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토익 안 봐요"…AI가 채용 판도 바꿨다
'어학점수 필수' 대기업 8곳 중
지필 토익 인정한 곳은 2곳뿐
AI 대체 안되는 회화 능력 강조
'자소서 없는 채용' 등장하기도

취업준비생 하영우 씨(26)는 최근 성적표 유효기간이 만료된 토익 시험에 다시 응시하지 않기로 했다. 토익 성적을 필수로 요구하는 기업이 예전만큼 많지 않은 데다 토익스피킹이나 오픽 등 말하기 시험 성적으로도 충분히 어학 실력을 입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씨는 “지금은 토익 고득점이 취업 필수 스펙으로 통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며 “같은 시간과 비용을 쓴다면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발달로 채용 현장의 평가 방식이 바뀌고 있다. 토익 지필고사처럼 정답을 고르는 시험의 영향력은 약해지는 데 비해 말하기 시험과 면접처럼 지원자의 현장 대응력과 사고력을 확인하는 평가는 늘고 있다. 12일 한국경제신문이 구직 플랫폼 캐치에 의뢰해 올해 1~5월 이력서 9791건의 어학 자격 등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영어 말하기 시험 점수 등록 비율이 52.1%를 기록하며 지필 토익(47.9%)을 처음으로 제쳤다. 말하기 시험 성적 등록 비율은 2022년 30%에서 2023년 31.7%, 2024년 39.1%, 2025년 46.6%로 매년 높아졌다.
토익의 영향력이 줄어든 데는 기업의 채용 기준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영어 성적을 필수 지원 조건에서 빼거나 어학 성적을 요구하더라도 지필 토익 대신 오픽, 토익스피킹 등 회화 성적만 인정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올해 10대 그룹의 상반기 채용에서 어학 점수를 필수 자격으로 요구한 곳은 삼성, 현대자동차, LG, 한화, 롯데, 포스코, HD현대, GS 등 여덟 곳이었다. 이 가운데 지필 토익 점수를 인정한 곳은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 일부 계열사뿐이었다.
기업 인사 담당자 사이에서는 AI 확산으로 토익이 평가하는 문법·독해 능력보다 회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영어 이메일이나 서류 작성 업무는 AI로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며 “말하기는 상대방의 반응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만큼 지원자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자기소개서의 변별력이 낮아지면서 이를 채용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기업도 등장했다. 일본 정보기술(IT) 대기업 소프트뱅크는 지난 1월부터 신입 채용 과정에서 자기소개서 제출을 폐지했다. 대신 지원자가 제출한 1분짜리 영상을 AI를 활용해 검토한다. 국내에서는 에어로케이항공이 올해 항공업계 최초로 ‘자기소개서 없는 채용’을 도입했다. 지원자의 경험과 활동 이력을 담은 ‘경험 포트폴리오’를 제출받아 면접 과정에서 진위와 직무 연관성을 심층 검증하기로 했다.
박지성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인사담당자는 AI가 흉내 내지 못하는 지원자의 프로젝트 해결 능력과 조직 적응력을 보고 싶어 한다”며 “정형화된 스펙보다는 협업 능력 등을 검증하는 과정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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