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없는 베라루빈..광섬유 확보전쟁 촉발[AI칩 인사이드]

김이슬 기자 2026. 6.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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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마벨은 차세대 1조달러 기업" 칭송
광케이블·유리기판 보유한 코닝에 줄잇는 투자
구리선 한계 넘어설 광학 기술 선점 '쩐의 전쟁'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 GTC 2026에서 차세대 AI 랙인 '베라 루빈' 실물을 공개하며 꺼낸 첫 마디는 "여기에는 케이블, 호스, 팬도 없다"는 말이었다. 겉보기에도 사방이 금속 케이블 선으로 도배됐던 보통의 컴퓨팅 보드와 달리 단면이 깔끔했다. 올들어 엔비디아가 투자한 약 100억달러가 여기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확산으로 구리선이 데이터 처리속도 면에서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자 빛으로 통하는 광학 반도체가 이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10년 AI 혁명을 결정지을 광학 기술 선점 경쟁은 가팔라지고 있다.

"차세대 1조달러 기업을 소개한다"는 황 CEO의 발언으로 최근 재평가 받기 시작한 곳이 있다. 브로드컴과 함께 글로벌 빅테크의 맞춤형 반도체 설계 시장을 양분해 온 '마벨 테크놀로지'다. 마벨은 아마존웹서비스(AWS) AI 핵심 칩의 절반을 만드는 기업으로 데이터 이동 속도를 높이는 밸류체인 전반을 다루고 있다. 특히 초당 1.6테라비트 초고속 시대 막을 열면서 광학기술 수익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다. 엔비디아는 4월 마벨에 20억달러를 투자하면서 차세대 AI 인프라 핵심기술로 각광받는 '실리콘 포토닉스(광반도체)'와 '광학 DSP'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향후 AI 인프라를 확장할 때 병목현상이 '광통신' 길목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장준연 한국과학기술원장은 "AI 확산으로 데이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광케이블 전송의 당위성이 분명해졌다"며 "인터넷이나 해저케이블을 뛰어넘어 앞으로 내부 칩 연결이나 물리적 거리가 있는 데이터센터 간의 통신에서도 광섬유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 실리콘 포토닉스는 광섬유 데이터 전송 통로를 만드는 기술이다. 빛을 이용해 칩 내부와 칩과 칩 간의 데이터를 송수신 하려면 광학부품을 반도체 칩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때 빛을 안내할 가느다란 통로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새기는 작업을 말한다. 광학 DSP는 일종의 디지털 신호 처리기다. 데이터가 빛의 형태로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할 때 생길 수 있는 왜곡 현상을 최종 단계에서 정밀도를 높여 복원하는 일을 맡는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레이저 부품 장비를 보유한 미국 루멘텀과 코히런트에도 각각 20억달러씩을 투자했다. 결국 AI 인프라의 기초가 전기 대신 광학으로 전환하는 흐름에 맞춰 선제적인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광통신 분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은 AI 생태계를 거느리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칩 성능이 아무리 좋다한들 칩 연결에서 과부하가 생기면 전체 AI 데이터센터 퍼포먼스가 낮아지고 발열을 낮추기 위한 냉각 비용도 치솟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베라루빈 냉각 비용은 5만5710달러로 전작 그레이스블랙웰300 대비 17%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리선의 현재 최대 전송 속도는 400Gbps 수준이지만, AI 모델이 필요로 하는 속도는 올들어 1.6Tbps, 초당 1.6테라비트까지 진입했다. 실제 엔비디아 GPU 72개를 하나의 랙 안에 담는 MVL72 서버는 슈퍼컴퓨터급으로 1.6Tbps를 요구한다.

유리기업으로 잘 알려진 '코닝'이 글로벌 빅테크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엔비디아에 이어 메타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코닝의 광섬유 케이블을 공급받기 위해 뭉칫돈을 쏟고 있다. 엔비디아는 코닝에 최대 32억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 내 광섬유 생산을 10배 늘리기 위해 수십억달러 선지급금을 내고 신규 공장 설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엔비디아는 베라루빈에 들어갈 구리선 약 5000개를 코닝 광섬유로 교체하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코닝 광케이블을 공급받기 위해 메타는 지난 1월 60억달러를, 아마존은 이달 수십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코닝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은 '유리기판'이다. 그동안 반도체 칩과 메인기판 연결에는 플라스틱 소재가 쓰였지만 AI 반도체 성능 고도화로 발열과 신호 손실 문제가 커지면서 이를 상쇄할 유리기판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섬유와 유리기판에 대한 성장 기대감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코닝 주가는 올초 90달러에서 이달 고점 기준 200달러까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 덕에 삼성이 보유한 코닝 지분가치도 급상승하고 있다. 삼성전자 2025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한 코닝 주식은 6800만주로 지분율은 7.9%다. 코닝 지분가치는 5조1692억원에서 지난해말 기준 8조5435억원으로 늘었다. 올들어 코닝 주가가 급등해 추가 지분 매각으로 투자 수익도 실현 가능할 전망이다.

이주완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는 "개별 칩 성능이 좋아도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통과해야 하면 병목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광섬유와 유리기판이 해법으로 주목받는 배경이고, 궁극적으로는 전체 칩을 연결하는 패키징, 파운드리 역량에 따라서도 반도체 부문 경쟁력이 판가름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이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