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분노'에 갇힌 언론 보도, 잠실 봉쇄 시위 제대로 그렸나
[비평] '참정권 침해' '재선거' 요구 뒤에 부정선거론
극우 성향 뚜렷해져도 계속된 '앵그리 2030' 프레임
재선거 구호와 부정선거론의 접점 충분히 못 짚어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참정권 침해에 대한 '2030세대의 순수한 분노'인가, 부정선거 음모론이 '참정권 침해'를 앞세워 외연을 넓히는 장인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문제로촉발된 서울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이하 잠실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을 비롯한 초유의 부실 선거관리가 드러난 사태 가운데, 잠실 시위는 '2030세대의 분노'가 응집해 터져나온 시위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시위가 시작되고 전개되는 과정은 '특정 세력과 무관한 청년의 자발적 모임'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잠실 시위'가 첫 주말을 맞은 지난 6~7일에는 20·3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시위 현장이 전해졌다. 당시 현장에선 '부정선거론'에 동의하지 않으며, '재선거만 외치자'는 구호가 전보다 높았다. 일부 참가자들이 성조기나 부정선거 구호를 자제시키며 '정치색'을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선일보는 잠실 시위를 '잠실 참정권 집회'라 명명하고 있다. 지난 8일 기사에서 이번 시위를 “이념 떠나 참정권 되찾기 운동”으로 설명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가 합류하려 했지만 '정치화하지 말라'는 시민 반발에 모두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 8일 시위 관련 보도에서 “집회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참정권 침해'와 '재선거'를 내세우는 이들과, 애초 주류였던 강성 '부정선거' 주장파가 충돌”하는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 성향 청년층이 외연 확장을 꾀하면서 시위 현장을 단지 극우 시위로만 치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선관위 비판' '재선거' 구호 앞세운 세력 면밀히 봐야
그러나 지난 8일부터 시위 양상은 크게 변화했다. 현장 구호는 '부정선거 재선거'에 더해, 부정선거론자들이 외쳐 온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로 수렴됐다. 시위 현장에선 참가자들이 자신과 의견이 달라 보이거나 기자로 보이는 참가자를 향해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이냐, 좌파 빨갱이냐, 중국인이냐' 물으며 따라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훈련 장비를 가지고 나오려는 유소년 선수들을 '검문검색'하거나, 경찰을 향해 '중국인 가짜 경찰'이라고 허위 주장을 펼치며 모욕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청년의 순수한 분노' 프레임을 유지하거나 더 강화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8일 <분노한 2030 송파 집결…“선거공정 문제, 정치시위 아니다”>에서 “중국 공산당 나가라” “경찰을 사칭하는 중국인이 국민을 때렸다” 등 이번 상황과 무관한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는데, 사흘 뒤인 11일 신문 1면에는 오히려 <앵그리 2030, 타깃은 4050 위선>이란 제목의 기사가 배치됐다. “정치 무관심층”이던 청년이 “4050의 내로남불”에 환멸을 느껴 거리에 나선 “앵그리 영의 선전포고”라는 해석이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엔 시위 참여자들이 이념과 진영, 정치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며 온라인 네트워크로 행동하는 '소셜 시티즌'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같은 날 <프락치 색출, 소지품 수색 일삼더니…결국 윤어게인 재등장> 기사를 배치했다. '극우 준동에 반대하는 건국대 구성원들' 소속 건국대 학생들의 집회와, 건국대 학생들이 시작한 '재선거 요구' 시국선언이 한날 열린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좌우 문제 아냐' '순수성 강조' 동시에 부정선거 주장
재선거 구호 첫 시작 끊은 건 극우 유튜브
실제 잠실 시위 현장 곳곳에선 자신들을 '시위대'로 규정하는 언론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자발적 시민”이라 강조하는 피켓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수 언론의 참가자 인터뷰에선 “정치를 잘 몰랐다”라는 발언이 반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 문제와 관련해 요구 사항이 분출하는 집회를 '정치와 무관하다'고 규정하기 어렵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시위대 표현을 거부하고 '순수함'을 주장하는 것은) 시위는 '불순한 좌파들'이 하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와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자신들의 요구는 '정치색 없는 순수한 시민의 요구'라고 주장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언론 묘사와 달리, 시위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재선거' 구호는 사실 선거일부터 부정선거론자들에 의해 촉발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 평론가는 “당초 오 시장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재선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극우 유튜브들이었다”며 “이후 부정선거론자는 아니더라도 '선거의 룰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시위에 합류하면서, 동상이몽·오월동주의 형태로 전체 구호가 재선거 요구로 모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유대학을 비롯한 극우 청년 단체들의 온라인 활동을 지켜봐왔다는 임재경씨(33세)도 지난 10일 통화에서 “초반에는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항의 성격도 있었지만, 계엄과 서부지법 폭동을 지지한 세력이 중심에 있었다”며 “초기에는 재선거 구호만 외쳐야 한다는 (자유대학 등 극우 단체 내) 내부 기조가 있었는데 그 자체로 '선거가 부정하기에 다시 해야 한다'는 전제를 담는다. 현재 올림픽 공원 시위를 보면 이제는 그런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거 요구는 텅빈 기표, 핵심은 진보 백래시' 지적도
지난 9일 윤석열씨 탄핵을 반대했던 학생의 '재선거 요구' 시국선언 발의에 항의 행동을 했던 강혜령씨(건국대 2학년)는 “언론은 마치 잠실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가 2030 전체의 목소리인 것처럼 과장해 보도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실제 학생들 분위기는 다르다. 전한길이나 자유대학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고, 이들이 민주주의에 관심 없는 세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김민하 평론가는 잠실 시위의 성격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보도를 범보수연대의 진보진영에 대한 백래시라 진단했다. “원래 보수 지지층 내부의 핵심 쟁점은 윤석열과 부정선거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관위 비판이라는 명분 아래 서로 다른 세력이 뭉치고 있다”며 “재선거 주장은 실질적 내용이 비어 있는 기표에 가깝고, 실은 진보정치에 대한 백래시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시위에 모인 사람들이 하는 주장을 받아쓰는 수박 겉핥기식 접근이 아니라, 잠실 시위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해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언론, '참정권 침해' 시민 분노와 현실정치 매개해야
언론이 부정선거론이 높은 잠실 시위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재경씨는 “(언론이) 극우세력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사들이 나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점을 언론이 분명히 짚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거 부실과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와 정치적 열망을 어떻게 현실정치에 반영할지 언론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언론이 해야 할 건 잠실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면서 “매우 구체적 대안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제도와 선관위 구조가 대의민주주의 실현을 오히려 제약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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