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과 본격적 군사협력을 할 수 없는 이유
고노 담화 “군 당국 요청으로 위안소 설치 운영”
“위안부 모집·이송·관리 본인 의사에 반한 강제”
배경은 사회당과 연립 통한 자민당 재집권 전략
과거 청산 약속 아베 신조가 집권하면서 뒤집혀
다카이치도 '아베 사관' 이어받아 과거청산 한계
이 대통령 "국민 정서상 본격 군사협력 힘들다"

길고 흰 눈썹을 한 영정 앞에서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넸다. "지금 정치는 다시 격동기를 맞고 있습니다. '힘에 의한 정의' 등 요사스런 말이 버젓이 통용되는 제국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듯합니다."
일본 아사히신문 장기 연재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의 12일 칼럼 첫 구절이다. 길고 흰 눈썹을 한 영정의 주인공은 무라야마 도미이치(1924~2025) 전 총리(재임 1994.6~1996.1)다. 인용문은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무라야마 전 총리 '작별 모임'(올해 4월 20일)에서 그의 정치적 동지였던 고노 요헤이(1937~2026.6.8.) 전 외상이 한 고별사의 한 구절이다. 그 고노 전 외상도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천성인어'는 이 두 사람이 "모두 '제국의 시대'(帝国の世)를 아는 세대"라며, 일본 패전 당시 고노 씨는 8세로, 소개지(피난지)에서 천황의 항복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 21세로 육군에 복무 중이던 무라야마 씨는 규슈 구마모토에서 미군의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군 당국 요청으로 위안소 설치 운영"
그 담화(일본 외무성 공식 사이트 게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른바 종군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재작년(1991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이제 그 결과가 마무리돼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처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 운영됐으며, 위안소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담화는 이어서 '위안부 모집'과 그것의 강제성 여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위안부 모집은 본인 의사에 반한 강제"

사회당과의 연립 통한 재집권 전략···고노 담화 배경

고노 담화 끌어낸 김학순 할머니 증언 충격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냉전의 친미 반공논리에 기대어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일제 침략전쟁 때의 전쟁범죄 청산에 눈감아 온 일본 지배세력은 더는 그런 은폐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를 미래에 불안을 느꼈다. 그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두려워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그 시기에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일제 위안부 희생자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그 사건으로 더욱 궁지에 몰린 미야자와 내각이 서둘라 위안부에 관한 자체 조사에 나선 것이 바로 그때였다.
"위안부 모집, 이송, 관리도 본인 의사에 반한 강제"
그렇게 해서 나온 고노 담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또 전지(전장)에 이송된 위안부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빼면, 조선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당시 조선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 아래 있었고,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과 강업을 통해 이뤄지는 등 전반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졌다.
어쨌든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의 여성들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낸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그 출신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표시할지에 대해서는 유식자들의 의견 등도 함께 수렴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오래 기억에 남겨서 같은 과오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한번 표명한다.
또 본 문제에 대해서는 본국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한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서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서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가고자 한다."
고노 담화 맹세에 역행한 아베 신조 시대
이후 일본은 이 고노담화에서 맹세한 약속을 이행했는가?
서글프게도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담화 내용을 부정하고, 그때 잠시 드러난 진실을 다시 감추고 덮기에 급급했다. 그런 일본의 퇴행과 역행을 대표하는 인물이 1993년 6월에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야마구치 선거구를 물려받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고노 담화'와 그 정신의 계승을 표방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핵심 내용을 끊임없이 부정한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아베는 일본정부 자체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공표된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군과 관의 직접적인 관여 사실도 부정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을 사실상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매매춘 행위자로 몰아 피해자들을 두 번 죽였다. 지금 과거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본 전후 세대들 대다수가 아베 신조와 '일본회의' 등 극우단체들이 숨기고 왜곡해 온 역사관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정황들은 차고 넘친다.
아베가 2015년에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고 한 데서도 보듯,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한 아시아민족해방 전쟁으로 인식하는 전도된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담화에서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며 "그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사 진상규명과 그것을 토대로 한 철저한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 곧 제대로된 과거사 청산 그리고 그 토대 위의 새로운 관계 재정립이 필수적이었으나, 아베는 거꾸로 갔다. 과거사의 상처를 다시 덮고 일본 군국주의의 과거를 '영광의 역사'로 미화했다. 고노 담화가 잠시 드러냈던 역사적 진실은 다시 묻혀 버렸다. 천성인어 칼럼이 얘기한 '제국의 시대로의 역행'이다.
한국이 일본과 본격적인 군사협력 할 수 없는 이유
그 '아베 사관'을 이어받은 '제2의 아베', '여성 아베'가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지금 총리다. 이재명 대통령이 외신기자 회견에서 일본기자의 질문에 일본과의 본격적인 군사협력에 대해 현실적 안보 필요성은 인정하나 국민의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대답했을 때, 일본에서는 그것을 한국이 여전히 과거사에 집착해 반일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좌라고 비판했다. 이는 적반하장에 가깝다. 과거에 집착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본 자신이다. 일본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그것을 정면으로 솔직하게 풀어갈 생각이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일 군사동맹 체결이 불가능한 근본 이유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일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이 배상 확정판결을 내리자 그것을 취소하라며 한국정부를 압박하다, 2019년 7월에 한국 제조업의 근간인 반도체 첨단 소재 부품 장비 수출길까지 막으려 했던 것도 아베 신조와 자민당 정권이었다.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 역사가 불가피했다거나 정당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거나 주장하는 국가와 그 국가의 침략주의, 식민주의에 희생당한 국가가 어떻게 군사동맹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 독일이 과거 나치 독일의 침략이 불가피했다거나 정당했다며 과거청산을 거부하고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 될 수 있을까.
천성인어 12일 칼럼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고노 씨는 맹우(무라야마)에게 '당신이 걸었던 평화로 가는 발걸음을 우리가 이어받아 갈 것'이라고 맹세했다. 무라야마 씨가 세상을 떠났고, 고노 씨도 세상을 떠났다. '제국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시대에 어떻게 평화의 발걸음을 이어받아 갈 수 있을까. (이젠) 우리 차례다."
고노, 무라야마 세대의 일본 리버럴 세력 일부가 열어 놓은 과거 청산의 기회를 다시 덮어버린 아베 세대의 '제국의 시대'로의 반동을 이후 세대가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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