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퀴벌레다!" 카스트 최하층 청년이 뒤흔든 인도 정치 [아세안 속으로]

정지용 2026. 6. 1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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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시 부정 논란·청년 실업 겹치며 분노 폭발
카스트 최하층 출신 유학생, SNS로 시위 결집
네팔·방글라데시에서도 '언더도그 청년 정치' 신화
제도권 정치 대항마 부상, 제도권 안착은 과제
바퀴벌레국민당을 창당한 아비지드 딥케 대표가 6일 인도 뉴델리 잔타르만타르 광장에서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연설하고 있다. 뉴델리=로이터 연합뉴스

"정부는 우리를 벌레로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에겐 싸울 능력이 있다!”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중심부 잔타르만타르 광장.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 앞에서 ‘바퀴벌레국민당’(Cockroach Janta Party·CJP) 창립자 아비지트 딥케(30)가 외쳤다. 다수가 2030세대인 수천 명의 시위대는 일제히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답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바퀴벌레 가면을 쓴 채 '우리가 바퀴벌레다'라고 외친 참가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분노의 도화선은 ‘공정에 대한 배신’이었다. 지난달 의대 입학시험(NEET) 답안지가 사전에 유출됐고, 프라단 장관은 임기응변으로 재시험을 결정했다. 박탈감을 이기지 못한 일부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 인도에서 의대와 정보기술(IT) 분야 공대 입시는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바늘구멍이다. 최소한의 기회마저 짓밟혔다는 청년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부는 그런 청년을 오히려 비하했다. 수리야 칸트 인도 대법관은 지난달 15일 실업 청년을 향해 “바퀴벌레 같은 젊은이들이 있다"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시스템만 공격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딥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약 모든 바퀴벌레가 한데 모인다면 어떨까?"라고 제안하자 수백만 명이 호응했다. 바퀴벌레가 '저항의 상징'이 된 배경이다.

아비지트 딥케가 6일 오전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그는 입국장에서 B.R. 암베드카르 자서전을 들어 올렸는데, 안베드카르는 인도 카스트 최하층인 달리트 출신으로 헌법을 초안한 인권운동가다. 뉴델리=EPA 연합뉴스

보스턴에서 스마트폰으로 조직한 시위

인도뿐 아니다. 방글라데시·네팔 등 남아시아 전역에서 ‘반(反)기성정치’와 ‘Z세대 혁명’을 슬로건으로 내건 청년 정치가 뜨고 있다. 카스트 최하층·래퍼·대학생 등 기성 정치권이 소외시킨 ‘언더도그(비주류) 청년’이 그 주역이다. SNS를 무기로 순식간에 세력을 모아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이 공통점이다. 운동의 장기화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기득권 체제를 흔들며 균열을 내고 있다.

인도 시위를 조직한 딥케가 언더도그 청년의 대표 사례다. 그는 카스트 제도 최하층인 달리트 출신으로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 비판적인 야당인 암아드미당에서 공보 담당으로 일했을 뿐 주류 정치 경력은 전무하다. 바퀴벌레당 창당 당시 그는 홍보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보스턴대에서 유학 중이었다. 뉴델리에서 1만1,498km 떨어진 보스턴의 30세 유학생이 스마트폰 하나로 정당을 만들고 대형 시위를 기획한 셈이다.

그가 인도에 입국한 건 시위 당일 아침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뉴델리로 향하는 전 과정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했고,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내리자 수백 명의 지지자가 몰려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딥케는 입국 전 SNS에 “가족과 친구들은 제가 공항에서 체포될까 두려워한다”며 “하지만 내가 왜 감옥을 두려워해야 하나. 이 나라는 특정 정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바퀴벌레당의 성장 속도는 전례 없다. 창당 3주 만인 7일 기준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약 2,270만 명으로,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인도국민당(BJP) 공식 계정(945만 명)을 압도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줄 알았던 Z세대의 이례적 결집이다. 일간 가디언은 “농담처럼 시작한 이 운동은 환멸에 빠진 수백만 청년을 중심으로 막강한 모디 우파 정부에 예상치 못한 도전을 제기하는 세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바퀴벌레국민당 홈페이지. 인도 정부의 규제로 인도 내부에서의 접속은 막힌 상태다. 홈페이지 캡처

"와이파이가 있는 모든 곳이 본부"

이들의 행보는 ‘B급 정서’와 ‘정치 개혁’ 사이를 오간다. 바퀴벌레당 홈페이지에는 “게으른 사람, 실업자, 그리고 만성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본부가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바퀴벌레국민당(CJP)이라는 당명도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을 빗댄 풍자다.

그러나 공식 강령은 모디 총리의 아킬레스건을 정조준한다. 이들은 ‘대법관 퇴임 후 상원의원직 수여 금지’ ‘부정선거 발생 시 선관위원장 반테러법으로 체포’ ‘모디 총리 측근 재벌인 암바니·아다니 소유 언론사 허가 취소’ 등을 요구한다. 주류 언론과 정치권이 외면한 모디 총리의 사법부 장악, 선거 조작 의혹, 재벌·언론 유착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모디 총리는 2014년 집권 후 12년째 인도를 통치하고 있다.

Z세대의 폭발적 호응 배경에는 가혹한 경제적 현실이 있다. 인도는 전체 인구 14억 명 가운데 4억 명가량이 15~29세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대졸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고학력 청년이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몰린데다, 이란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겹치며 청년층의 삶은 한계에 다다랐다.

2014년 집권 후 12년째 인도를 통치하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그의 재임 기간 인도는 준수한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지만 선거 부정, 사법부 장악, 언론 유착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AP 연합뉴스

왕추크 합류, '애들 장난' 프레임 깼다

인도 안팎에서는 바퀴벌레당이 모디 총리의 ‘대항마’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장기독재 중인 모디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굳건하지만, 피로감도 상당하다. 외신들도 바퀴벌레 국민당을 “현재 시점에서 모디에 반대하는 여론을 가장 빠르고 크게 대변하는 정당”으로 평가한다.

지원 세력도 붙고 있다. 영화 ‘세얼간이’의 실제 모델인 환경운동가 소남 왕추크(59)는 “비폭력적이고 창의적으로 좌절감을 표출하는 방식에 감명을 받았다”며 “실업자가 아니라 당원 자격은 없겠지만, 명예 바퀴벌레로 해 달라”고 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메신저를 죽인다고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정부는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지 말고, 청년들은 절대 폭력의 길로 들어서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왕추크는 인도의 주입식 교육 체계,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격렬히 비판하며 고향인 라다크 산간 지역에 대안학교를 세운 엔지니어·교육가·환경운동가다. 환경보호, 지역 사회공헌 등을 평가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상’ 등을 수상했다. 왕추크는 6일 시위에 참여해 “참여하고, 연대하자. 확고하되 부드럽게 나아가자"고 비폭력 평화시위를 당부했다.

인도의 저명한 시민운동가인 소남 왕추크가 6일 바퀴벌레국민당 집회에 참여해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평화로운 비폭력 시위를 거듭 강조했다. 뉴델리=AFP 연합뉴스

모디 정부의 반격 '접속 차단'

정부도 마냥 두고 보지 않고 있다. 모디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바퀴벌레당 X 접속을 차단하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바퀴벌레당을 “파키스탄과 연계된 반인도 세력”으로 규정했다. 아닐 비즈 하리아나주 장관은 “바퀴벌레는 어린아이조차 슬리퍼로 밟아 죽일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딥케는 FT에 “정부가 바퀴벌레 운동의 SNS 계정을 차단하거나 내 개인 계정을 취소하고, 게시물을 삭제하려 했다”며 “지난 며칠 동안 익명의 번호로 ‘미국에 산다고 우리가 널 해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반드시 널 찾아낼 것이다’ 등의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모디 총리 본인은 ‘철저한 무시’ 전략을 고수 중이다. 단 한 번도 바퀴벌레당을 언급하지 않았고, 이들의 핵심 요구인 프라단 교육부 장관 사퇴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1년간 지속된 격렬한 농민 시위, 코로나19 대참사 항의 시위 등 수많은 정치적 파고를 넘어온 모디 총리가 청년층의 분노가 얼마나 지속될지 간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팔 래퍼 출신 발렌드라 샤 총리(왼쪽)와 방글라데시 몬순혁명을 주도한 나히드 이슬람. AFP 로이터 연합뉴스

남아시아 휩쓰는 ‘언더도그 청년 신화’와 그 한계

냉정한 시선도 있다. 현 단계에서 바퀴벌레당은 정당이라기보다 ‘온라인 기반 항의 운동’에 가깝다는 평가다. 정교한 조직 구조, 구체적 정책 비전, 선거 전략이 없다는 점에서 제도권 정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성 야당 정치권도 바퀴벌레당을 견제하는 분위기다.

딥케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그는 7일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프라단 장관이 일주일 내에 사퇴하지 않으면 전국적 시위를 열겠다”고 경고했다. 현재 인도 서부의 진보성향 명문대학인 사비트리바 풀레푸네 대학교 시위를 계획 중이다. 딥케는 "5년 전만 해도 누구도 모디 총리나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용기가 없었다"면서도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실제 남아시아에서는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일으키는 언더도그 청년 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네팔에서는 힙합 래퍼 출신 발렌드라 샤(36)가 기성정치 부패에 반발해 2022년 무소속으로 수도 카트만두 시장 선거에 당선됐고, 올해 3월 중도성향 국민독립당 소속으로 총선 압승을 거둔 뒤 총리직에 올랐다.

방글라데시에서도 2024년 여름 대학생들이 주도한 ‘몬순 혁명’으로 셰이크 하사나 총리의 15년 독재를 무너뜨렸다. 당시 혁명을 이끈 나히드 이슬람(28)은 명문 다카대 사회학과 학생이다. 체포·고문의 위협 속에서 하사나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직접 발표했고, 총리 실각 후 과도정부의 장관을 거쳐 신당 국민시민당 의장으로 취임했다.

다만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네팔·방글라데시 청년 정치인들도 경제난에 따른 지지 하락, 진영 내부 분열이라는 위기에 마주했다.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됐지만,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하노이= 정지용 특파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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