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홍명보의 7번째 월드컵
싸늘한 팬심 속 12년 만의 복귀
짜임새 있는 전술로 체코전 승리
축구 팬들의 심장도 다시 뜨겁게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는 누구일까. 팬들의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로 좁혀졌다고 본다. 두 선수가 세운 갖가지 기록을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메시와 호날두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6회 연속 그라운드를 밟는다. 축구 역사에서 단둘뿐이고, 이걸로 모든 경쟁자를 제쳤다. 메시는 19세, 호날두는 21세였던 2006년부터 20년 동안 월드컵에 나갈 실력과 몸 상태를 유지한 것이 두 선수의 위대함이다. 마흔 줄에 출전하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메시와 호날두는 팀의 핵심 전력이자 정신적 지주다.
지도자 경력까지 통틀어 메시나 호날두보다 월드컵 경험이 많은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중 한 명이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이번 북중미 대회가 그의 일곱 번째 월드컵 무대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선수로 4회 연속 출전했고, 감독과 코치 자격으로 세 차례 나왔다.

선수 시절 홍 감독에게 월드컵은 그야말로 ‘영광의 훈장’이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생이던 1990년 대표팀 막내로 전 경기를 출전했고, 1994년 미국 대회에선 수비수임에도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두 골을 넣었다. 한국 선수 최초의 단일 월드컵 멀티 골 기록이다. 히딩크호의 주장이었던 2002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한 뒤 두 팔을 뻗으며 환하게 웃는 홍명보는 ‘월드컵 기적’의 상징 같은 장면이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개인상인 ‘브론즈볼’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은퇴 후 지도자로 마주한 월드컵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지만, 자격증 미비 논란에 휘말렸다. 8년 뒤 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오점(汚點)이 됐다. 선수 선발과 기용은 ‘의리 축구’라는 비난을 불렀고, 본선에서 처참한 경기력으로 국민적 공분의 표적이 됐다. 1무 2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뒤 2주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러 홍 감독이 다시 월드컵 무대로 돌아왔다. 복귀 여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2년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논란 때문에 팬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작년 10월 브라질에 0대5로 참패하자 서울 상암벌이 야유로 뒤덮였다. 올해 3월 유럽 평가전에서 한 골도 못 넣고 2연패하자 ‘스리백 전술’을 고집하는 홍 감독에 대한 비난은 더욱 커졌다.
많은 우려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에 나선 축구 대표팀이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선수들의 공이 우선이지만, 감독의 전술도 칭찬받을 만했다. 1-1로 맞선 후반 24분 주장 손흥민을 빼고 오현규를 투입한 ‘결단’이 하이라이트였다.

경기가 끝나고 홍 감독은 “선수 때도 월드컵 첫 승까지 12년이 걸렸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1990년부터 월드컵에 출전해 2002년에야 승리의 감격을 맛봤는데, 감독으로도 같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였다. “2014년엔 실패했지만 이번엔 잘 준비했다”는 그의 말처럼 대표팀은 짜임새 있는 경기력으로 승리를 따냈다.
첫 단추는 잘 뀄다. 대표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의 더 높은 곳을 향할수록 홍 감독을 겨냥했던 차가운 시선이 따뜻한 격려로 바뀔 것이다. 원정 월드컵 첫 8강 진출 목표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식은 줄 알았던 축구 팬들의 심장도 다시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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