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잔고보다 중요한 건 ‘돈을 버는 힘’ [북스&]

“SK하이닉스로 연봉만큼 벌었다” “삼성전자로 1년에 5배 먹었다.”
증시가 급등하면서 인터넷에는 수익 인증글이 넘쳐난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다들 투자로 돈을 벌고 있다. 나만 빼고”라는 생각에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들은 앞서가는 것 같은데 자신만 뒤처진 듯한 심리,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가 끊임없이 초조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시대의 불안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이다. 저자는 도쿄대 공학부와 대학원 정보공학과를 졸업한 뒤 2003년 골드만삭스 증권에 입사해 16년 동안 일본 국채와 엔화 금리 파생상품, 장기 외환 거래 등의 트레이딩 업무를 담당했다. 금융시장의 한복판에서 일했지만 오히려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에 관심을 갖게 됐고, 퇴직 후에는 학생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금융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일본에서는 밸류업 정책 등을 통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증시 부양에 나서며 투자 열풍이 우리보다 먼저 불었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침체된 경제 끝에 증시가 급등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가난해졌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쉽고 친절한 언어로 설명한다.
저자는 우선 투자 열풍이 만들어낸 집단적 착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는 노동보다 유리하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주장을 가장 먼저 펼쳤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산 보유자가 유리한 사회 구조를 지적하려는 의도였다. 모두가 투자에 뛰어들라는 투자 권유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불안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치’와 ‘가격’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지표이고, 가치는 내적인 만족감 등에 의해 평가된다. 예컨대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편지는 가격을 매길 수 없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격이 높은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저자는 타인의 평가인 가격보다 스스로 인정하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가치는 타인의 가격표로 측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물건이라면 살 것인가”라고 반문해보라고 권한다.
돈이 많아질수록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 역시 착각에 가깝다. 금융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돈에 대한 불안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감정이라고 진단한다. 돈이 사회를 떠받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돈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자산일까. 저자는 계좌 잔고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힘’이라고 답한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보다 앞으로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훨씬 중요한 자산이라는 의미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AI가 뛰어나지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책은 돈을 둘러싼 우리의 생각과 착각을 들여다보고 인생에서 ‘뭣이 중헌지’를 묻는다. 투자 기술이나 재테크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돈에 대한 불안의 근원을 분석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찾도록 돕는 인문 교양서에 가깝다. 2만원.
이혜진 선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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