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경매시장에 부는 ‘단일 컬렉터’ 바람
김용원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재계 소장품 120여점 선보여
천경자 채색화 ‘시장’ 첫 출품

지난해 11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2억364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460억 원)에 낙찰돼 역대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거래가를 기록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이 작품의 직전 소장자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상속자였던 레너드 로더였다. 뉴욕 미술계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그가 타계하자 컬렉션 중 대표작 24점이 경매에 올라 거래 총액 5억2750만 달러(8022억 원)를 달성했다. 이 같은 경매를 ‘단일 컬렉터 경매(single owner sale)’라 부르는데, 2022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16억2224만 달러 규모의 작품이 거래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 경매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소장가의 이름을 보증수표 처럼 앞세운 단일 컬렉터 경매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서울옥션(063170)은 오는 23일 개최하는 ‘제193회 미술품 경매’ 내 특별 기획경매로 전(前) 대우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 컬렉터인 김용원 회장, 극동그룹의 창업가이자 소전재단을 설립한 고(故) 김용산 회장의 소장품을 선보인다. 우리나라는 서양에 비해 컬렉션 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최근 몇 년 사이 미술품 수집 인구가 증가 추세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서 그들의 컬렉션이 이 같은 단일 컬렉터 경매 형태로 선보일 기회가 늘고 있다. 이는 동시에 그들의 자녀 세대이며 문화애호의 주도층으로 부상한 MZ세대로의 문화유산의 손바뀜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용원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2021년에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갤러리하우스 ‘운심석면’으로 조성하고 소장품을 일반에 공개했다. 그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인 변시지 화백의 대작 ‘고한’(내정가 3억 5000만원)과 ‘자유·평화·애’(이하 추정가 1500만~3000만 원)를 비롯해 이우환의 ‘무제’(3억~4억원), 황염수의 ‘산’(4000만~6000만 원) 등 4점이 새 주인을 찾는다. 김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 철학을 담은 저서 ‘운심석면’에 특히 변시지 화백과의 인연과 작품 수집과정을 기록하기도 했다.

극동그룹을 창업한 김용산 회장은 고미술 컬렉터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평생 모은 도자기와 고미술품을 기반으로 1996년 경기도 시흥시에 소전미술관을 열었다. 목이 긴 백자 병에 양각으로 십장생을 새긴 조선시대 ‘백자양각십장생문병’(6000만~1억2000만 원), 커다란 백자에 푸른 안료로 봉황 두 마리를 그려 넣은 ‘백자청화운봉문호’(4500만~9000만 원) 등 도자기 7점이 특별경매에 오른다.
서울옥션은 이번 경매에 근현대 미술과 고미술을 아우르며 총 127점, 약 110억 원 규모를 선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처음 경매에 나오는 천경자의 1964년작 ‘시장’(8억~15억 원)이다. 거래와 교류가 오가는 시장의 현실적 풍광을 청색조의 몽환적 공간으로 풀어낸 대형 채색화다. 천경자 화백의 1964년 옥인동 시절 기록사진에 이 작품이 배경으로 등장해 연구자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사료적 가치도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천경자는 1969년 세계일주 해외여행 이후 급격한 화풍 변화를 보이는데, 이 작품은 직전 1960년대 전반의 독창적인 조형 실험을 보여주는 전환기적 대표작으로 꼽힌다. 천경자의 1978년작 ‘초원’이 2018년 경매에서 20억 원에 팔려 작가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 작품으로 앤디 워홀의 1970년작 ‘플라워’가 10점 완전한 세트로 추정가 19억~25억원에 출품됐다. 잡지에 실린 꽃 사진을 다양한 색으로 반복해 제작한 실크스크린 연작인데, 10점 세트의 완전한 구성으로 나온 사례는 국내 최초이며, 해외 경매에서도 극히 드물다. 꽃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화려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인 꽃이 소비문화의 일부로서 공허한 상징이 되었기에 워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경매 출품작들은 서울옥션 강남센터의 프리뷰를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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