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논란 10년…넷플릭스는 어쩌다 영화제 스폰서가 됐나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6. 13. 06:04
2017년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자 영화계에서는 OTT 영화의 영화제 출품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극장 개봉 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작품이 전통 영화산업의 상징인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 것이다. 영화제 측은 이듬해부터 극장 상영 작품만 경쟁부문에 출품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만 하더라도 넷플릭스는 전통 영화산업과 충돌하는 플랫폼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영화제에 초청받는 플랫폼을 넘어 영화제를 후원하고, 창작자를 육성하며, 산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체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열리는 제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올해 영화제의 메인 후원사로 넷플릭스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영화제 측은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계와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며 창작자들의 새로운 재능과 비전이 꽃필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국내 단편영화계에서 상징성이 큰 행사로, 신인 감독과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윤종빈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 역시 단편영화와 영화제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넷플릭스가 이 영화제의 메인 후원사로 나선 것은 단순한 마케팅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플랫폼을 넘어 차세대 창작자 발굴과 육성 단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의 상징적 행사인 부산국제영화제와의 관계 변화도 눈에 띈다. 재작년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OTT 영화인 넷플릭스 '전, 란'이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전통적으로 독립·예술영화 중심의 개막작 선정 기조를 유지해온 영화제가 OTT 플랫폼 영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영화제 기간 동안 넷플릭스의 존재감은 개막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OTT 시리즈를 소개하는 온 스크린 섹션에서도 넷플릭스 작품들이 다수 소개됐고, 영화의전당 일대에서는 자사 콘텐츠를 활용한 대규모 홍보 활동이 펼쳐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영화제의 주인공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지난해 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아시아' 행사를 열고 아시아 지역 창작자와 제작 전문가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와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연상호 감독의 대담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 창작자들이 참여하는 산업 세션도 마련했다. 또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운영 중인 '넷플릭스 프로덕션 아카데미' 연계 프로그램도 선보이며 예비 창작자 교육에 나섰다. 영화제라는 공간을 단순한 작품 홍보 무대가 아닌 창작자 네트워크 구축과 인재 육성의 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투자와 유통 측면에서 논의됐다. 극장을 거치지 않고 전 세계 시청자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새로운 유통 모델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창작 생태계 자체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플랫폼 경쟁이 심화되면서 결국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낼 창작자 확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감독과 작가, 제작자, 투자사, 배급사 등이 한데 모이는 대표적인 창작 생태계의 거점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영화제와의 협력을 강화할 유인이 충분한 셈이다.
영화제 역시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이 필요해졌다. 후원 재원 확보는 물론 국내 창작자들이 해외 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글로벌 유통 역량을 앞세워 국내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때 넷플릭스와 영화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충돌'이었다. '옥자' 논란은 OTT와 전통 영화산업 간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금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넷플릭스는 영화제의 초청 손님을 넘어 후원사이자 파트너, 그리고 창작 생태계의 투자자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OTT와 영화관의 대립 구도가 여전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영화제를 둘러싼 풍경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다. 영화계 안으로 들어온 넷플릭스가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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