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메운 “부정선거 재선거”…성조기 흔들며 ‘윤어게인’ 구호도

고경태 기자 2026. 6. 1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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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2일 밤 잠실 개표소 시위
주말 앞두고 시위대에 젊은 층 유입 늘어
“윤석열이 대통령 해야” “사전투표 폐지”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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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같은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부정선거’로 시작해 ‘수개표’로 끝나는 하나의 구호가 완료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7초 안팎. 1분에 8번, 1시간이면 500번 가깝게 구호를 반복하는 셈이었다. 30분이나 1시간에 한 번씩 제창하는 애국가가 그나마 분위기를 전환해 줄 뿐, 어떠한 공연도, 연설도, 시위 안내도 없었다. 지겨워할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에게선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는 지난 5일부터 개표가 마무리된 6·3 지방선거 투표함의 반출을 막기 위해 경기장을 봉쇄하는 시위가 8일째 이어지고 있다.

초반 양상은 지금과 달랐다. 지난 주말(6∼7일)에는 잠실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참정권 침해’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청년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개입을 거부하며 오직 ‘재선거’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8일을 기점으로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구호 맨 앞에 등장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여야 합의에 따라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부터 전면 시행된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당일투표’만 진행하자는 주장도 이때부터 구호에 스며들었다.

이와 함께 성조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2일 현장에서는 대형 성조기 여러 개가 시위 대열 앞뒤에서 휘날렸고, 한 손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든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왜 들었을까. 빨간 ‘마가(MAGA,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모자를 쓴 40대 여성은 한글과 영어로 된 ‘한미연합 수사 요청’ 손팻말을 들고 시위 대열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백날 부정선거만 외치면 뭐해? 이제 이걸 넘어서야 해요. 이재명 부정선거에 대해 한미공조 수사 요구로 가야 해요. 트럼프의 입에서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성조기 들고 트럼프를 움직여야 한단 말이야.”

시위 대열 끝에서는 선글라스를 쓴 70대 남성이 주변 사람들을 불러모아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난하고 있었다. “조희대가 탄핵당할까 봐 이재명한테 설설 기고 있잖아. 빨리 이재명 끌어내고 박근혜 대통령부터 잔여임기 채운 뒤, 그다음엔 윤석열 대통령이 하게 해야 해. 청년들 저거 평화시위 갖고 안돼. 혁명으로 가야지.” 그는 허리춤에 찬 작은 가방에서 장난감 권총을 꺼내더니, 총구에 태극기를 꽂고 사격 시늉을 했다. 그의 말을 듣던 주변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시위 본 대열에선 구호만 외쳤지만, 대열 구석구석에서는 이처럼 열변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었다. 핸드볼경기장 진입로에 붙은 수백장의 대자보와 스티커에는 “이재명 퇴진”, “윤석열이 옳았다” 등 정치적 구호가 주를 이뤘다.

날이 저물면서 시위대 규모는 더욱 불어났다.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면서 광장이 빽빽해졌다. 한 70대 노인은 “낮엔 어르신이 밤엔 젊은이가 지킨다. 재선거 불사하라”고 적은 도화지를 들고 있었는데, 실제로 밤이 되자 젊은 층의 유입이 두드러졌다. 가족 단위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이들부터 연인, 부부, 친구끼리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다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반면 맨 뒤에서 혼자 조용히 태극기만 흔드는 이도 있었다. 한 20대 남성은 “오늘 처음 왔는데 분위기가 어색하다”며 “현장이 궁금해서 나와봤는데, 주말에 또 올지는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들의 ‘부정선거 재선거’ 주장이 대중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와 별개로 ‘부정선거’ 주장에 거리를 두는 이들은 시위대 내부에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다만,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따끔한 비판도 있었다. 이날 저녁, 한 20대 여성은 이런 글을 도화지에 적어 흔들고 있었다. “북한보다 한심하다. 대한민국 선관위야. 한 탈북자 왈.”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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