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괴롭힘’ 막으려다 ‘괴롭힘’에 쓰러졌다…사지 내몰린 근로감독관들

조문희·송응철기자 2026. 6. 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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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지청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감독관, 악성 민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
조사 권한은 없고 책임만 떠안은 현장…전담부서는 ‘기피 1순위’로 전략

(시사저널=조문희·송응철기자)

5월27일 고용노동부 원주지청 소속 근로감독관 A씨(여·46)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전담하는 팀장이던 그는 한 민원인의 반복된 항의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초등학생 자녀를 남겨둔 채였다.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 감독관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동료 감독관은 "이번 사건 한 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며 "쌓이고 쌓여온 업무 부담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이번 일이 방아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합리한 법적 구조와 인력 갈아넣기식 행정이 만들어낸 예견된 참사라는 취지다. 일선 감독관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제2, 제3의 A씨'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네이버지도·ChatGpt 생성이미지

권한은 없고 책임만…'반쪽짜리' 법률

억울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정작 그 법을 집행하는 최일선 공무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 기저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가진 구조적 모순이 있다.

현행법상 노동부는 '사용자(사업주)'를 제재할 권한만 가질 뿐, 일반 근로자를 직접 조사하거나 징계할 법적 권한이 없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대다수가 근로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하지만, 신고가 접수되면 노동부는 일차적으로 사 측에 자체 조사를 지시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사업주가 '괴롭힘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릴 때 시작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관계상 우위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난 행위 △신체적·정신적 고통이나 근무 환경 악화 등 법으로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성립한다. 사업주가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하면, 노동부로서는 이를 뒤집기가 어렵다. 직접 조사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노동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업주의 조사가 공정했는지, 판단이 합리적이었는지를 검토하는 것뿐이다. 절차상 누락이나 명백한 하자가 발견되면 재조사를 지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 위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적 권한의 부재는 곧장 민원인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진다. 한 근로감독관은 "회사에서 상처받고 노동청 문을 두드린 근로자 입장에서는 이런 절차적 한계가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사 측 편들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그 분노의 화살이 고스란히 눈앞의 근로감독관에게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법인 현문 소속 김남희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공적인 측면이 있지만, 법의 근본 취지 자체는 기업 내부적으로 자율적인 해결을 도모하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민원인들은 이를 경찰 신고처럼 오해해 노동부가 가해자를 직접 조사하고 처벌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현장에서 충돌이 발생한다"고 짚었다.

탁상행정이 낳은 과부하…샌드백 된 감독관

실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최근 들어 폭증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접수 현황에 따르면,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에서 지난해 1만6373건까지 급증했다. 5년 사이 2.8배 불어난 것으로, 하루 평균 45건씩 늘어난 꼴이다. 신고된 사건들이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는 드물다. 지난해 처리가 완료된 사건 1만5655건 가운데 '개선 지도' '과태료 부과' '검찰 송치' 등 법 위반으로 판정된 사건은 8.5%(1330건)에 그쳤다. 10건 중 9건은 법 위반으로 인정되지 않는 셈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건을 감당하기 위해 노동부는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만 전담하는 '근로개선문화과'를 지방관서 단위로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부서는 내부에서 가장 기피하는 자리가 됐다. 한 근로감독관은 "괴롭힘 사건 한 건이 일반 임금체불 사건의 몇 배에 달하는 스트레스"라며 "'3년만 일하면 미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사건 배당 방식의 변화도 갈등을 키웠다. 과거 정보구역(담당 구역) 방식이던 사건 배당은 구역 간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2019년 무렵 '1/n' 균등 배분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노동부 본부가 현장 관리 강화를 명분으로 팀별 정보구역 분담제를 다시 도입하면서 일선의 불만이 커졌다. A씨가 속한 팀에도 사건이 한 달간 다소 몰린 상태였고, 뒤늦게 업무 조정이 이뤄지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이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관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지휘부의 이중적인 태도다. 한 현직 근로감독관은 "장관 등 지휘부가 일반 산업 현장의 산재 사망 사고에는 기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내부 직원이 과로와 악성 민원으로 사망한 사건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원래 취지대로 안착시키고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사각지대에 방치된 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적극적 보호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 역시 기본적으로 대국민 서비스, 즉 고객응대업무를 하는 근로자"라며 "일반 기업의 콜센터 직원들이 선을 넘는 악성 고객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듯, 공무원들도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남희 노무사 역시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김 노무사는 "일선 공무원 개인은 인사 고과나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악성 민원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반복적이고 억지스러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이를 제한하는 등 기관 차원에서 공무원을 보호하는 강력한 매뉴얼과 대응 조치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제도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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