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는 걸까"…젠슨 황이 한국 산업 전체를 쓸어담은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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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서울의 한 IT 기업에 다니는 40대 직장인 임 모 씨는 뉴스를 보다가 잠시 멈췄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하고, 홍대 치킨집 앞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아저씨가 왜 이러고 다니는 거야?"

시가총액 5조 달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CEO가 4박 5일 동안 삼겹살을 먹고, 야구 시구를 하고, 서울대 학생들 앞에서 'K-젠슨'을 자처했다. 수조 원대 반도체 계약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소주잔을 채워주고, 편의점 과자를 시민들에게 직접 건넸다. 어떤 의미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다. 젠슨 황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삼겹살에서 야구장까지, '닷새의 동선'
젠슨 황 CEO는 2025년 10월 이후 7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7개월 전 1박 2일이었던 일정은 4박 5일로 늘었고, 밀도는 차원이 달랐다. 6월 5일 입국 직후 젠슨 황의 첫 행선지는 e스포츠 구단 T1이 운영하는 홍대 PC방이었다. 황 CEO는 프로게이머 이상혁(페이커)을 만나 "한국 PC방 문화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CEO는 저녁 무렵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으로 자리를 옮겨 최태원 SK그룹 회장·구광모 LG그룹 회장·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가졌다.

테이블에 오른 하이트진로 테라와 참이슬이 섞인 '테슬라 소맥'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회동 후 일행은 인근 BBQ 매장으로 2차를 이었고, 홍대 거리 인파에게 바나나맛 우유와 HBM칩스를 직접 나눠주며 "모두가 HBM을 사랑한다"고 외쳤다. HBM칩스는 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모티브로 SK하이닉스와 세븐일레븐이 협업해 만든 스낵이다.
6일에는 가족과 함께 종로구 삼계탕 전문점 토속촌을 찾았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에도 참여했다. 7일에는 잠실야구장 시구에 이어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최태원 회장과 재회했다. 이 자리에서 황 CEO는 "HBM을 더 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엔씨소프트·크래프톤 등 게임업계 경영진과도 연속으로 만났다.
젠슨 황은 방한 마지막 날인 8일 더 바쁘게 돌아다녔다. 젠슨 황은 오전 8시 30분 SK 서린빌딩을 시작으로 LG 트윈타워, 서울대 관악캠퍼스, 현대차 양재사옥, 네이버 성남 사옥을 하루에 모두 소화한 뒤 신라호텔에서 대규모 리셉션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젠슨 황은 6월 9일 오전 김포공항에서 출국했다.
'왜 한국인가' AI 풀스택'이라는 희귀한 조건
이 모든 퍼포먼스의 배경에는 냉정한 전략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세계에서 AI 산업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동시에 갖춘 나라는 손에 꼽는다. 반도체 설계는 미국, 위탁생산은 대만, 조립은 중국이라는 분업 구조가 굳어진 지 오래다. 한국은 이 구도에서 독특한 자리에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SK하이닉스·삼성전자), 세계 수준의 제조업 인프라(현대차·LG), 자국어 AI 모델과 클라우드(네이버), 로보틱스 생태계(두산·현대차·로보티즈), 원자력을 포함한 안정적 에너지 공급망까지 보유하고 있다. AI 팩토리를 짓는 데 필요한 GPU(그래픽처리장치)·전력·냉각·네트워크·소프트웨어 전 영역에서 세계 수준의 파트너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황 CEO가 방한 마지막 날 리셉션에서 "이런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한 배경이다. 그가 찾아다닌 곳의 면면을 보면 자동차와 로봇을 만드는 현대차, 가전을 파는 LG, 포털을 운영하는 네이버까지 다양하다. 결국 황 CEO는 이런 다양한 산업을 엔비디아라는 플랫폼 위에 올리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 키워드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이번 방한에서 맺어진 협력의 핵심 키워드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다. AI 팩토리는 기존 데이터센터 개념을 뛰어넘는다. GPU 수십만 장을 동시에 돌리면서 AI 모델 학습부터 추론, 서비스 구동까지 한 공간에서 처리하는 차세대 인프라다. SK텔레콤은 내년 국내 첫 가동을 시작으로 GW급 확장을 예고했고, 네이버는 '각 세종' 데이터센터를 거점으로 2027년 55MW 가동 후 2028년 200MW, 이후 GW급까지 단계적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피지컬 AI는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 실제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AI다. 로봇이 공장 라인을 스스로 판단하며 움직이고,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를 인식하고, 산업용 장비가 AI 기반으로 제어되는 세계다. 황 CEO가 현대차 로비에서 만난 로봇개 '스팟'과 수소 충전 자동화 로봇이 좋은 예다. 이외에도 LG는 차세대 로봇 개발 전 과정에서 엔비디아 플랫폼과 협력 예정이고,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 기술 기반의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반도체를 둘러싼 삼성·SK와의 '3각 밀당'도 이번 방한의 핵심 장면이었다. 황 CEO는 최태원 SK 회장과 세 차례 만나며 "SK하이닉스는 앞으로도 엔비디아의 최대 메모리 파트너"라고 공언하면서도,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과 별도 회동을 갖고 HBM4E·HBM5 장기 협력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확대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이 엔비디아 자율주행 칩을 4나노·8나노 공정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황 CEO가 양사의 경쟁 심리를 동시에 자극해 HBM 공급 확대를 최대한 이끌어내려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과한 환대'가 불편한 이유, 그럼에도 협력해야하는 이유
화려한 협력 발표 뒤에는 몇 가지 문제도 지적된다. 먼저 특정 기업의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록인(Lock-in)' 리스크다. SK·LG·현대차·네이버가 이번 방한에서 맺은 협력들은 예외 없이 엔비디아의 GPU·소프트웨어 플랫폼·생태계를 전제로 한다. 협력이 깊어질수록 다른 선택지로 이동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다. 과거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 개발환경 '쿠다(CUDA)'를 무료로 뿌려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했듯, 이번에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플랫폼으로 국가 단위 산업 구조 전체를 묶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냐는 것이다.

황 CEO가 방한 첫날 한국에 가져온 '네 가지 선물'을 살펴보면 의도가 더 명확하게 보인다. 황 CEO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베라 CPU, AI 노트북 'RTX 스파크', 휴머노이드용 AI 슈퍼컴퓨터 '젯슨 토르'를 두고 한국을 위한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네 가지 모두 엔비디아가 이번 시즌 밀어야 할 차세대 제품군이기도 하다. 황 CEO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잠재적 사업을 한국에 가져왔다"고 말하지만 선물을 받은 쪽이 그 선물을 구매해야 완성되는 구조다.
이 협력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은 아니다. 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엔비디아 플랫폼을 외면하면서 AI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은, 인터넷 시대에 웹브라우저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화웨이·캄브리콘 같은 자국 AI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고, 유럽이 '소버린 AI(주권형 AI)' 전략으로 독자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엔비디아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결국 문제는 협력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느 수준의 자체 기술 역량을 동시에 쌓느냐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오전 출국길 김포공항에서 황 CEO는 이렇게 말했다. "내 삼겹살과 치킨 친구들도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곧 다시 오길 기대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확신이 있었다. 그는 한국이 자신에게 필요한 파트너라는 것을 알고, 한국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젠슨 황이 다시 한국을 찾을 때 그가 무엇을 들고 올지, 어떤 기업의 문을 두드릴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다시 올 것만은 분명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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