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크루즈다!’ 부산·인천, 크루즈 관광의 새로운 관문으로 떠올라

한때 크루즈 여행에서 항구는 잠시 들렀다 떠나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정해진 관광 코스를 둘러본 뒤 다시 배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크루즈 여행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여행객들은 더 이상 항구만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기항지 너머 도시의 문화와 일상, 풍경을 깊이 경험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크루즈 관광의 중심도 ‘잠시 머무는 항구’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는 전 세계 크루즈 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선박을 유치했는지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승객이 하선한 뒤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많은 경험과 소비를 남기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부산항에 입항한 로얄캐리비안의 초대형 크루즈선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 선상에서 개최된 ‘제21회 크루즈관광 활성화를 위한 협의체’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참석 기관들은 방한 크루즈 관광객 유치 확대를 위해 기항지 경쟁력을 높이고, 선사 및 여행업계와의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중심에는 국내 최대 크루즈 기항지인 부산과 수도권 관문인 인천이 있다.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도시, 부산
부산은 크루즈 관광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는 곳이다. 부산의 크루즈 입항 횟수는 2023년 105항차에서 2024년 118항차, 2025년 205항차로 상승세에 있다. 2026년에는 468항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하반기 기준 부산 크루즈 방문객은 37만739명에 달한다.
관광객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관광객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유럽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부산이 단순한 동북아 기항지를 넘어 글로벌 크루즈 네트워크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입항 선박 역시 화려하다. 코스타 세레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MSC 벨리시마,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 등 세계 주요 선사의 대형 크루즈들이 부산항을 찾고 있다.

부산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입항 실적이 아니다. 관광객의 체류 시간과 지역 내 소비 규모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과 교통, 관광지, 쇼핑, 음식, 안내 서비스가 하나의 여행 동선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이 곧바로 지역 관광과 소비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버나잇(Overnight)’ 기항 확대에 공을 들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버나잇은 크루즈가 항구에 하루 이상 정박하는 기항 방식이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은 낮 동안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저녁에는 광안대교 야경을 감상하고 지역 축제를 즐기며 도시의 밤까지 경험할 수 있다. 나아가 부산은 프리·포스트 투어 확대와 셔틀버스 운영, 선사·여행사 공동 모객, 홍보 지원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잠시 들르는 항구’가 아닌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공항과 항만을 모두 가진 도시, 인천
부산의 전략이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인천은 여행 동선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인천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동시에 보유한 국내 유일의 도시다. 해외 관광객은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크루즈 여행을 시작할 수 있고, 반대로 크루즈로 입항한 관광객은 서울과 경기 지역 관광으로 여정을 확장할 수 있다. 관광업계가 주목하는 ‘플라이 앤 크루즈(Fly & Cruise)’ 전략과 일치한다.
이러한 연결성은 실제 성장세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의 크루즈 입항 항차는 2023년 12항차에서 2025년 32항차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플라이 앤 크루즈 모항 유치도 2항차에서 15항차로 확대됐다. 해외 크루즈 관광객의 인천 관광 인원 역시 6526명에서 3만3755명으로 크게 늘었다. 2026년에는 총 127항차의 크루즈 입항과 약 20만 명 규모의 입항객이 예상된다.
인천은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수도권 크루즈 관광의 허브’를 꿈꾸고 있다. 국제 박람회 참가와 정부 합동 크루즈 포트세일즈, 선사·여행사 대상 마케팅을 확대하는 한편 기항 관광상품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관광 수용태세 개선 역시 주요 과제다. 크루즈 관광객은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과 관광을 마쳐야 하는 만큼 교통과 안내, 통역 서비스의 완성도가 만족도를 좌우한다. 이에 따라 인천은 관광지 연계 무료 셔틀버스 확대와 관광 안내데스크 운영, 통역 서비스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만의 관광 콘텐츠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월미도, 송도, 강화도, 섬 관광 등은 짧은 체류 시간 안에도 경험할 수 있는 대표 자원이다. 서울로 향하는 관문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자체를 하나의 여행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인천의 목표다.

방한 크루즈 관광객 200만명 시대
크루즈 산업의 승부가 ‘하선 이후 경험’으로 옮겨가면서 기항지 관광 콘텐츠를 발굴하고 상품화하는 한국관광공사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공사는 지난달 12일 부산항에 입항한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선원을 대상으로 부산항 크루즈터미널과 서면 메디컬스트리트를 연결하는 전용 셔틀버스인 ‘부산항 K-뷰티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헤어와 메이크업 등 K-뷰티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셔틀버스를 운영한 항차의 선원 하선율은 기존 29%에서 49%까지 높아졌다.
여수에서는 한국 문화 체험을 앞세워 만족도를 높였다. 10년 만에 신규 기항지로 선정된 여수에서 참가자들은 화엄사 템플스테이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사찰음식을 만들고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한국 전통문화를 즐겼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이외에도 공사는 해외 크루즈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글로벌 선사와 협업한 홍보 활동과 선사·여행업계 관계자 초청 팸투어를 통해 한국 기항지의 매력을 알리고, 지역 관광자원이 실제 크루즈 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시장 확대의 핵심축은 세계 최대 크루즈 선사인 로얄캐리비안 그룹과 중국 국영 크루즈 기업 아도라 크루즈다. 특히 아도라 크루즈의 한국 기항 횟수는 지난해 101항차에서 올해 212항차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성장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크루즈 관광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연간 방한 크루즈 관광객 200만 명 시대도 가시권에 들어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호철 공사 테마콘텐츠팀장은 “공사는 선사, 지자체, 항만공사, 여행업계와 협력해 부산과 인천을 비롯한 주요 기항지의 관광 콘텐츠를 상품화하고, 셔틀·안내·환대 프로그램 등 현장 수용태세 개선도 함께 지원해 방한 크루즈 관광객 확대와 지역관광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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