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빚 갚는’ 어떤 노조의 이야기 [차형석의 별별인물 탐구생활]
‘다가올 50대에는 어떤 사랑을 할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한창 하고 있다. 그래선지 나에게는 이 책이 사랑의 기록 같았다. 한국와이퍼 언니들의 사랑, 한국과 일본 활동가들의, 변호사들의, 그리고 윤미의 사랑. 한국와이퍼분회의 시작부터 뚜벅이재단 설립까지의 과정은 사랑으로 인해 너무나 창조적이며, 한 명 한 명의 인터뷰를 읽어갈수록 가슴이 데워진다. 책을 덮을 땐 그윽한 존경으로 가득 찬다.’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희음 기록, 오월의봄 펴냄)에 실린 강말금 배우의 추천사 중 일부다.
한국와이퍼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던 자동차 와이퍼 생산 공장이다. 1987년 일본 덴소 그룹의 100% 지분으로 세워진 외국인투자기업이다. 직원 300여 명 중 3분의 2가 중년 여성 노동자였다. 2022년 7월, 회사가 청산을 통보했다.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는 할 수 있는 싸움을 다 했다. 일본 덴소가 10년 동안 자회사를 통해 일본으로 가져간 기술사용료·이자 등이 4400억원이라는 점을 알렸다. 의도된 청산, ‘먹튀’ 기업으로 국정감사의 의제가 되었고, 회사는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되었다. 노조위원장은 국회 앞에서 44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였고, 조합원 209명은 8개월 동안 공장을 점거했다. 세 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원정 투쟁도 벌였다. 청산 통보 이전에 노사 간 고용안정 협약이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23년 8월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조는 오랜 교섭을 거쳐 일본 덴소로부터 사회적 고용기금 75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 중 24억원으로 공익재단 법인 뚜벅이재단을 설립했다. 오랜 싸움 끝에 얻은 합의금을 털어 공익재단을 만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뚜벅이재단은 한국와이퍼 해고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돕고, 안산 지역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오는 6월13일이면 재단 설립 2년을 맞는다. 강말금 배우의 추천사를 읽고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궁금해졌다. 44일 동안 단식을 하며 투쟁을 이끈 노조위원장. 지금은 뚜벅이재단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는 최윤미씨를 만났다.
최윤미씨가 한국와이퍼에 들어간 때는 2005년 12월. 꽤 탄탄한 회사라고 들었고, ‘생계비 정도는 벌 수 있겠다’ 싶어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노조가 없었다. 노사협의회에서 임금협상을 했다. 으레 현장관리자인 남성 직·반장들이 노동자 측 위원을 맡았다. 2008년 6월, 임금협상 설명회에서 생산직 최고 위치를 일컫는 ‘직장’이 노측 위원장으로 ‘올해 임금은 이만큼 오른다’고 말했다. 그때 현장의 젊은 여성 노동자 최윤미씨가 손을 들었다. “재무제표는 확인해봤나요?” 최씨는 공시된 한국와이퍼의 재무제표를 본 적이 있었고, 매출·이윤이 높은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낮은 임금인상률이 바뀌지 않았지만, 요식행위 같았던 설명회 자리에서 그의 질문은 이후 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또렷했다.
30세 여성 노동자, ‘뜻밖의 당선’
2008년 12월,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장 선거가 있었다. 최다 득표자가 노측 위원장을 맡기로 공표하고 치른 선거였다. 누군가 최윤미씨를 후보로 추천했다. 이 회사에서는 통상 경력이 많은 현장관리자가 뽑히곤 했는데, 당시 30세이던 그가 당선되었다. 그것도 최다 득표로. 최다 득표자가 노측 위원장을 맡기로 미리 약속한 터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투표한 사람도, 저도 당황스러웠다. ‘못한다’고 얘기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는데, 당선됐으니까 해보겠다고 했다. 공부도 하고, 준비도 하면 되니까.” 그렇게 노사협의회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와이퍼에 노조가 설립된 것은 2018년이다. 그 전까지는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들의 활동이 노조를 대신했다. “2000년대 초에 한번 노조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사업장이라고 들었다. 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고, 기존 노사협의회에서 임금·복지 협상이 가능해 저도 딱히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노조가 없었지만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회 일을 열심히 했다. 회사 근처에 ‘밥심’이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밥 먹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다섯 명이 ‘밥심 모임’을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30~40명이 참여하는 ‘소통위원회’로 확대되었다. 노조의 대의원회 같은 조직이었다. 노동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도 듣고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노조도 아닌데,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을 주변 노조 사람들에게 들었다. 육아휴직 기간에 출근해 회사와 노사협의회 협상을 할 정도로 최씨도 최선을 다했다. “최저임금·통상임금 관련 법 개정으로 노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 되어서” 노조가 설립되기 전까지 그가 계속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장으로 뽑혔다. 첫 당선이 단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노조위원장까지 맡은 걸 보니 동료들의 신망이 꽤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최윤미씨에게 ‘지역·연대’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2015년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 8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경비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직종별 노동자 소모임을 만들어 ‘권익 증진’ 활동을 했다. 경비 노동자 모임을 만들어 아파트와 상생협약을 맺고, 청소 노동자 쉼터를 개선하는 사업을 했다. 생활복지팀을 두어 인근 병원·음식점·카센터 등과 연계해 ‘좋은이웃’ 회원은 할인을 받게 했다(2026년 현재 회원 680명). 왜? “반월·시화공단의 사업장 97%가 30인 미만 사업장이다.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구조다. 노조 밖에서 노동자들의 복지·권익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들어보자고 지역 노동센터에서 제안해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도 지역 노동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뭔가 힘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한국와이퍼 노사도 꽤 오래 교섭을 벌였다. 회사 측으로부터 “받고 싶으면 소송해라”는 말을 듣고 소송에 들어갔다. 1심에서 지고, 2심에서 이겼다. 2년치 통상임금 소급분을 받았는데, 한국와이퍼 노측이 그 환급금 가운데 5700만원을 떼어 좋은이웃에 기부했다. 이후에는 회사와 임금 교섭을 하면서 직원들의 복지 일부를 대신해 매년 1200만원씩 좋은이웃에 기부하도록 합의했다. 최씨는 ‘사회연대기금’이라고 불렀다.
“좋은이웃 설립을 주도한 윤중현 변호사가 통상임금 소송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 소송을 하면서 처음부터 승소하면 작은 금액이라도 ‘좋은이웃’에 기부하자고 노측 사람들끼리 약속했다. 그때는 이길지 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소송 끝나고 기부하자고 제안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우리만 잘해서 이기는 건 아니잖나. 지역 노동센터, 윤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이룬 일이니 일부 금액은 집단적으로 쓰자고 약속한 일이다. 그런 결정이 자연스러웠다.”
나중에 한국와이퍼분회의 투쟁이 길어지고, 조합원이 힘들어할 때 ‘좋은이웃’과 45개 단체가 모인 안산시민행동이 손을 내밀었다.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의 가족을 만나 응원 동영상을 제작해왔다. 그 영상을 보며 울고 웃었다. 좋은이웃은 분회 조합원들을 위해 담보 없이 5000만원을 대출해주었다. 사업비 중 1000만원을 투쟁기금으로 지원했고, 또 지역에서 “양말을 팔아서 모은 돈” 2000만원을 노조에 기부했다.

한국와이퍼 노조는 청산하겠다는 회사에 맞서 싸우며 힘든 시기를 거쳤다. 국정감사에서 논의되고 특별근로감독 대상에 오를 만큼 사회적 의제가 되었지만 출구가 막막한 싸움이 이어졌다. 최윤미 당시 위원장의 고민이 깊었다. 공장을 점거하던 2023년 3월15일 경찰 700여 명이 투입돼 조합원을 끌어낸 기억도 충격으로 남았다. “세상이 무서워졌던 순간이다.” 오래 싸웠지만 공장이 폐쇄되고 흩어져야 했던 오스람, 한국산연, 한국게이츠 등 다른 외국인투자기업 사례도 마음에 걸렸다. “2023년 1월 말에 ‘해고 금지 가처분’이 인용되었지만, 청산을 막기는 어려워 보였다. 매각이 되어야 고용승계가 되고, 그래야 ‘해고 금지 가처분’ 인용도 의미가 있을 텐데··· 싸움이 더 장기화하면 조합원들의 이탈이 시작될 거고, 결국 소수의 싸움으로 전락하겠구나 싶었다.” 3·15 공권력 투입 이후 조합원들도 힘들어했다.
공권력 투입 한 달 후에 최윤미 당시 위원장이 사회적 고용기금을 조합원들에게 제안했다. 조돈문·나원준·정흥준 교수 등 노동 관계 학자들의 조언을 받고 검토를 시작했다. 청산 반대 투쟁이 승리하면 합의금의 일부로 사회적 고용기금을 만들자 하니, 조합원들은 낯설어했고, ‘왜 그 돈을 내야 하냐’는 반발이 꽤 심했다. 화가 나서 중간에 나가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최윤미 위원장이 간부들에게 설명하고, 그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엠티 가서 이야기하고, 함께 밥 먹으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결국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고, 회사 측과 협상해 사회적 고용기금 75억5000만원 지급에 합의했다. “저는 원칙적 이야기만 계속했던 것 같다. 매각이 되거나 공장 하나를 짓지 않는 이상 조합원 209명의 고용승계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대로를 조합원에게 이야기했다. 장기 투쟁으로 가든가, 아니면 우리가 다 함께 뭔가를 결정해 정리해야 하는데 나는 사회적 고용기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모든 노동자의 승리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2023년 8월, 노사 합의로 싸움을 끝냈다. 2024년 재단 설립을 위한 지역사회 공개 토론회를 열고, 6월13일에 ‘재단법인 뚜벅이’를 창립했다. 2022년 10월, 3박4일 동안 화성에 있는 덴소 코리아에서 국회까지 90㎞를 걸었던 ‘뚜벅이’ 투쟁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역 시민들까지 포함해 540여 명이 걷기에 참여했다. “어떻게 싸워야 하나 막막했을 때, 조합원들이 함께한 첫 투쟁이었다. 성실하게 걷다 보면 뭔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걸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하다 보면 재단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은 이름이다.”
‘노조 잘 모른다고 하자’고 함께 정한 이유
지난해까지 뚜벅이재단은 조합원들의 재취업 활동을 지원했다. 공장은 사라졌지만 조합원들이 연계 없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는 게 중요했다. ‘재취업을 하려는데 면접에서 노조 활동 경력을 물으면 답하기 힘들다’라는 말을 듣고, 면접 교육을 하기도 했다. 조직적으로 ‘잘 모른다’고 답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기억인데, 대답을 회피해야 한다니 마음이 아팠다. 개인이 감당하지 말고, 함께 결정해서 ‘잘 모른다’고 정리하자고 했다.” 조합원들은 매달 뚜벅이재단에 모여 ‘식사 모임’을 한다. 많을 때는 60명가량 모인다.

또한 뚜벅이재단은 요양보호사, 청소 노동자 등 ‘이웃노동자’ 모임을 지원한다. 지역의 해고·실직 노동자들이 노무·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지역의 변호사 5명, 노무사 5명이 함께하는 공익법률센터도 준비하고 있다.
최윤미 뚜벅이재단 상임이사는 ‘평생 빚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장 점거를 한 217일 동안 우리 조합원끼리만 잔 적이 없다. 지역에서 연대하는 시민들이 꼭 함께했다. 일본 원정 투쟁을 갔을 때도, 일본의 연구자·시민들이 우리를 도와줬다. 지역의 단체 사람들이 ‘뚜벅이재단이 있어서 좋다’고 얘기하면 무척 기분이 좋다. 지금 안산 지역에 해고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우리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최윤미 상임이사는 결혼 후에 안산에 왔다. 무료 노동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노무사)을 따라왔다고 했다. 그전에는 부산에 살았다. ‘학생운동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안산에 와서 내가 노조위원장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보사 기자를 했다. 학보사 활동을 할 때 학점 펑크 날까 봐, 수업 과제가 뭔지를 챙겨준 과대표가 강말금 배우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최윤미씨가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저녁에 농성장으로 찾아온 대학 친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와이퍼분회) 언니들의 시간은 이제 이야기가 되어 세상에 퍼질 거예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갈지, 배우를 하며 어떤 인간을 모방할지 기준이 되어줄 거예요. 이 책은 그런 걸 가르쳐주는 학교다. “담장이 없는 누구나의 학교.”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만났으면 좋겠다.’ 강말금 배우의 추천사는 이렇게 끝난다.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 이야기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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