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을 신으로 모시는 부족…로스팅해 마시는 호지차 원조 [서영수의 명산명차]

서영수 영화감독 2026. 6. 12. 07: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 중국 최후의 소수민족 지눠
견과류 맛이 나는 화소차는 호지차의 원류다.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은 다민족국가다. 중국 인구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漢족(12억8,400만 명)이 압도적 지배 민족이다. 소수민족은 중국 서부에 주로 거주한다. 25개 소수민족이 뿌리를 둔 윈난성이 대표 지역이다. 1979년 6월 6일 중국 국무원이 공식 인정한 마지막 소수민족이 윈난성 지눠基諾족이다. 지눠족은 지눠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40여 개 촌락으로 이뤄진 지눠족향에 모여 산다. 지눠는 보이차의 유일한 원산지 윈난에서 제일 먼저 유명세를 떨쳤다. 청나라 보이부普.府에 소속된 고古6대차산 중에서도 지눠가 으뜸이었다. 생산량이 많고 품질도 좋은 지눠산 찻잎은 부러움과 동시에 질시를 받았다. 영광은 짧았다. 소수민족 지눠는 유명세 못지않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부러움과 동시에 질시를 받은 지눠산 차나무.

지눠족향은 윈난성 시솽반나주西雙版納州 주도인 징홍시景洪市에서 동북 방향 24km에 있다. 동서 너비가 75km인 지눠산은 남북 길이도 50km가 넘는 큰 산이다. 일찍부터 도로망이 발달해 사통팔달로 산길이 촘촘히 연계되어 있다. 도로 포장률도 산골답지 않게 75%에 육박한다. 지눠산은 해발고도 575m부터 시작해 높은 지대는 1,691m에 달해 일교차가 크다. 최고기온은 40℃를 넘나들고 연평균 기온은 20℃로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연 강수량은 1,400mm로 차 재배에 적합하다. 2021년 기준 지눠족향 총인구 2만6,025명 중 97%가 지눠족이다.

지눠산의 아침은 안개로 시작한다.

대오에서 이탈한 제갈량 병사들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지눠족은 언어는 있어도 문자가 없어 민족에 대한 고대 자료가 없다. 먼 옛날 타지로 통하는 길이 뚫리기 전 지눠족은 많게는 100여 명이 함께 한집안에서 생활하기도 했었다. 란창강을 건너 울창한 우림지대를 뚫고 깊은 산골로 유입되는 인구는 거의 없었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은 같은 씨족임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근친혼이 가져오는 불상사를 체득한 지눠족은 씨족 내부의 혼인을 엄격히 금지했다. 부조리한 연인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친족 간 연애는 암암리에 묵인하되 결혼은 외지인과 해야만 했다. 대지를 창조한 어머니, 아모야오베이阿.腰北 여신이 친남매를 혼인시켜 민족 시조가 되었다는 신화를 믿는 지눠족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눠향은 교통망이 발달해 있다.

제갈량 탄생일에 공명등 걸어

지눠족은 지눠산 원조 토착민과 침략군 병사가 섞여 형성됐다. 남만 정벌을 성공리에 마친 제갈공명이 촉나라로 회군할 때 대열에서 이탈해 낙오된 원정군 일부가 지눠족에 동화되어 한 민족이 됐다. 씨족끼리 혼인을 금기시하는 원조 지눠족에게 촉나라 병사는 점령군 이전에 반가운 외지인이었다. 타향에서 온 신랑 후보를 쌍수로 환영한 지눠족은 씨족이 부족으로 번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금의환향과 거리가 먼 일부 병사들은 전쟁터 대신 지눠산에서 차를 재배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원했다. 제갈공명은 이들을 용인했다. 지눠족은 차 씨앗을 나눠 주고 병사를 남겨두고 간 제갈공명을 극복해야 할 이민족 정복자가 아닌 차를 전파해 준 차신茶神으로 섬긴다.

아모야오베이여신상과 지눠족조상이된 남매 조각상.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지눠족 토템.

제갈공명이 맹획을 일곱 번 붙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줬다는 '칠종칠금'은 삼국지가 탄생시킨 인기 있는 고사성어다.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칠종칠금 이야기는 사실과 거리가 먼 허구라고 한다. 지눠족 또한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제갈공명을 '차의 조상'으로 신봉하고 있다. 사실 윈난 지역은 제갈공명이 태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차가 생산되고 있었다. 스토리의 힘은 때때로 사실을 넘어서는 괴력이 있다. 구리로 만든 커다란 징을 제갈공명이 남겨뒀다고 알려진 지눠산을 공명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유사한 연유로 공명산이라고 칭하는 산이 윈난에 두엇 더 있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이 태어난 음력 7월 23일에 공명등孔明燈을 걸어놓고 봄에 딴 첫 찻잎을 바치는 '차조회茶祖會'를 매년 이어간다.

제갈공명이 전투에 사용해서 유명해진 풍등을 중화권에서는 공명등이라고도 한다.

지눠족은 숯불로 찻잎을 구워 끓여 마시는 '화소차火燒茶'라는 특이한 전통차 제조 기법이 있다. 구운 흙 내음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아로마와 고소한 견과류 맛이 나는 화소차는 1920년대 일본 교토에서 기원했다는 '호지차焙じ茶'의 오래된 조상이다. 녹차와 전혀 다른 독특한 외형과 맛을 지닌 호지차를 영어권에서는 '호지차Hojicha' 또는 '로스티드 그린 티Roasted Green Tea'로 부른다. 호지차는 고온 로스팅 과정에서 카페인이 상당 부분 휘발되어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 저녁 시간에 마셔도 부담이 없다. 말차抹茶로 착각하고 마시는 가루녹차처럼 쌉쌀한 맛이 없고 구수한 호지차는 우유와 궁합이 좋아 Z세대가 라테 형태로 즐겨 마신다. 말차 열풍에 이어 핫키워드로 떠오르는 호지차 원조는 지눠족이 구워 만든 화소차다.

중국 56번째 소수민족 지눠족을 기념하는 우표.

찻잎을 죽통 안에 다져 넣어 숯불로 열을 가해 만드는 '죽통차竹筒茶'와 찻잎을 달이고 졸여 검고 끈적한 상태로 만든 '차고茶膏'는 특화된 지눠족 산물이다. 차고는 물에 녹여 마시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instant tea'라고 할 수 있다. 1885년 영국에서 개발된 인스턴트 티보다 앞선 기술로 보인다. 지눠족은 '량반차凉拌茶'라는 원시 형태의 차 섭취 풍습이 있다. 량반차는 찻잎을 기름과 간장으로 버무려 나물로 먹는 음식이다. 즉석에서 먹는 방식과 김치처럼 발효해 먹는 방법이 있다. 지눠족 외에도 윈난 지역에 사는 대다수 소수민족은 찻잎을 식용으로 사용했다.

테마오커(쇠를 두드리는 제사)라는 새해맞이 전통 축제.

청나라의 보복으로 황폐화

지눠족은 대대로 지방 토호 세력과 좋은 관계였다. 1728년 한족 상인에게 모욕을 당한 지눠족이 그를 살해했다. 토사가 이를 묵인해 줬다. 청나라는 병사를 보내 지눠족을 참살하고 차산과 마을을 불태웠다. 1729년 청나라는 지눠에 보이부를 설치해 군대를 주둔시켰다. 보이부는 지눠를 비롯한 고6대차산에서 황실에 바치는 공차와 세금 징수 임무를 수행했다. 지눠산을 넘어 징홍과 라오스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청나라 정부의 직접 통치에 반기를 든 타이족은 지눠족과 연합해 봉기했다. 마을과 차산은 또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끈질긴 저항은 3년이 지나도록 진압되지 않았다. 차마고도를 빛내던 차산은 황무지로 변했다.

방직 기술과 자수 솜씨를 겨루며 풍성한 한 해를 기원한다.

청나라는 1912년 멸망할 때까지 177년 동안 지눠족이 보이차를 만들지 못하게 막았다. 지눠에서 채취한 찻잎을 가져와 이우易武와 이방倚邦에서 차를 만들었다. 고6대차산의 선두 주자 지눠는 몰락했다. 청나라가 망한 뒤에도 수난사는 끝나지 않았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피해 삶터를 떠난 지눠족은 더 깊은 산속에서 화전을 일구느라 차산을 불태워야만 했다. 1941년 이우에서 차 장사를 하는 양안원이 지눠족 전통과 관습을 무시했다가 충돌이 생겼다. 지눠족은 인근에 거주하는 야오족과 하니족을 규합해 폭동을 일으켰다. 진압을 위해 국민당 군대가 출동했다. 지눠산은 소수민족과 함께 죽어갔다. 격랑의 시기가 지나고 1970년대 측량한 결과 청나라 초기 700만㎡가 넘던 다원은 150만㎡로 줄어 있었다.

원로 대장장이가 대장간 화덕에 불을 피워 철제 도구를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300년 탄압 지눠족에 '보이차 훈풍'

20세기 말부터 불어온 보이차 바람이 뒤늦게 지눠에도 불기 시작했다. 밀림 속에 숨어 있던 고차수古茶樹가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고차수로 만든 고수차 가격이 급등하면서 300년 동안 고난받던 지눠족에게도 모처럼 훈풍이 불었다. 중국 최후의 소수민족 지눠족이 녹색 보물 '차'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침략자조차 외지인으로 반겨 동화시키는 친화력 '갑'을 자랑하는 지눠족은 2019년 윈난성에서 최초로 완전 빈곤 퇴치를 달성한 소수민족이 됐다.

300년 이상 된 지눠산 고차수.
보이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티.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