할은 항상성(恒常性) 유지다. 체온, 통증, 염증, 스트레스 반응처럼 몸의 상태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ECS는 조용히 개입해 균형을 되찾도록 돕는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소리를 키우거나 줄이며 전체 조화를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이 시스템은 하루 종일 우리 몸과 마음의 상태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아난다마이드는 온디맨드 물질이다. 호르몬들과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 물질은 세포 안에 저장되었다가 신호가 오면 방출된다. 하지만 아난다마이드는 필요할 때 세포막의 지질 성분에서 즉석 합성되고, 역할을 마치면 빠르게 분해된다. 상황이 생기면 등장하고 상황이 지나면 사라지는, 말 그대로 "요구에 반응하는" 분자다.

이런 온디맨드 방식은 전통적인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과 뚜렷이 대비된다. 인슐린이나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은 미리 만들어 저장되었다가 필요할 때 대량 방출되어 전신에 영향을 준다.

반면 아난다마이드는 국소 부위에서 짧고 정밀하게 작용한다. 일반 호르몬이 온몸에 알리는 방송 시스템이라면, 아난다마이드는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는 SNS를 닮았다.

생명이 이와 같은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 이유는 전신을 조율하는 큰 그림과는 별도로 순간순간의 미세 조정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시적 명령과 미시적 속삭임이 함께 있을 때 생명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거꾸로 보내는 신호아난다마이드의 미묘한 조절법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아난다마이드가 역행성(逆行性)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신경 신호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아난다마이드는 신호를 받는 세포가 신호를 보낸 세포에게 "지금 너무 강하다"고 알려주면 또 그에 맞춰 반응한다.

뇌가 스스로 과(過)흥분을 억제하는, 정교한 피드백 시스템의 일환이다. 격렬하게 운동한 뒤 느끼는 상쾌한 기분,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서도 아난다마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ECS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을 때 특정 만성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질병들을 '임상적 엔도칸나비노이드 결핍'(Clinical Endocannabinoid Deficiency)이라 명하였다. 만성 편두통, 섬유근육통, 과민성 장증후군 같은 질환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뚜렷한 구조적 이상이 없는데도 통증과 불편이 지속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ECS의 브레이크 기능이 약해지면 통증과 염증을 억제하지 못해 이런 상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가설이다.

차 한 잔과 몸속 평온의 과학

차(茶)에도 약간의 비슷한 작용이 있다. 차를 마셔도 취한다. 이런 경험 때문에 사람들은 차가 ECS를 활성화하는지 연구하였다. 이미 몇 연구들은 차 성분들이 내인성 칸나비노이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수용체인 CB1과 작용한다는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물론 차가 ECS를 직접 활성화한다는 확실한 임상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의 여러 효능으로 미루어 차가 ECS를 직접 자극하지는 않더라도 ECS가 더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생리적 환경을 만들어 줄 가능성은 충분히 유추된다.

김이 오르는 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향을 들이마시는 순간, 호흡은 깊어지고 어깨의 긴장은 풀린다. 그 시간은 바깥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몸의 상태를 다시 느끼는 시간이다.

이 순간은 아난다마이드가 작용하는 순간과 닮았다. 차도 아난다마이드도 몸 안에서 과열된 신호를 부드럽게 낮추고, 지나친 긴장을 완화하는 조용한 조절자다. 둘 다 인간을 균형으로 이끄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우리가 차를 마시며 느끼는 작은 평온의 순간들 뒤에는, 우리도 모르게 몸속에서 아난다마이드가 조용히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한 잔의 음료, 그리고 내부에서 생성되는 한 방울의 지질 신호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같은 목적지, 즉 균형과 평온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과학은 아직 이 둘의 연결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둘의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그럴듯하고 또한 아름답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디렉터 (yhyoo@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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