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탓'은 완벽한 거짓말…이적죄 유죄가 뒤집은 계엄 서사[법정B컷]

CBS노컷뉴스 나채영 기자,CBS노컷뉴스 주보배 기자 2026. 6. 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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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반이적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 때문에 계엄을 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줄곧 내놓은 설명입니다. 야당의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 국정 발목잡기로 국가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계엄은 그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계엄을 둘러싼 수많은 재판과 수사 기록을 읽어도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됐습니다. 내란특검 이전에 꾸려졌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공소장에도 등장했고,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담겼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사건 1심 판결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상계엄은 위헌이지만 적어도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만큼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이적 사건 재판부가 설명하는 계엄의 시작점에는 야당이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계엄이 정치적 갈등 속에서 급하게 결정된 조치가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준비된 계획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상황 조성' 목적이었다고 봤습니다.

오늘의 '법정B컷'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일반이적죄가 인정된 윤 전 대통령의 선고 공판 법정으로 가봅니다.

무너진 '야당 탓 계엄론'

일반이적 법정 분위기는 선고 시작 전부터 무거웠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굳은 자세로 정면만 응시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역시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가끔 변호인과 귓속말을 나눴고,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은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재판부가 일반이적죄 성립 근거를 하나씩 설명하는 동안 피고인석에서는 거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징역 30년형 주문 낭독이 끝난 뒤 윤 전 대통령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이어 변호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법정을 빠져나갔습니다. 선고 직후 기자들 앞에 선 윤석열 측 변호인단 중 한 명인 김계리 변호사는 울먹이며 "단 한 번도 유죄가 선고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단은 "너무 참담하고 비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국민이 각성해야 한다. 무도한 사법부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의 충격은 단순히 일반이적죄 유죄 인정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가 이날 내놓은 사실관계는 지금까지 알려진 계엄의 배경과는 결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계엄이 왜 선포됐는지, 그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3월 안가 회동에서 이미 '비상대권'을 언급했고, 같은 해 11월까지 김 전 국방부 장관·여 전 방첩사령관 등과의 모임에서 비상조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거론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가 아니라 취임 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비상계엄을 논의하고 준비했다고 인정했습니다.
 
▶ 윤석열 일반이적 혐의 1심 선고 中
피고인 윤석열은 2023년 3월 29일 안가에서 김용현, 여인형, 신원식과 식사하는 과정에서 비상대권을 언급했고, 2023년 11월 9일까지 김용현, 여인형 등과의 모임에서도 비상대권과 비상조치를 발언했다. 김용현은 2024년 9월부터 12월 3일까지 장관 공관에서 수차례 노상원을 만나 비상계엄을 논의했고, 2024년 9월부터는 노상원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보사의 임무를 계획하는 등 비상계엄 선포 상황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 김용현은 장관 취임 이후에도 오물풍선 피해 정도나 군의 대응 기조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합참의 신중 대응 의견을 무시하고 작전을 강행했다. 김용현은 작전 과정에서 북한 노출 위험 등을 명확히 인지한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작전을 지시했다. (…) 김용현은 작전 내용을 안보실에 알리지 않도록 했고, 이승오에게도 안보실에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본인 역시 안보실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히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에 주목했습니다. 북한이 오물풍선을 거의 보내지 않던 시기에도 작전은 계속됐고, 합참의 반대에도 강행됐으며, 안보실 보고까지 차단됐다고 봤습니다. 이를 근거로 해당 작전이 북한의 대응을 유도해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한 '상황 조성 작전'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 전 방첩사령관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재판부는 여 전 사령관이 작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비밀리에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봤습니다. 여 전 사령관 메모에 적힌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등의 표현 역시 비상계엄 상황 조성 의도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언급됐습니다.

▶윤석열 일반이적 혐의 1심 선고 中
여인형 메모에 적힌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체면 손상 타깃팅" 등의 내용을 참작하면, 여인형은 오물풍선 대응 상황과 관련해 이 사건 작전 및 비상계엄 선포 시기 등을 김용현과 논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오물풍선이 부양되지 않는 시기에도 비상대기를 지시한 것은 북한이 도발할 경우 비상계엄 상황 조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여인형은 비상계엄 상황 조성을 위한 이 사건 작전의 목적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기능적 행위지배도 인정된다.
 

내란우두머리 항소심이 마주할 질문은?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판단이 지금까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제시됐던 설명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일반이적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 전에 출범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내란 우두머리 사건 공소장에서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의 탄핵 추진과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적었습니다.
▶ 검찰 특수본 내란 우두머리 공소장 中
바. 피고인 등의 국헌문란 목적
피고인과 나○○은 야당이 쟁점법안들에 대한 단독 처리를 강행하고, 형법상 간첩죄 개정에 반대하며, 정권 퇴진‧탄핵 집회를 지속하고, 국무위원 등 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을 탄핵하며, C당 대표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사에 대한 탄핵까지도 검토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과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 등으로국정운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들은 헌법상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인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병력으로써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계엄법상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인'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우'에도 해당 되지 않는다
 
내란우두머리 1심 재판부와 헌법재판소 역시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저해되고 있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검찰과 헌재 모두 계엄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엄을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야당과의 충돌을 전제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인용 선언 종결 부분 中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들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 내란 우두머리 1심 판결문 中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은, 야당이 쟁점법안들에 대한 단독 처리를 강행하고, 간첩법 개정에 반대하며, 정권 퇴진‧탄핵 집회를 지속하고, 국무위원 등 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을 탄핵하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사에 대한 탄핵까지도 검토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며, 이에 더해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과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 등으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나, 위와 같은 사정들은 헌법과 계엄법에서 정하고 있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일반이적 사건 재판부는 계엄의 원인을 정치적 갈등 자체보다 계엄 준비와 상황 조성 과정에서 찾았습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계엄은 야당의 탄핵 추진이나 예산 삭감 때문에 급박하게 결정된 조치가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준비된 계획의 결과에 가까웠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그동안 계엄 사전 모의의 핵심 증거로 거론됐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재판부가 계엄 준비 과정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대권 발언,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의 접촉, 합참의 반대 정황, 안보실 보고 차단, 여 전 사령관의 역할 등을 종합해 계엄 준비 과정을 재구성했습니다.

더 나아가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윤 전 대통령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해 사용돼야 할 계엄선포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윤 전 대통령의 승인 없이는 김 전 장관이 해당 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계엄의 최종 책임이 윤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적시한 대목입니다.

▶ 윤석열 일반이적 혐의 1심 선고 中
계엄선포권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 사건 작전을 실행했다. 윤석열의 승인 없이는 김용현이 이 사건 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내란 우두머리 사건 항소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이적죄를 유죄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계엄 준비 시기와 목적, 실행 구조를 폭넓게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향후 항소심에서 새로운 판단 자료로 제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상계엄을 왜 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내란 우두머리 사건 항소심 법정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이후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해온 '야당 탓 계엄론'이 그곳에서도 같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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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나채영 기자 nan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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