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비싼 작가' 호크니 별세…테이트·더멧·퐁피두가 '팔순' 열어준 거장

이훈성 2026. 6. 12. 22: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일 별세 데이비드 호크니 생애와 작품]
피카소의 표현력·미국의 자유분방함에 영감
수영장·초상화 연작으로 일찌감치 대가 반열
사진·무대미술·디지털아트 등 부단한 갱신
11일 타계한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2017년 9월 26일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기증한 자신의 대형 그림 '이스트 요크셔의 볼드게이트에 봄이 온다'의 공개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자택에서 별세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손꼽힌다. 회화, 판화, 사진, 무대미술 등 영역을 가리지 않았고, 건강이 악화하는 와중에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출생해 브래드퍼드 예술학교(1953~58)와 런던 왕립예술대학(1959~62)에서 수학한 호크니는 왕립예술대학 졸업과 함께 런던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을 만큼 일찍부터 두각을 보였다.

회화 분야에서 호크니는 추상표현주의가 지배적이던 미술계의 흐름을 구상미술로 돌려놓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국 팝아트 계열 작품으로 출발했던 호크니에게 예술적 전환의 계기가 된 건 1960년 런던 테이트미술관에서 열린 파블로 피카소 전시 관람이었다. 호크니는 피카소로부터 개방적 사고와 표현 기법의 다양성을 체득했다.

이듬해 처음 방문한 미국은 그에게 또 다른 도약을 선사했다. 동성애자였던 호크니는 첫 방문지 뉴욕에서 느낀 성적 자유로움을 자양분 삼아 판화 '난봉꾼의 행각'(1961~63) 연작으로 주목받는다. 1963년 '태양의 땅' 캘리포니아를 찾아 도시 분위기와 신흥 부유층의 여유와 쾌락에서 받은 인상은, 호크니가 수영장 그림 연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71)로 대표되는 2인 초상화 연작 등 대표작을 쏟아낼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 됐다. 관능적 분위기, 초연한 시선, 강렬하고도 세련된 색채의 그림들로 호크니는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 cm, 1970∼1971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크니는 사진작가로도 빼어난 성과를 냈다. 처음엔 회화 작업에 참고하려고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에게 사진은 새로운 표현의 재료가 됐다. 1976년 뉴욕 소나벤드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연 뒤엔 포토콜라주 작업으로 전환했다. 대상이나 풍경을 여러 시점에서 수십, 수백 차례 촬영한 뒤 이들 사진을 입체파 스타일로 이어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작업이었다. 이 시기 호크니는 무대 미술에도 손을 뻗었다. 198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옴니버스 공연 '퍼레이드'에서는 거대한 회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색채의 무대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한동안 비회화 작업에 몰두했던 호크니는 1980년대 말 회화로 복귀했다. 1985년부터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할 만큼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1986년부터 한동안 복사기로 그림을 제작했다. 종이를 여러 차례 복사기에 통과시키며 색을 쌓아올리는 방식이었다.

데뷔한 지 10년 남짓했던 1970년 처음 회고전이 열릴 만큼 호크니는 활동 기간 내내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조명을 받았다. 80세가 됐던 2017년에는 런던 테이트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가 공동으로 기념 회고전을 조직했을 정도다.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 달러에 팔려, 이듬해 제프 쿤스의 '토끼'(9,107만5,000달러)가 경매에 나올 때까지 최고가 생존예술가 작품으로 기록됐다. 한국에서도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2023년 서울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서 호크니 작품이 전시된 바 있다.

2012년 가벼운 뇌졸중을 겪고 말년엔 가족력인 청력 약화를 겪으면서도, 타계하기 9개월 전인 지난해 4월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 재단에서 다섯 번째이자 사상 최대 규모 회고전을 열 만큼 호크니는 정력적인 작가였다. 전시가 끝나고 호크니는 언론에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성적 정체성에 당당했고 도전을 즐기는 혁신적 작가였지만, 미술에 있어 인간 형상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추상미술을 맹렬히 거부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부고기사에서 "정치적 긴장감이 높았던 1990년대 미술계 분위기에선 전위예술을 경멸했던 호크니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21세기 들어 회화와 구상 미술이 다시 각광받으면서 그의 입지는 회복됐다"고 논평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