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 뉴스 나면 한 달 뒤 중증 환자는 이곳에”
KTX와 수도권 지하철이 함께 서는 경기 양평역. 택시를 타고 동쪽으로 5~6분 가면 대지 2만 7000여 평에 연건평 1만 3000평의 거대한 7층 건물이 보인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밖에서는 고요하기까지 한 건물에 들어서 2층에 올라가면 옷매무새를 고치게 된다. 수백 평 규모의 운동 치료실과 로봇 치료실, 수(水) 치료실 등에서 교통사고와 각종 사고로 다친 환자들이 이를 악물고 재활치료를 받는 모습을 마주하며…. 동시에 300명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의 교통사고·외상 전문병원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립교통재활병원은 2014년 문을 열었지만, 누적된 적자 때문에 문을 닫을 뻔하다 기사회생, 환자들에게 '제2의 삶'을 마련해주고 있다. 환자를 재활 치료하면서 스스로도 재활에 성공한 재활병원인 셈이다.
이 병원 방문석 원장은 한때 일부 환자 가족과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받기도 했지만 원칙을 지켜 병원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방 원장은 "아직도 재활병원의 역할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일부 의사도 요양병원과 뭐가 다른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은 뭐가 다른가?
"재활병원은 사고나 병으로 응급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심신의 기능을 회복하거나 장비 또는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환자의 거주에 초점을 맞춘 요양시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재활의학에선 걷는 것을 중시한다. 환자가 못 걸으면 다른 사람이나 도움을 받아 걸을 수 있게 만드는 게 재활병원이다. 특히 중증 교통사고 환자는 뇌, 척수, 시각, 청각 등 다양한 장애가 동시에 일어나서 다면적 치료가 필요하다. 중증 외상 환자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교통사고 환자의 특수성 탓에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 환자단체는 오랫동안 교통사고 전문병원 설립을 요구해 왔다. 1999년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재활시설 조항이 처음 들어갔고, 2006년 법률 개정 때 재활시설과 재활사업이 구체적으로 명문화됐다. 2007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병원이 들어설 지방자치단체를 공모했고 양평군이 30여 곳 후보지와 경쟁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선 재활병원이 수익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2009년 내가 이끈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교통사고 재활 전문병원의 타당성을 연구했더니, 건강보험에 맞춰 적정 진료를 하면 매년 100억 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가 적자를 벌충하면 아시아 최상급 병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위탁 병원 공모에서 뜻밖에 서울대병원은 탈락했다. 국토교통부의 입찰에서는 입찰자의 재무 건전성을 중시하는데, 서울대병원은 서류상 자산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어 이 분야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반면, 가톨릭의료원은 과제 발표 때 기부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이 공중에 떠버렸다. 병원은 5년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을 들었고, 2019년 국토교통부는 위탁 병원을 재공모해야만 했다.
-실컷 연구해 놓고 탈락한 데다가 적자가 쌓인 병원을 위탁 경영한다니 서울대병원 본원에서도 반대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환자들의 염원이었던 재활병원을 문 닫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토교통부에는 2009년 용역 연구 결과를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적정 장비와 연구비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더해서 병원이나 의료진 탓이 아니라 천재지변, 감염병 등 불가항력적 사태로 생긴 적자는 정부가 보전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의 유행을 보며 요구한 것인데 나중에 코로나19 유행 때 병원을 지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방 원장은 2019년 위탁경영을 맡자마자 수도권과 강원도의 권역외상센터, 보훈병원, 산재병원, 재활병원 등을 돌며 병원의 존재와 환자 전원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처음엔 퉁명스러운 반응도 있었지만, 교통재활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재활 환자의 예후가 더 좋은 것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상급병원이나 지역외상거점병원에서 환자를 이곳에 보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방 원장은 취임 직후 '내부 개혁'도 하나둘씩 진행했다. 우선, 의료진을 확충하고 병원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일부는 왜 의사를 많이 고용하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지난번에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임직원들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했다.
입원 병동에는 보호자의 출입을 제한했다. 출입증 받은 사람만 병동에 들어가게 규정을 만들었지만 무시하는 이가 적지 않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카드를 대야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보호자나 간병인 사이에서 "미친 원장이 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병실에서 조리도 금지시켰다. 당시 병실에서 가족, 간병인이 밥을 먹는 것은 예사였고 일부는 가스버너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이를 금지하자 일부는 "집밥 좀 먹이겠다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서울대병원이 억울하게 장애인이 된 환자를 가족에서 떼어내려 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 원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재활병원은 재활치료를 하는 곳이라는 신념에 따라 환자의 정상 회복을 위해 원칙을 밀어붙였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진가가 드러났다.

-홍보와 위생만으로는 환자와 보호자 만족도가 이처럼 높지는 않을 듯하다. 병원 자체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
"인력과 장비 모두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2층은 1800여 평의 공간을 대규모 운동 치료실, 국내외 최첨단 로봇을 활용한 로봇 치료실, 수영장 시설에서 치료하는 수(水) 치료실, 장애별로 운전이 가능하도록 돕는 운전 재활치료실 등으로 구분해 증상별 다양한 치료를 가능케 했다. 4~6층에도 층마다 재활 치료실을 뒀다. 서울대병원에서 파견된 우수한 의료진의 열정적 치료도 자랑할 만하다. 재활의학과뿐 아니라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이비인후과의 전문의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뤄진 다학제 팀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참고로 삼킴장애의 대가인 이비인후과 조승호 교수는 퇴직 후 '제2 직장'으로 기꺼이 우리 병원을 선택했다."
서울대병원과의 협업 시스템도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중증 장애 환자는 자칫하면 욕창이 생기기 쉬운데, 성형외과 전문의가 매달 한 번, 외상외과 전문의가 격주에 한 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서 욕창을 발견하면 서울로 데리고 가서 수술한다. 또 비뇨의학과 오승준 교수가 매주 금요일 방문해서 환자의 방광 문제를 점검한다.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면 일요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월요일 수술받도록 한다. 이런 '원스톱 치료 시스템' 덕분에 환자 보호자가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매며 애태우는 일이 없다.
또 환자 입원 후 의료진의 환자 분석과 평가가 끝나면 환자와 보호자, 주치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이 함께 참가하는 '가족회의'를 열고 입원 후 치료 방침을 정하도록 했다. 치료에 대한 중대 변화, 퇴원 결정 전에도 회의가 열린다.
방 원장은 "마지막 가족회의 때 사회복지사가 최적의 프로그램을 찾아 지방자치단체와 연결하는 것을 비롯해 가정 치료 방법을 안내하면 일부는 '더 입원하게 해 달라' '다른 병원 가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재활치료에 집중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환자뿐 아니라 중증 외상 환자도 진료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는데….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때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이 아주대병원에서 수술받은 뒤 재활 전문병원으로 가지 않고 1년 동안 병실 치료를 받는 것을 보며 답답했다. 대중은 박수를 보냈지만, 다른 선진국의 의료진이 보면 코미디 같은 현실이었다. 외상센터는 빨리 수술하고 난 뒤 환자를 재활병원으로 보낸 뒤 새 환자를 맡는 게 정상 아닌가. 이를 떠나 당시 대학병원 재활센터는 환자를 2개월 이상 입원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되고 있었다. 중증 외상 환자는 우리가 맡아야 했다."

2014년 개원 때에는 교통사고 환자만 받았지만 지금은 절반은 교통사고, 나머지 절반은 외상 환자들이다. 뉴스에서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거나 군부대에서 대형사고가 난 것이 보도되면 한 달 뒤 이 병원에서 사고 환자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 병원을 'K-베스트 병원'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접촉한 보건 의료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 병원이 환자를 위해서 정부와 의료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시금석이 되는 병원이라고 평가했다.
방 원장은 "국립교통재활병원은 체계적 연구를 통해 '건강한 적자'에 대한 명분 있는 자료를 제시해서 국토교통부의 연구 지원을 받는데 이것은 국토교통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면서 "보건복지부 산하라면 건강보험 전체 예산 체계에서 지원 비율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의료기관을 적정하게 지원하면 비보험 치료, 병원 순례 등을 통한 비용이 격감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눈물 흘릴 일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점을 이 병원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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