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가 될 자격있는 사람일까 … 사랑의 시험대에 선 두 연인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6. 12. 17: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렁스' 충무아트센터 8월 2일까지
두 남녀의 인생 굴곡 따라
사회·인류 향한 자성까지
95분 인터미션·퇴장 없이
두 배우 대화로 무대 채워
연극 '렁스'에서 두 인물이 서로를 안아주려 하고 있다. 연극열전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 정말 그럴까."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동네 가게를 찾고,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며 걸어 다니고, 장바구니를 챙기고 재활용도 거르지 않는다. 선거 때면 빠짐없이 투표하는 성실한 시민이기도 하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자부하던 연인은 그러나 아이를 낳을지 말지라는 일생일대의 고민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과연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연극 '렁스'는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지난달 23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렁스'는 영국 작가 덩컨 맥밀런이 2011년 발표한 2인극이다. 2020년 국내 초연 당시 전석 매진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고, 제작사 연극열전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관객 투표를 통해 6년 만에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연출은 초연에 이어 박소영이 맡았다.

등장인물은 이름조차 없이 '남자'와 '여자'뿐이다. 지구 환경 분야 박사과정을 밟는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는 치열한 대화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지만, 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산의 아픔과 이별, 재회로 이어지는 인생의 굴곡을 따라간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새 연인 관계를 넘어 가족과 사회, 인류 전체를 향한 자성으로 번져 나간다.

제목 '렁스(Lungs)'는 단순히 신체 기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앞으로 수십 년간 숨 쉬며 살아갈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일의 무게를 되짚는 한편, 아이가 평생 배출할 탄소의 양을 따져보며 새 생명을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하나의 '폐'로 치환해 보기도 한다. 제목의 폐는 결국 숨 쉬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가리키는 셈이다.

무대에는 오직 두 배우만이 올라 퇴장 한 번, 인터미션 한 번 없이 95분을 오롯이 채운다. 세트 없는 미니멀한 무대에서도 재치 있는 연출이 빛난다. 취업과 임신 등 인생의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들은 신발을 바꿔 신는 행위로 간명하게 비유되고, 시계처럼 회전하는 원형 무대는 두 사람의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극은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유산 후 우울에 빠진 연인 곁에서 외로움을 느낀 남자는 직장 동료와 입을 맞추고, 이를 알게 된 둘은 이별에 이른다. 남자가 다른 사람과 약혼한 뒤에도 미련 속에 재회하던 이들은 예기치 않은 임신을 계기로 결혼에 이른다.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연인으로서는 책임감이 부족한 이 결점들이야말로 관객이 자신을 비춰보며 공감할 여백인지도 모른다. 연애의 구체적 양상은 한국과 다르지만, 콕 집어 말해주길 바라는 남자와 말하기 전에 알아서 도와주길 바라는 여자가 부딪히는 대화의 결에는 평범한 연인들의 자화상이 겹친다.

이번 시즌에는 임주환·박성훈·김경남이 '남자' 역을, 정운선·전소민·신윤지가 '여자' 역을 맡았다. 지난 10일 공연에서 신윤지는 임신 소식에 한없이 들떠 환한 표정을 짓다가도 유산 후 상실의 우울에 잠기는 폭넓은 감정선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대사량이 적은 임주환은 의문스러운 선택을 거듭하면서도 좋은 사람으로 살고자 애쓰는 양가적 인물을 연기했다. 그는 독백 중심의 연기로,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 가능한 사람으로 설득해냈다. 외국의 이야기임에도 객석의 중년 부부가 유산으로 가슴 아파하는 두 연인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다만 일생을 95분에 압축하는 형식의 대가일까. 끝내 서로를 택한 두 사람의 결혼 이후 여생은 다소 황급히 지나가, 감정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막이 닫히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흔들리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좋은 사람이 돼 가는 두 남녀의 여정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 저마다에게 같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 공연은 8월 2일까지.

[구정근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