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납치돼 거지생활…'쭈그려 걷는' 의사의 행복론

베이징=CBS노컷뉴스 정영철 특파원 2026. 6.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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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화제된 후 언론들도 주목
어릴 적 소아마비로 땅 짚고 걸어야
16살에서야 학교 입학, 36세에 의사돼
"필요한 곳 가야" 사명감에 신장서 활동
연중무휴, 24시간 불켜진 진료소 운영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한 마을에서 진료하고 있는 리촹예(李创业)씨. 중국망 캡처


최근 중국의 온라인과 언론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의사 리촹예(李创业)씨. 그의 이름 앞에는 '쭈안싱(蹲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자는 쭈그릴 준(蹲)과 다닐 행(行)으로 쭈그려서 다닌다는 뜻이다.

이씨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서서 걸을 수 없다. 대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웅크려 기어다녀야 한다.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그의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다. 현지 언론의 취재요청이 쇄도하면서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가 의사가 된 과정부터 파란만장하다. 똑바로 설 수도 없게 된 리씨는 9살 때 납치돼 거지 생활을 강요받았다.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 건 7년의 세월이 흘러 16살이 되던 해다. 그는 고등학생 나이가 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들은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인 28살에 대학에 합격해 2년 전인 36살에 의사 면허를 땄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항상 부모를 눈물짓게 한다.

그가 '인기 스타'가 된 것은 단순히 어려움을 이겨낸 성공담에 있지 않다. 의사가 된 이후의 행보가 더욱 그를 돋보이게 했다.

리씨가 고향을 떠난 것은 올해 초다. 4천㎞ 떨어진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카스 지구 사처현에서 작은 진료소를 열었다. 연중무휴, 24시간 불이 켜진 진료소다.

왜 이렇게 먼 곳까지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사로서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본인처럼 장애가 있는 환자는 전액 무료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는 약값을 원가로 받았다. 오지 주민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지갑을 여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부모님을 도와 수확한 밀을 살펴보는 리촹예(李创业)씨. 중국망 캡처


한 중국 누리꾼은 "저는 선생님보다 키가 1m는 더 크지만, 선생님은 곤륜산보다도 더 높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티베트고원의 북부 경계를 따라 자리 잡고 있는 곤륜산(昆仑山)은 길이가 3천㎞에 달하는 아시아 초대형 산맥이다.

리씨는 "제 인생은 60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항상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위구르족 사람들은 그를 "독수리 같은 사내"라고 불렀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최고의 찬사다.

최근 리씨가 20시간을 달려 고향으로 가 부모님 밀 농사 수확을 돕는 현장에도 현지 언론들이 따라붙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세발자전거로 밭둑을 오갔다. 콤바인을 직접 몰며 밀을 수확하기도 하고 창고로 운반해 창고에 들이기도 했다.

며칠 동안 바쁘게 뛰어다닌 끝에 7천근(3.5t)이 넘는 밀이 창고에 쌓였다. 알찬 밀알을 두 손에 모아 자세히 살피면서 그는 말했다. "저는 농부의 자식이라서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곡식이 곳간에 들어가야 삶이 든든해진다는 것을요."

리씨는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고향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 줬다. 한 이웃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성실했다. 지금 신장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니 모두들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은 한편으로 정겹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는 "많은 환자분이 전화를 걸어 언제 고향으로 돌아오냐고 물어본다"고 귀띔했다.

보름간 고향에 머문 그는 다시 진료소로 복귀했다. 지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는 소탈한 인생관을 털어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최고의 삶이죠. 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동기를 부여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가 운영하는 24시간 진료소는 누구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어떤 질병은 치료를 미룰 수 없어요. 저처럼 치료를 미루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거든요."

환자 진료 말고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고향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 기술이 발전하고 의료 수준이 향상되면,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들판을 달리며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중국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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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정영철 특파원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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