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거스른 국민의힘…정점식 내세워 한동훈 막았다
도로 친윤당으로…“정점식 선출은 한동훈 견제의 결과”
소장파 25명, ‘장동혁 사퇴’ 요구…“野, 대변혁 필요”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6·3 지방선거는 국민이 국민의힘에 던진 최후통첩에 가까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축출, 연이은 내홍 끝에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력과 입법권력, 지방권력까지 사실상 모두 내줬다. 민심은 분명했다. 보수가 살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6월10일 국민의힘은 또 한 번 기존 질서에 머무르는 선택지를 택했다. 새 원내사령탑에 변화와 쇄신을 내세운 김도읍 의원이 아니라 장동혁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정점식 의원이 오르면서다.

"정점식 체제는 송언석 시즌2"
이번 선거의 의미는 단순한 원내대표 1석에 있지 않다. 국민의힘이 민심에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당심의 울타리 안에 머물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였다. 결과는 변화보다 생존, 쇄신보다 기득권 수호였다. 특히 한 전 대표의 복당 문제를 둘러싸고 친윤(親윤석열)계와 영남권 의원들이 결집하면서 당은 끝내 '한동훈 딜레마'를 돌파하지 못했다. 윤석열 시대의 몰락 이후에도 당내 다수는 바깥의 위협보다 내부의 권력 재편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민심이 정답을 제시했는데도 당심을 앞세워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마주한 근본적 위기는 김도읍이냐 정점식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태로 과연 내후년 총선에서 다시 100석 이상을 지켜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국민의힘 앞에 놓여 있다.
정점식 원내대표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는 송언석 전 원내대표로 꼽힌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내에서는 송 전 원내대표가 TK(대구·경북)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주호영 의원(6선)은 대구시장 경선에서 탈락했고, 추경호 전 원내대표(3선)는 대구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스럽게 원내에서는 송 전 원내대표의 영향력이 커졌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지금 TK의 새 주자는 사실상 송언석"이라며 "그런 송언석이 정점식을 밀었고 정점식 체제는 사실상 송언석 시즌2"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움직임 역시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들은 송 전 원내대표가 사퇴를 선언한 당일 곧바로 6월9일 원내대표 선거 실시 방침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이 확산되기 전에 원내 권력부터 정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정 의원이었다. 김도읍·성일종 의원 측은 "기습 선거"라며 반발했고, 소장파 모임인 '대안과 미래'도 특정 후보를 밀기 위한 선거라는 취지로 공개 비판했다. 결국 선거는 하루 연기됐지만 지도부가 정 의원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 했다는 의혹은 선거 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에서는 송 전 원내대표 역시 최종 권력이 아니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장동혁을 대표로 세운 것도, 송언석을 원내사령탑으로 만든 것도, 이번에 정점식을 새 원내대표로 올린 것도 결국 영남권 의원이 주축이 된 친윤 핵심 그룹, 이른바 '언더 찐윤'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직책도 책임도 없지만 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동혁도, 송언석도 결국 언더 찐윤이 선택한 인물"이라며 "얼굴은 바뀌어도 실제 움직이는 세력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한동훈 복귀' 둘러싼 대리전서 당권파 7표 차 신승
그렇다면 언더 찐윤은 왜 김도읍이 아닌 정점식을 선택했을까. 두 사람이 던진 메시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정견 발표에서 "사람이 바뀌어야 국민께서 변화가 시작됐다고 인정해줄 것이다" "원내대표 선거 결과에 따라 도로 친윤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와 같은 말을 했다. 노선을 바꾸고 사람도 바꾸자는 이야기다.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의 칼끝이 결국 현 지도부와 주류 세력으로 향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의원들은 김도읍을 '변화' '쇄신' '반(反)장동혁'이라는 키워드로 읽었다.
정 원내대표의 키워드는 정반대였다. 그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통합' '신뢰' '단일대오' '집단지성'이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께서 주신 메시지는 서로 탓할 게 아니라 하나가 되라는 것"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당을 세우라는 명령" "110명 모두의 지혜를 바탕으로"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김 의원이 "우리가 틀렸으니 바꾸자"였다면 정 원내대표는 "틀렸더라도 지금은 뭉칠 때"에 가까웠다. 원내 다수 의원은 변화가 가져올 불확실성보다 결속이 주는 안정감에 더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또 다른 변수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한동훈 복귀'를 둘러싼 대리전 성격이 짙었다. 김도읍 의원은 원래부터 당내에서 한동훈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분류됐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 당시 한동훈 전 대표가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자 지도부에 '무공천'을 건의한 것도 그였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도 의원들 사이에서는 "김도읍이 당선되면 한동훈이 곧바로 복당한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김 의원이 직접 해명에 나설 정도였다.

"지도부 총사퇴" "철없는 소리" 공개 충돌
당내 주류가 한동훈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분명했다. 한 의원의 복당은 단순히 의원 한 명이 당으로 돌아오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당으로 돌아오는 순간, 당권 구도는 물론 내후년 총선 공천 구도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TK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체제가 들어설 경우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점식을 원내대표로 세운다는 것은 결국 한동훈에게 당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결국 정점식 원내대표를 향한 표심에는 기존 권력 유지뿐 아니라 한동훈이라는 변수를 차단하려는 계산도 함께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번 선거를 언더 찐윤의 완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정점식 원내대표를 선택했지만 당내 변화 요구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투표 결과에서 드러난다. 1차 투표에서는 정점식 47표, 김도읍 39표, 성일종 20표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까지 갔다. 결선에서도 정 원내대표는 55표를 얻어 48표에 그친 김 의원을 꺾었지만 격차는 7표에 불과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의 노선과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적지 않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정 원내대표가 승리하긴 했지만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까지 잠재운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6월11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7표 차이라는 외형적인 표차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지역 색깔을 떠나 큰 변화를 바라는 의원들이 우리 당에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당시만 해도 찬성표가 12표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7표까지 늘어났다"면서 "그만큼 국민의힘 내부의 변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날 대안과 미래 소속 의원 25명은 입장문을 내고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며 "장 대표의 리더십은 붕괴됐고, 이는 오롯이 장동혁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보수는 늘 책임을 중시해 왔다. 장 대표가 진정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국민은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의 교체를 주문했다"고 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우재준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 총선을 잘 준비할 수 있게 우리 지도부는 이제 다음 지도부를 위한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지도부 총사퇴를 공개 제안했다. 이에 당권파인 조광한 최고위원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미숙한 철없는 소리"라고 맞받았고, 김민수 최고위원도 "당이 아니라 개인의 계파를 위해 뛰려고 하느냐"고 비판했다.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공개 충돌로 번진 것이다. 실제로 회의 도중 정 원내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이 때문에 정 원내대표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심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당의 노선과 지도부를 바꾸라고 요구했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장동혁 체제와 거리를 두거나 독자적인 정치 색채를 유지해온 인물들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시장,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 승리한 유의동 의원,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한동훈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野, '영남에서 의원만 계속하면 된다'로 보여"
상황이 이렇자 민주당에서는 오히려 장동혁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역설적인 평가도 나왔다. 김지호 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6월11일 채널A라디오 《정치시그널》에서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나 국민의힘의 미래를 고민하며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영남에서 국회의원만 계속하면 된다'는 식으로 보인다"며 "민주당 입장에서는 장동혁 대표가 오래오래 당대표를 했으면 좋겠다. 대선후보로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대한민국 정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면 저런 허약한 정당이 야당으로 있는 것은 오히려 독"이라며 "민주당도 국민의힘 자체보다 이번 선거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의원을 경쟁자로 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국민의힘 지도부보다 장동혁 체제와 거리를 둔 인물들을 더 위협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 원내대표가 마주한 딜레마는 분명하다. 자신을 당선시킨 의원들은 변화를 경계했고, 국민은 변화를 요구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의원 55표가 중요했지만, 다음 총선에서는 국민의 표가 승패를 가른다. 정 원내대표가 당내 다수의 기대에 머물지, 아니면 민심이 요구하는 변화까지 끌어안을지가 앞으로 국민의힘의 진로를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원로인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6월11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의원들의 집단지성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국민은 아니라고 하는데 의원들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잘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민주당도 경고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의힘이 스스로 성과를 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특히 이 이사장은 국민의힘에 지금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인적 교체가 아니라 당을 다시 세우는 수준의 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 체제를 바꾸고 개혁신당과의 통합도 검토하고, 한동훈 의원 등 당에서 밀려난 인사들도 복당시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며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는 2년 후 총선에 희망이 없다. 지금 국민의힘에는 지진이 나듯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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