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공급 늘리고 중국은 수요 줄이고…유가가 더 폭등 않는 이유

김기훈 기자 2026. 6. 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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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 300달러 전망 나와
3개월 지난 현재 90달러 수준
미국은 전략비축유 세계에 풀고
중국은 비축유 확대 조치 중단
중동전쟁 발발 직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3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5일 “다른 사람들은 국제유가 상황이 훨씬 나빠져 배럴당 3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유가는 96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유가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이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 쇼크(석유 파동)보다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오랫동안 봉쇄되면 하루 10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전쟁 3개월이 지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WTI(서부텍사스유) 가격은 현재 배럴당 9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 예상보다 안정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협상에서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어떻게 배럴당 300달러 폭등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블룸버그 등 외신 보도를 분석해 보면 이유는 모두 7가지다.

전략비축유 방출

첫째, 미국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세계 경제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세일 석유 혁명으로 세계 석유 수출 시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전쟁 발발 직후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전략비축유 1억7200만 배럴을 풀겠다고 밝혔다. 이 전략비축유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 공급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월 미국의 하루 원유 수출량은 작년 평균보다 200만 배럴이나 더 많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하루 석유 공급 감소분 1000만 배럴의 약 20%를 미국이 대신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중국이 전략비축유 확보를 줄였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하루에 1000만 배럴이 넘는 원유를 수입하면서 전략비축유를 늘려왔다. 하지만 이번 중동전쟁 이후에는 비축유 확대를 중단한 상태다. 화학제품을 석유 대신 석탄에서 추출하는 정책을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는 추세도 중국 정부의 비축유 확대 중단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중국의 정유량은 지난해 하루 평균 1480만 배럴 수준이었으나 지난 5월과 6월에는 2020년 코로나 사태 당시 수준인 하루 13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수요 감소로 중국의 지난 5월 원유 수입량은 1년 전보다 40%나 줄었다. 이 감소분은 중동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 원유 공급량 감소분 1000만 배럴의 20~30% 정도를 상쇄하는 효과를 낸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공급 감소분 1000만 배럴 중 절반이 미국의 공급 증가와 중국의 수요 감소로 상쇄되는 셈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셋째,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규제 완화로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인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증가했다.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지난 5월 하루 176만 배럴로 전쟁 시작 전인 2월보다 63%나 증가했다.

넷째, 중동 국가들이 우회로를 통해 석유 수출을 늘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 육상 송유관을 통해 하루에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이 있는 페르시아만에서 홍해로 옮기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도 육상 송유관을 통해 페르시아만 외부의 푸자이라 항구로 원유를 수송했다.

호르무즈 통과 이어져

다섯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이 수는 적지만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유조선들은 정부간 협상을 통하거나,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거나, 선박 위치추적 장치를 끈 상태로 모험을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 나오고 있다. 중동 전쟁 전의 하루 100척에는 훨씬 못미치지만 하루에 2~3척이 꾸준히 해협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상대로 비밀 작전을 벌여 1억 배럴 이상의 석유를 전세계에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여섯째, 중동전쟁 이전에 국제 원유 시장이 다소 과잉공급 상태였다. 따라서 전쟁 이후에 공급이 줄었지만 과잉공급 분이 완충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협상이 타결되면 유가가 급락할 것이라며 수시로 원유 시장에 구두개입을 하고 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1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일곱째,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이란과 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원유 선물 시장에 구두개입하는 것도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을 막는 한 요인이다. 원유 트레이더들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거슬러가며 선물시장에서 유가 상승에 베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동전쟁 이후 하루 10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줄었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 각국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 최대 선주 회사인 안젤리쿠시스의 마리아 안젤리쿠시스 대표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50~90%나 오르긴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천정부지 수준은 아니다. 세계가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장기화 때는 위험

하지만 미래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먼저 미국의 전략비축유가 하루 140만 배럴씩 빠르게 줄어들면서 재고량이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감소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전략비축유도 감소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정유 공장에 수요가 몰려 미국 내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의 해외 수출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제유가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중국의 움직임도 큰 변수이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가 상승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면 중국이 다시 전략비축유 확보에 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원유 수입 확대 여부는 향후 국제유가의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이다. 사진은 중국 유조선이 지난 5월 11일 산동성 칭다오 항구에서 수입 원유를 하역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타결되어 중동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유가가 단기에 하락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전쟁 발발 후 지난 3개월간 소비된 전략비축유 10억 배럴을 다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모건스탠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가까운 시일 내에 완전히 재개방되더라도 시설 파괴 등으로 손실된 원유 공급량이 모두 시장으로 돌아오려면 2027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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