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그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상상 속의 삶에서 아버지는…"

권영은 2026. 6.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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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앤드루 포터 장편소설 '상상 속의 삶'
장편소설 '상상 속의 삶'을 최근 국내 출간한 미국 소설가 앤드루 포터. 2008년 데뷔작인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미 최고 권위의 단편 문학상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탄 포터는 적지 않은 한국 팬을 보유하고 있다. ⓒ Sarah E. Cooper

그날이 아버지를 보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미국 현대문학의 주목받는 작가 앤드루 포터(54)의 장편소설 '상상 속의 삶'은 중년에 접어든 아들 스티븐이 40년 전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소설집 '사라진 것들' 이후 2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포터의 신작. 장편소설로는 '어떤 날들' 이후 11년 만이다.

소설은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스티븐의 아버지는 대학 영문과 교수로, 뛰어난 학자이자 학생들에게도 인기 있는 선생이었다. 최고 권위 학술지에 실린 논문 여덟 편을 묶은 책 출간을 앞둔 그에게 종신교수직 임용은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는 종신교수직 심사에서 탈락하고 책 출간마저 무산된다. 이는 단순히 직장을 잃는 사건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알고 이해했으며, 그를 가치 있게 여긴 유일한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전화번호와 거주지, 차량 등록 기록까지 그가 어딘가 '실존한다'는 흔적마저 자취를 감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는 열두 살 소년 스티븐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버림받았다는 사실, 자신도 아버지처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성장기는 물론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한다. 어느덧 50대가 된 스티븐은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한 채 묻어뒀던 아버지의 실종과 그 너머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상상 속의 삶·앤드루 포터 지음·민은영 옮김·문학동네 발행·444쪽·1만9,800원

제목인 '상상 속의 삶'은 소설의 마지막 장 첫 문장인 "상상 속의 삶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에서 나왔다. 스티븐은 평생 아버지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하며 살아왔다. "상상 속의 삶에서, 아버지는 종신교수로 임용된다. (…) 상상 속의 삶에서, 내게는 이상하고 가끔 까다로운 아버지가 있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있다. (…) 상상 속의 삶에서, ……."(421,422쪽)

스티븐은 줄리언 삼촌과 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와 메모,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 오래전 사라진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복원해 나간다. 그러나 실종의 진실을 좇을수록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학자는 아니지만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아가는 그는 자신의 관심사와 성격, 삶의 형태까지도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기억의 조각들은 끝내 하나의 진실로 수렴되지 않는다. 스티븐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그가 상상해 온 아버지, 타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모두 닮았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아버지는 오히려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다른 면을 보고 퍼즐의 다른 조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 중 누가 아버지의 진정한 면을 보았을까? 글쎄, 바로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다."(406쪽) 아버지는 끝내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남는다. 그렇게 작중 아버지는 끝까지 이름 없이 '아버지'로만 불린다.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아버지 실종의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은 소설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어쨌든 뒤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든다. 동시에 포터 특유의 절제의 미학은 장기인 단편소설 못지않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어린 스티븐의 눈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방식이 울림을 준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섣불리 설명하지 않기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막연하게 감지하는 불안과 외로움, 상실의 감각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해진다.

'사라진다는 것'은 포터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상상 속의 삶'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인다. 다만 소설은 결국 사라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평생 상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 세월은 내게 수수께끼이며, 그래서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다."(292쪽)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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