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의장국일 때 만든 ‘9·19 체제’ 21년 만에 종언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6. 6. 1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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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핵 용인으로 돌아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9일 평양 국제비행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부터 이틀간 7년 만에 북한을 방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귀국했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도 2019년 시 주석 방북 때와는 달리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로써 2005년 중국이 북핵 6자회담 의장국으로 주도했던 9·19 공동성명 체제는 사실상 종언(終焉)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본지에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 비핵화 공동성명을 이끌었던 나라”라며 “시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면서 비핵화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에 사실상 눈을 감고 있는 행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분명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미북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 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섰다. 중국은 2003년부터 시작된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을 맡아 협상을 주도했고, 2005년 9월 19일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도출됐다. 당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 6개국 대표들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의 평화적인 달성”을 공동 목표로 확인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체제에 조속히 복귀하기로 약속했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과 관련한 규정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은 영토 내 핵무기를 배치하거나 반입하지 않겠다는 1992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의사를 재확인했다. 미국도 한반도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후 국제사회는 9·19 공동성명을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왔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에 나선 것도 결국 이 공동성명과 비핵화 원칙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9·19 공동성명의 틀을 유지해 왔지만, 북한은 핵 무기는 물론 이를 쏘아 올릴 ICBM 체제도 갖췄다. 북한은 헌법에 핵 보유국 지위를 명시했고, 사실상 핵 무력을 체제 유지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며 비핵화 합의를 전면 무시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시 주석 집권 초기만 해도 중국의 태도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는 사실이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실시된 북한의 3·4·5·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 활동하면서 만들어 낸 9·19 공동성명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 결과 김정은은 2011년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좌에 오른 후 7년 동안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을 만나지 못했다. 김정은이 시 주석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한 것은 2018년 3월 베이징 방문 때였다.

시진핑은 국가 주석 취임 후 2019년 6월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한반도 문제(비핵화)의 정치적 해결과 한반도 정세 완화를 지지한다”며 비핵화 협상 기조를 유지했다. 당시 여러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방북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노동신문 기고문과 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북 우호와 전략적 협력만 강조됐다. 6자 회담 의장국이었던 중국의 모습은 완전히 실종됐다. 이에 대해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 비확산 체제의 책임 국가인 중국이 공개적으로 북한 핵을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거나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 노선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전제 하에 대중·대북 정책을 추진해 왔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거나 중재자로 나설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 주석 방북은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 의장국이었던 중국이 더 이상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 북한 비핵화를 중재했던 중국이 이제는 비핵화를 외면한 채 북한을 ‘전략적 파트너’로 옹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현실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올해 1월 “1단계로 핵 활동 중단 협상을 추진하고 이후 핵 군축 협상으로 가야 한다”고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핵심적인 활동을 했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큰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7년 만에 방북해 비핵화 관련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위험한 신호”라면서 “미중 양국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눈감아줄 때 우리 정부도 이에 동조하고 나설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했다.

☞9·19 공동성명

중국이 의장국을 맡은 북핵 6자회담에서 2005년 9월 19일 채택된 공동성명으로 2007년 2·13 합의와 함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를 약속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체제 복귀를 약속했다. 한국과 미국도 각각 비핵화 관련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도 갖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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