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코 공원서 ‘불타는 십자가’…KKK단까지 부활한 美

미국 시카고 도심 공원에서 흑인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불타는 십자가’가 발견돼 지역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승리 연설을 했던 상징적 공간인 그랜트 파크 인근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경찰에 따르면 9일 오후(현지시간) 도심 공원에서 대형 나무 십자가가 불에 타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시카고 소방당국은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으며, 실제로 불타던 물체가 십자가였다고 확인했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지나가던 한 여성 운전자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국 사회 전반에 논란이 번졌다. 영상에는 공원 나무 옆에 세워진 대형 십자가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이 담겼다.
당시 현장을 지나던 차량들은 속도를 늦췄고, 시민들 역시 발걸음을 멈춘 채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케이니카 칼턴은 “이게 현실인지, 종교 행사인지 혼란스러웠다”며 “흑인 여성으로서 가장 먼저 인종차별 역사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십자가를 불태웠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딸 앨리나 칼턴 역시 “평생 그런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 몰랐다”며 “과거의 인종차별 역사가 아직 멀리 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방화 및 증오범죄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현장 인근에서 걸어 나가는 한 인물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하며 시민 제보를 요청했다. 다만 아직 사건 배후나 동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지역 종교계와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세인트 사비나 신도협회 측은 용의자 검거에 도움이 되는 제보에 1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마이클 플레저 목사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십자가를 불태우는 행위는 명백한 증오 범죄”라며 “나치의 상징과 다를 바 없는 인종차별적 위협 행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역사에서 불타는 십자가는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클럭스클랜(KKK)의 상징으로 악명 높다. 흑인과 소수인종을 위협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사용돼 왔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2003년 판결에서 십자가 소각 행위를 ‘협박 목적의 증오 표현’으로 규정하며 제한 가능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통령 기념도서관인 ‘오바마 센터’ 개관 행사를 앞둔 시점에 발생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행사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건 시점이 미국 흑인 노예해방 기념일인 ‘준틴스(Juneteenth)’를 앞둔 시기라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과 분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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