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비추는 사물…구본창의 세계에 모인 8인의 사진가들
사진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Objects in Oscillation)’
한국 대표 현대 사진작가 구본창 기획 하에
정희승, 조성연, 김수강, 김경태, 박찬우,
구성연, 정정호, 조선희 8인의 사진가 모여

예술은 익숙한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금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진동하는 사물들’은 일상의 물건들을 더 깊이, 더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작가 구본창의 주도 하에 8명의 사진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인공지능(AI)이 이미지를 생성하고 변형하는 시대에 사진의 역할이 새롭게 질문받고 있다” 서울 소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진동하는 사물들(Objects in Oscillation)’은 이 문장에서 출발한다. 사진을 순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구본창이 전시를 함께할 8명의 사진작가들을 직접 초청해 사진의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자리다.
구본창을 비롯해 정희승, 조성연, 김수강, 김경태, 박찬우, 구성연, 정정호, 조선희의 작업이 국제갤러리 화이트큐브에 걸린다. 국제갤러리가 국내 사진작가의 사진전을, 그것도 그룹전으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본창은 작가별 전시 공간과 구획 배정까지 관여하며 후배 작가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전시는 다양한 사진 장르 중에서도 ‘정물 사진(Still Life)’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물 사진의 역사는 사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초기 사진술은 긴 노출 시간 탓에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주로 담아야 했기에 정물은 사진가들의 중요한 피사체였다. 기술 발전으로 촬영 대상이 다양해지면서 정물 사진의 존재감은 옅어졌지만, 사물에 깃든 시간과 기억을 탐구하는 장르로 꾸준히 진화해 왔다.


구본창 작가는 사진을 순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사물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역사와 시간, 기억을 담은 매개체로 보고 이를 섬세하게 담아왔다. 구본창은 이번 전시에 참여할 작가들을 직접 선정하고 작가별 전시 공간과 구획 배정에도 관여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해 왔는데, 아직 정물 사진을 중점으로 한 사진전이 없었던 것 같다”며 “현실과 가깝고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많은 관심을 얻는 요즘이지만, 일상의 사물과 그 사물의 서사를 다루는 작가들의 작품 역시 시대 정신, 더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이어 참여 작가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196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까지 오랜 시간 정물 사진 작업을 이어오며 꾸준히 자기 세계를 이루려고 노력한 작가들을 모았다”며 “이들 모두는 쉬운 길을 찾거나 타협하지 않고 사물의 숨겨진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과도한 후보정이나 인공지능(AI)에 의존하는 대신 각자의 시선과 감각을 담아내는 사진 기법에 집중했다. AI 기술이 이미지 생산의 영역을 넓힌 시대에 오히려 작가 고유의 시각과 사진의 본질에 주목한 것이다. 회화적 표현을 더하는 검프린트(gum print) 방식으로 사진의 질감을 강조한 김수강 작가와 초점 위치를 옮겨가며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 가장 선명한 부분만을 모아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하는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활용한 김경태 작가가 그 예다.


김수강은 돌과 스포이드가 달린 유리병, 보자기 등 평범한 사물을 촬영한다. 여기에 19세기 후반 개발된 검프린트 기법을 적용해 사진에 독특한 깊이와 질감을 더한다. 아라비아 고무와 안료 등을 섞은 용액을 발라 빛을 쬐게 한 후 물속에서 현상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흐린다. 김수강 작가는 “검프린트는 대상을 맨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인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사물에 죽음에 대한 사유를 투영한 작가들도 눈에 띈다. 정정호는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의 경험과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바닷가에서 수집한 옷가지와 탄피, 끈, 철사 등을 재배치한 작업을 선보인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맞닥뜨린 후 소멸의 의미를 탐구하게 된 조선희 작가는 시든 꽃에 검은 안료를 뿌리고, 마른 과일이 부패하는 형태를 기록해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의 순간으로 바라본다.

그간 수많은 스타의 얼굴을 기록해 온 조선희 작가는 “오브제 역시 사람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주체이자 타인으로 담으려 했다”며 “나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원근감을 배제하고 1:1의 비율로 작업헸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설탕으로 조각한 장식품을 담은 구성연 작가와 다시점 촬영을 적용한 박찬우, 콘크리트 조각이나 철근 등으로 사물의 잠재된 가능성을 포착한 조성연,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hane Mallarmé)의 시집 ‘주사위 던지기’를 사진으로 번역한 정희승의 작품이 관객 앞에 선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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