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첨벙’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 별세…향년 88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11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
호크니의 홍보 담당자는 12일 “20세기와 21세기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 한명인 호크니가 89세 생일을 약 한 달 남기고 런던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호크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존 미술가였다.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돼 당시 생존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가 평단과 시장에서 두루 높이 평가받는 건 고전과 혁신의 미덕을 두루 겸비한 데서 비롯된다. 1937년 영국 요크셔 지역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팝아트 화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이래 미국과 영국을 왕래하면서 자신만의 회화 지형을 만들어냈다. 인간적 내음이 물씬한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특정한 유형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동원해 회화를 새롭게 변모시켜왔다.

대표작으로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지내면서 탄생한 ‘더 큰 첨벙’(1967)을 비롯한 수영장 연작, 유명 패션디자이너 부부를 그린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1), ‘예술가의 초상’(1972) 등이 있다. 물과 유리창에서 튕기는 빛의 패턴으로 꿈결 같은 분위기를 그려내고 무광 아크릴로 인간을 단순화한 형태로 표현하는 등 대담한 구도와 색으로 풍경과 인물을 묘사한 작품들이다. 노년에는 유럽으로 돌아와 고향인 영국 요크셔의 숲이나 프랑스 노르망디의 들판과 나무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리는 것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라. 보고 그리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1950년대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에 ‘그리고 있는 바로 지금 현재’를 자각하려는 관념을 일관되게 담았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부터 커밍아웃했으며, 남성의 몸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호크니는 회화뿐 아니라 1987년 엘에이 오페라에서 초연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의 의상과 무대 디자인도 했으며 판화와 사진 콜라주, 비디오 아트로도 작품 활동을 확장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도 그림을 그리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노르망디로 이주해 살던 2020년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친구들에게 봄을 그린 아이패드 드로잉을 보내기도 했다.
2019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이 열려 한국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133점으로 구성된이 전시에는 30만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호크니와의 대담집을 내기도 했던 영국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당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호크니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이젠 더이상 새롭지 않을 것 같은 장르인 회화로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꼽았다. “호크니는 미술판의 유행을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동시대에 조응하는 예술을 추구해왔다. 진지하고 영민하면서도 때로 위트와 유머가 번뜩인다. 그의 그림은 고흐·렘브란트·피카소 같은 위대한 거장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지만 완전히 새로움을 준다.” 2023년에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비거 앤 클로저’가 열렸다.
호크니는 2012년 경미한 뇌졸중을 겪었고 후년에는 청력을 거의 잃었지만, 오히려 “한 감각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해 공간을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나이 들고 쇠약해진 다음에도 “일이 나를 젊게 만든다”고 말하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은형 선임기자, 노형석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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